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맥스 ‘고객사와 상생’ 서울반도체 ‘LED 기술 개발’ F&F ‘라이선스 대박’…새 시장 개척해 매출 1조 돌파 ‘닮은꼴’
#1992년 동갑내기 기업들의 발자취
코스맥스그룹의 전신은 지난 1992년 화장품 제조업자개발생산(ODM) 기업인 일본 미로토와 기술 제휴를 맺고 설립한 ‘한국미로토’다. 이후 1994년 이경수 코스맥스그룹 회장은 독자적인 기술 개발을 위해 일본과의 관계를 끊고 현재의 ‘코스맥스’로 사명을 바꿨다. 1987년 3월 미국계 반도체 제조사 훼어차일드 출신 엔지니어들은 서울반도체를 설립했지만, 현재 최대주주인 이정훈 대표가 1992년 회사를 인수하면서 LED 전문 기업으로 변화를 시작했다. 김봉규 삼성출판사 창업주의 차남인 김창수 에프앤에프(F&F) 회장은 1986년부터 삼성출판사의 계열사인 아트박스에서 이사와 대표이사를 지냈다. 삼성출판사는 1990년대에 들어서며 패션 사업에 발을 들였고, 차남 김창수 회장이 1992년 패션기업 F&F를 설립하며 독립했다.
이들 모두 창업 초기부터 기존 문법을 탈피한 경영 스타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코스맥스는 화장품 ODM 사업 태동기에 뛰어들었고, 이후 해외 시장을 개척한 선구자로 불린다. 일본 미로토와의 전략적 기술 제휴를 포기하고 자체 연구소 운영을 고집한 덕분에 국내 화장품 ODM 업체 중 가장 먼저 해외 시장을 개척했다. 현재 에스티로더, 로레알, 존슨앤드존슨 등 세계 20대 화장품 기업 중 18개 업체의 ODM을 맡고 있다. ODM은 고객 기업의 브랜드로 판매하기 위해 제품을 기획·개발해 생산하는 것이다.
서울반도체는 당시 룸(ROHM), 고덴시 등의 해외기업들이 석권하던 LED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단순히 매출에 집중하지 않고 LED 칩 패키지 기술 연구개발(R&D)에 역량을 집중했다. 2000년 초부터 휴대전화, TV 수요가 급증하면서 LED 시장도 함께 확대됐다. 서울반도체는 기술경쟁력을 바탕으로 국내외 고객사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실제 서울반도체 연매출은 1999년 100억 원대에서 2002년 1000억 원대로 껑충 뛰었다.
F&F는 창업 초기부터 베네통, 시슬리, 레노마스포츠, 엘르스포츠 등 굴지의 해외 브랜드를 국내에 연이어 내놓으면 관심을 끌었다. 당시 국내 패션업계에 주문자위탁생산(OEM), ODM을 하는 곳은 많았지만, 자체 브랜드를 구축해 유통하는 곳은 드물었다. 특히 라이선스 사업은 F&F를 현재의 자리에 이르게 만든 주요 전략으로 꼽힌다. 해외 브랜드 라이선스 이용료를 내고 제품을 자체 생산 유통한 것이다. F&F는 시장의 특성과 트렌드 변화에 맞춰 기획·생산·판매를 성공적으로 이끌며 ‘라이선스 명가’라는 별칭을 얻었다.
#위기 극복 후 성장 시동 건 2002년
창립 이후 성공가도만 달린 것 같지만, 이들 모두 부침을 겪었다. 1994년 코스맥스는 일본 미로토와 당차게 이별했지만, 공장 설립을 위한 부지 확보부터 애를 먹었다. 당시 처음 알아본 충청도 내 농공단지는 허가가 나지 않아서 포기해야만 했다. 그다음 후보였던 경기도 화성시 향남제약공단에는 ‘제약회사가 아니다’라는 이유로 입주가 차일피일 미뤄졌다. 공장 설립 지연 속 투자금만 소진되면서 벼랑 끝 위기에 몰렸다. 이경수 회장은 그대로 주저앉을 수 없었다. 공단에 입주한 30여 개 제약사를 일일이 찾아가 설득하고 동의서를 받아내면서 입주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자리를 잡기도 전에 1997~1998년 IMF 외환위기가 터졌다. 코스맥스의 주요 고객사들이 사업을 철수하거나 부도까지 나기도 했다. 당시 이경수 회장은 ‘상생’이라는 승부수를 걸었다. 고객사에 제품 납품가 동결을 자청한 것. 코스맥스는 상당한 손해를 입었다. 환율 폭등으로 원료값이 고공행진 중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IMF를 겪는 동안 코스맥스의 모든 고객사는 부도를 내지 않았고, 덕분에 국내 시장점유율을 확대하며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코스맥스는 2002년 코스닥에 상장한 직후 해외 마케팅 전담 계열사 쓰리애플즈인터내셔널을 설립해 해외 시장 진출 포석을 다졌다. 지난 2004년 중국 상하이에 설립된 이후 코스맥스차이나는 연 평균 40% 이상의 성장세를 기록 중이다. 이 같은 성장세에 힘입어 코스맥스는 2016년 1조 원 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이 밖에도 중국 광저우, 미국 뉴저지, 오하이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태국 방콕 등에 현지 법인을 설립해 생산능력을 강화했다. 이를 통해 유럽과 중국, 미국, 호주 등지 100여 개국에 직간접적으로 수출하고 있다. 코스맥스그룹은 현재 화장품 ODM 매출 기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지닌 1등 기업이며, 제약·건강기능식품으로 사업을 확장 중이다.
서울반도체도 IMF 외환위기 당시 매출이 정체되는 등 위기를 맞았다. 2002년 그간의 매출 상승세에 힙입어 코스닥 시장에 데뷔한 서울반도체는 2003~2004년에는 LED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매출이 제자리 걸음을 걸었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반도체를 살린 것은 연구개발 능력 덕분이었다. 2006년 밝기 효율과 낮은 전력, 긴 수명이 특징인 세계 최초의 교류 전원용 LED 반도체 ‘아크리치(Acrich)’ 제품 개발에 성공했다. 기술 확보는 곧 실적 상승으로 이어졌다.
1200억 원대에 머물던 매출액은 다시 증가세로 전환됐다. 2006년 1838억 원, 2007년 2502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후 2011년 더욱 치열해진 LED 시장 경쟁 속에서도 1만 건의 특허 포트폴리오를 앞세워 2013년 매출 1조 원 고지를 돌파했다. 현재 서울반도체는 현재 세계 2위의 글로벌 LED 전문기업이며, 1만 8000여 개에 달하는 특허를 보유 중이다. 자회사 서울바이오시스는 현재 빛을 이용한 살균·소독(UVC) 분야 세계 1위를 수성 중이며. 2020년 3월 6일 코스닥 상장을 마쳤다.
F&F는 IMF 외환위기의 파고는 그 어느 기업보다 높았다. 당시 홍콩기업 조이스와 제휴해 프라다 등 해외 유명 명품 브랜드사업을 진행하려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결국 김창수 회장은 형인 김진용 삼성출판사 대표가 이끌던 출판부문과 F&F를 합병해서 엔에스에프(NSF)로 사명을 바꿨다.
위기 끝에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F&F는 IMF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 6월 첫 라이선스 브랜드로 MLB를 확보했다. MLB 제품을 국내 시장에 내놓자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당시 LA다저스에 입단해 ‘코리안 특급’으로 활약한 박찬호 선수가 국민에게 IMF 외환위기 한파와 고된 시름을 이겨내는데 큰 버팀목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대중들의 열광은 곧 실적 상승으로 이어졌고, 나중엔 패션부문 매출과 자산가치가 NSF 전체의 3분의 2를 차지하게 됐다.
2002년 F&F는 NSF에서 인적분할로 출범하면서 다시 독립하게 됐다. 이후 홍콩, 마카오, 대만, 태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미얀마 등 아시아 지역의 MLB 판권을 획득하면서 사업을 키워왔다. 2010년에는 MLB 키즈를 론칭했다. 이 밖에도 2012년 디스커버리, 2018년 듀베티카와 스트레치엔젤스 등의 브랜드를 론칭했다. 특히 2019년에는 MLB 중국 판권을 획득하면서 큰 폭으로 성장했다. F&F가 MLB차이나를 이끌면서 매출액은 2019년 119억 원에서 2020년 745억 원으로 5배가량 증가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마이너스(-) 12억 원에서 33억 원으로 흑자 전환됐다. 지난해 MLB차이나 매출액은 3835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15% 늘었다. MLB차이나는 오프라인 진출 2년 만에 총 500개 이상의 매장을 확보하는 데도 성공했다. 그간 국내 패션기업이 중국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해왔던 것을 고려하면 성공의 무게가 남다르다.
국내 패션 상장사 43곳 중 시가총액 1위는 단연 F&F다. 2021년 F&F는 존속법인 F&F홀딩스와 패션사업부문 신설법인 F&F로 인적분할하며 상장했다. 지난해 연결기준 F&F 매출액은 1조 4821억 원, 당기순이익은 3684억 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대비 각각 77%, 332% 성장한 수치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245% 성장한 4228억 원으로 집계됐다. 지난 4월 5일 기준 F&F홀딩스(1조 1010억 원)와 F&F(5조 7460억 원)의 시가총액 합은 7조 원에 육박한다.
외연 확대에도 고삐를 죄고 있다. 지난해 세계3대 골프용품 브랜드인 테일러메이드의 우선인수협상자에 선정됐다. F&F는 센트로이드PE가 추진하는 인수에 6000억 원을 투자해 전략적투자자(SI)로 참여했다. 하반기 인수작업 완료 후 테일러메이드를 ‘제2의 MLB’로 키운다는 방침이다. 지난 3월에는 드라마 제작사 빅토리콘텐츠 인수에 234억 원을 투자하면서 콘텐츠 시장으로 영역을 확대하겠다는 전략을 발표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