‘한일 월드컵 키즈’ 황의조·이재성 축구 대표팀 주축…‘야구 황금세대’ 박재홍·임선동 등 쟁쟁
#1992년생이 축구에 몰린 이유
대한민국 축구계에서 1992년생 선수들은 '황금세대'로 꼽힌다. 만 10세가 됐을 시점, 2002 한일 월드컵을 지켜본 이들은 한국 축구를 선두에서 이끄는 집단으로 성장했다. 한일 월드컵의 존재는 1992년생 스포츠 스타들이 유독 축구 종목에 몰린 이유로 분석되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단연 첫손에 꼽히는 인물은 손흥민이다. 손흥민은 현 시대를 넘어 한국 축구 역대 최고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선수다. 분데스리가, 프리미어리그, 챔피언스리그 등 각종 대회에서 넣은 골만 200골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번 시즌도 리그에서 27경기에 출전, 14골 7도움을 기록하며 10골-10도움에 도전한다. 2019-2020시즌부터 이어져온 10골-10도움을 3시즌 연속으로 달성한다면 프리미어리그 최초 기록이 된다.
손흥민은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도 남다른 족적을 남겨왔다. 2011년 1월, 18세 194일의 나이에 득점을 올리며 역대 최연소 득점 2위 기록을 세웠다. 이후 10년이 훌쩍 넘는 기간 A매치 98경기에 나서 31골을 득점해 차범근(58골), 황선홍(50골), 박이천(36골), 김재한(33골), 이동국(33골)에 이어 역대 A매치 최다 득점 순위 6위에 올라 있다. 향후 활약에 따라 순위는 더욱 오를 것으로 보인다.
1992년생 선수들이 황금세대로 불리는 이유는 손흥민 외에도 많은 선수들이 맹활약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일정을 소화한 대표팀 명단에만 황의조, 이재성, 김진수, 권경원, 4명의 동갑내기들이 포진해 있다. 공격, 미드필드, 수비까지 고루 분포돼 있는 이들은 모두 오는 11월 열리는 월드컵에 참가할 가능성이 높은 핵심 자원들이다.
황의조와 이재성은 유럽 최상위권 무대인 프랑스 리그앙과 독일 분데스리가에서도 준수한 활약을 펼치고 있다. 김진수도 분데스리가 경험 이후 K리그 최고 측면 수비수로 평가받는다. 권경원은 K리그를 비롯해 아시아권(아랍에미리트, 중국, 일본)에서만 활약 중이지만 그간 발생시킨 이적료만 150억 원을 넘어서며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손흥민 등 스타들이 만 30세를 맞은 2022년은 이들의 커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한 해가 될 전망이다. 월드컵이 개막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선수로서 전성기를 보내고 있는 이들이 월드컵 무대에서 어떤 활약을 선보일지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92학번 특급 투수·타자 즐비
KBO리그에서는 임찬규, 유강남 등이 좋은 활약을 보이는 1992년생 선수들이다. 하지만 야구계에선 1992년생보다 1992학번이 더 큰 주목을 받는다. 1992년 대학에 진학하거나 프로에 입단한 이들은 역대 최강의 황금세대로 불린다.
1992시즌 KBO리그에선 고졸 신인 염종석이 센세이셔널한 활약을 펼치며 소속팀 롯데 자이언츠를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신인왕은 자연스런 수순이었고 골든글러브도 수상했다. 그가 1992시즌 기록한 WAR(대체 수준 대비 승리 기여)는 8.40에 달한다. '괴물'로 불리던 류현진 신인시절(WAR 7.78)을 능가하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염종석은 최근 일요신문 인터뷰에서 "나는 고등학교 3학년까지도 '특급선수' 축에 끼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고교시절부터 화려한 면면을 자랑하던 92학번의 존재감 탓이다. 그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동기들의 이름을 줄줄이 읊었다.
투수에 임선동, 조성민, 차명주, 손경수, 안병원, 야수에 박재홍, 김종국, 송지만 등. 고교 졸업 직후 빙그레에 입단해 염종석과 신인왕 경쟁을 펼친 정민철도 이들보다 1년 먼저 태어났지만 학창시절 유급으로 동기생이다.
이들 중 가장 밝게 빛난 별은 박찬호다. 공주고 시절 임선동, 조성민 등과 비교해 고교랭킹 1위에서는 다소 벗어나 있다는 평가를 박찬호는 한양대 진학 이후 중퇴, 미국 무대로 향한다. 그 이후 스토리는 알려진 대로다. 1994~2010년 메이저리그 통산 124승이라는 금자탑을 쌓았고 일본 프로야구 NPB와 KBO리그를 거쳐 은퇴한 이후에도 활발한 활동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듯 92학번 황금세대 중 일부는 야구계 '아픈 손가락'으로 남아 있다. 당시 무척이나 빛나는 재능이던 임선동은 프로 무대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NPB의 다이에 호크스가 임선동 영입을 희망했고 실업팀 현대 피닉스가 계약에 성공했다. 신인드래프트에서는 LG 트윈스가 임선동을 지명했다. 이른바 '3중 계약 논란'에 휘말린 것이다.
결국 LG에 입단했지만 진통 끝에 2년 만에 트레이드로 프로 구단이 된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했다. 프로 4년 차인 2000년, 다승(18승)과 삼진(174개) 부문에서 1위에 오르며 꽃을 피우는 듯했지만 부상 여파로 2003년부터 4년간 10경기만 소화한 이후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고려대 졸업 이후 일본 최고 명문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한 조성민은 입단 초기 승승장구 하는 듯했다. 1997년 1군 무대에 등장해 1승 11세이브를 올렸고 1998시즌에는 선발로 전환, 전반기에만 7승을 거뒀다.
하지만 불의의 부상으로 하락세를 걸었고 요미우리를 떠났다. KBO리그 입성을 노렸지만 번번이 불발되다 요미우리 유니폼을 벗고 3년 뒤인 2005년에야 한화에 입단했다.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요긴하게 활용되는 듯했으나 결국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3시즌간 활약 이후 선수생활을 마무리했다. NPB 활동 후반기 시절부터 이어진 사생활 문제가 그의 발목을 잡기도 했다. 사업 실패 등까지 겹치며 그는 2013년 1월 극단적인 선택을 하며 팬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92학번 특급 투수들의 희비가 엇갈린 반면 야수들은 KBO리그에서 '레전드' 대우와 함께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리틀 쿠바'로 불리던 박재홍은 현대에서 데뷔 시즌부터 존재감을 발휘했다. 1996년 데뷔 첫해 홈런왕, 타점왕, 신인왕을 쓸어 담았고 KBO리그 최초 30-30 클럽에도 가입했다. 해태에 입단해 KIA를 거치며 활약한 원클럽맨 김종국은 현재 KIA의 감독을 지내고 있다. 송지만 또한 '꾸준함'의 대명사로서 통산 기록에서는 동기 박재홍을 뛰어넘었다.
농구와 배구 종목에도 92학번 스타들이 포진해 있다. 90년대 농구대잔치 전성기를 이끌었던 김훈, 우지원 김병철, 전희철 등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대학생 신분으로 나선 농구대잔치에서 실업팀을 상대로도 밀리지 않는 경기력으로 인기를 구가했다.
현역 선수로는 ‘두목 호랑이’ 이승현이 1992년생을 대표하는 스타플레이어다. 그는 상무 복무를 제외하면 고양 오리온 한 팀에서만 뛰며 2016년 팀의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이끌었다. 챔프전 MVP는 덤이었다. 만 30세가 된 현재까지도 소속팀과 대표팀을 오가며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배구에선 ‘월드스타’ 김세진이 92학번이다. 그는 한양대 재학시절이던 1994년 월드리그에서 공격성공률 1위에 오르며 단숨에 국내 최고 선수 반열에 올랐다. 이후 삼성화재에 입단, 실업리그 시절과 V리그 출범까지 전성기를 보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