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 준비 ‘오버액션’ 시장·주주들 뿔났다
▲ 대우증권의 유상증자 결정에 대한 시장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사진은 본사 건물 전경. |
지난 7일 대우증권은 1조 4000억 원에 달하는 유상증자를 실시한다고 공시했다. 주주배정 방식으로 1억 3660만 주를 새로 발행할 예정이다. 이 보기 드문 대규모 유상증자에 대한 평가는 혹독했다. 한국투자증권은 “주주가치 제고 흔적이 없어 보인다”고 했으며 메릴린치는 “예상치 못한 결정”이라며 대우증권 주가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내다봤다. 신한, 현대, 대신, 하이투자, 골드만삭스 등 국내외 대부분 증권사가 대우증권의 대규모 유상증자를 부정적으로 내다봤다. 목표주가 또한 대폭 하락시켰다.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지난 7일 1만 3750원으로 마감한 대우증권의 주가는 이튿날인 8일 하한가로 직행하더니 지난 15일까지 쉬지 않고 추락해 1만 원까지 주저앉았다. 유상증자 발표 이후 외국인과 기관이 매도 공세를 이어갔다. 같은 증권업계의 부정적 평가도 아픈 일이지만 무엇보다 기존 주주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는 것이 대우증권으로서는 더 치명적이다. 불과 며칠 사이 30~40% 손실을 본 주주들은 대우증권은 물론 대우증권 최대주주인 산은금융지주, 그리고 강만수 산은지주 회장까지 성토하고 있다.
더욱이 7일 장 마감 후에 낸 공시였기에 개인 투자자들은 미처 대처할 시간조차 없었다. 다음날인 8일 장이 시작하자마자 하한가로 직행했기 때문이다. 개인 투자자들은 대우증권을 향해 “상도의도 없고 주주들은 안중에도 없다”며 욕설도 서슴지 않고 있다. 또 유상증자를 반대하고 이를 철회 내지는 축소시키기 위한 투자자들의 집단 움직임도 엿보인다.
유상증자로 주식 수가 늘어나면 주식 가치가 그만큼 희석된다. 투자자들이 반발하는 이유다. 대우증권 측이 이 같은 여파를 예상하지 못했을 리 없다. 그럼에도 유상증자를 강행한 까닭은 “대형 종합금융투자사업자(IB·투자은행) 자격요건을 갖추고 해외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대우증권 측 해명이다.
지난 7월 금융위원회(위원장 김석동)가 발표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개정안에는 자기자본 3조 원 이상에만 인가해주는 대형 IB(투자은행) 도입이 포함돼 있다. 지금 같은 일반 증권사와 달리 대형 IB에서는 기업 대출 업무가 가능하다.
또 앞으로 국내에서도 큰 시장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헤지펀드와 관련한 업무도 수행할 수 있다. 그야말로 새로운 금융시장이 열리는 것이다.
문제는 증자가 예상보다 훨씬 큰 규모라는 것. 지난 3월 말 현재 증권업계에서 자기자본이 가장 많은 곳은 대우증권으로서 2조 8632억 원이다. 3조 원인 대형 IB 인가 기준에 약 1400억 원이 모자란 상태. 그러나 대우증권은 그보다 10배가 많은 1조 4000억 원을 증자하려 하고 있다. 이에 대해 대우증권 측은 “3조 원 이상이라는 인가 기준만 넘어서는 곤란하다”며 “해외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새로운 비즈니스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자기자본 확충이 필수다”라고 밝혔다.
대우증권의 대규모 유상증자가 대우증권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산은지주의 ‘기획’이라는 이야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실권주를 인수함으로써 지분을 50%대로 끌어올려 지배력을 강화하고 향후 증권업과 결합도 모색하겠다는 것. 이철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번 결정(대규모 유상증자)은 대주주인 산은지주 입장에서 내려진 것”이라며 “기업금융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대우증권과 결합이 필요했는데, 이를 위해 대우증권 지분율 확대가 절실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유상증자를 통해 마련한 자금을 우리투자증권을 인수하는 데 쓸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강만수 산은지주 회장이 오래 전부터 메가뱅크(초대형은행)의 필요성을 강조해온 데다 정부에서도 메가뱅크와 대형 IB 육성에 긍정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증권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대우증권과 우리투자증권의 인수·합병 문제는 꾸준히 제기돼왔던 터라 전혀 터무니없는 얘기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반대 의견도 있다. 한 증권사 M&A팀장은 “정권 말기에 가까워지고 금융사 특성상 서로 지분 매각 등 인수·합병 문제가 쉽게 풀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대규모 유상증자는 대우증권으로 끝나지 않을 듯하다. 삼성, 현대, 우리투자 등 다른 대형 증권사들도 자기자본을 확충하기 위해 유상증자를 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해당 증권사의 주가도 덩달아 하락하고 있는 것. 이에 대해 삼성증권 측은 “자본잉여금으로도 기준을 맞출 수 있다”면서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으며 유상증자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는 말로 유상증자에 대해 부인하지는 않았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