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길 컷오프 번복 과정 계파 갈등 폭발…신구 주류 신경전 속 문재인 대통령 ‘냉가슴’
‘송영길 배제 결정(4월 19일)→결론 못 낸 재논의(4월 20일)→100% 국민경선 결정(4월 21일).’ 여권 한 인사는 민주당이 ‘송영길 카드’를 폐기 처분한 직후 친문(친문재인)계를 겨냥, “대선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선언”이라고 비판했다. 계파 갈등 이면엔 대선 책임론을 둘러싼 헤게모니가 깔렸다는 뜻이다.
민주당 전략공천관리위원회(위원장 이원욱)는 4월 19일 심야 회의 직후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송영길 전 대표와 박주민 의원에 대한 컷오프(탈락)를 전격 결정했다. 앞서의 여권 인사는 “송영길 배제는 이낙연 출마를 위한 길 터주기”라며 “(이낙연 카드가) 현실화할 경우 친문계의 총궐기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친명(친이재명계)계는 “야반 쿠데타냐”라며 폭발했다. 중도 성향 인사들도 “두 명(송영길·박주민)을 빼면 출마 선언한 후보가 아예 없었는데, 서울시장 후보자를 공석으로 만들려고 시도했던 것은 이례적”이라고 했다. 특정 후보자의 전략 공천을 위한 무리수였다는 얘기다. 송영길 컷오프 직후 친문계가 군불을 지폈던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주변에 “뜻이 없다”는 속내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친명계를 비롯한 신주류가 폭발한 지점은 ‘고무줄 잣대’였다. 앞서 당 전략공천관리위는 친문 핵심인 노영민 전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을 충북지사 후보로 단수 공천했다. 원조 친노(친노무현)인 이광재 민주당 의원에겐 강원도지사 출마를 권유했다. 이 의원은 4월 21일 “강원도의 운명을 바꾸는 도지사가 되고 싶다”며 출마를 공식화했다. 3·9 대선 이전부터 제기된 구주류의 양대 축 친노·친문이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득세할 것이란 전망이 들어맞은 셈이다.
송영길 전 대표는 컷오프 직후 “6·1 지방선거를 사실상 포기하고 민주당을 파괴하는 자해행위”라고 반발했다. 전략공천위원인 정다은 경주지역위원장은 송영길·박주민 공천 배제 직후 전격 사퇴했다. 친명계로 분류되는 박지현 공동비상대책위원장도 4월 20일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송영길 배제 결정에 대해 “충북은 부동산 실패 책임자를 공천했고 서울에선 선거 결과를 책임지고 물러난 전 당대표를 탈락시켰다”라며 “당원과 서울시, 국민을 모두 외면한 결정”이라고 친문계를 직격했다.
정치권 안팎에선 송영길 배제 직후 “친문계의 대반격 시나리오가 시작됐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이 시나리오는 3·9 대선 이전부터 여의도를 중심으로 흘러나왔는데, 민주당 구주류인 친문 진영이 ‘사실상의 대선 보이콧→대선 패배→비대위 구성→공천권 장악’ 등을 골자로 하는 플랜을 짜고 있다는 게 핵심이다. 대선 당시 이재명 캠프에 합류한 관계자들은 친문계를 향해 “마음이 콩밭에 있다”며 “정권교체고 뭐고 오로지 당권 투쟁에만 골몰하고 있다”고 비판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 와중에 이원욱 의원이 전략공천관리위원장을 맡자, SK(정세균)계가 구주류의 대반격 시나리오의 뒷배 역할을 맡은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이원욱 의원은 노무현 정부 직후 범친노계의 한 축이었던 정세균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복심이다. 이원욱 의원은 컷오프 결정 반발에 대해 “혁신공천을 흔들면 안 된다”며 “최종적인 결정 권한은 비대위에 있다”고 잘라 말했다.
당 인사들은 송영길 공천 배제를 둘러싼 갈등에 대해 “예견된 결과”라며 “대선 이후에도 할 일을 안 한 당 지도부의 명백한 실책”이라고 했다. 구주류를 비판하는 이들이 꼽은 실책은 대선 패배 원인을 담은 ‘백서 발간 뭉개기’다. 윤호중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6·1 지방선거 등을 이유로 대선백서 발간을 하반기로 넘겼다. 10여 년 선거캠프 현장에서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대선이든 총선이든 패배한 정당이 가장 먼저 하는 게 백서”라며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도 “선거 핑계로 백서를 안 쓴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했다. 계파 갈등 소용돌이에 휩싸인 민주당 비대위는 4월 20일 심야 회의에 이어 21일 국회에서 비공개 회의를 연 끝에 ‘송영길·박주민’에 대한 서울시장 공천 배제를 취소했다. 송 전 대표는 당의 컷오프 번복 결정 직후 “환영한다. 반드시 서울시장 선거에서 승리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내부 권력을 둘러싼 여권의 신구 권력 갈등에 마침표를 찍은 것은 아니다. 시기만 늦췄을 뿐, 주류 교체기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주류 교체를 둘러싼 민주당 권력투쟁의 본질은 ‘친문의 사수냐, 친명의 탈환이냐’다. 컷오프 당사자인 송영길 전 대표는 당 전략공천관리위 결정 직후 “이재명 정치 복귀를 반대하는 선제타격”이라고 규정했다. ‘송영길 배제’의 배후로 친문계를 지목한 것이다.
앞서 친문 인사들은 당 권력 사수를 위해 ‘이낙연 차출론’을 띄웠다. 이낙연 전 대표의 손사래에도 서울시장 등판론은 잦아들지 않았다. 특히 송 전 대표가 서울시장 출마를 공식화한 4월 17일 이후 이낙연 차출론은 한층 힘을 받았다. 여권 복수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낙연 전 대표는 최근까지 주변의 서울시장 출마 권고에도 불구하고 “나갈 생각이 없다”는 뜻을 피력했었다. 측근들은 이낙연 불출마 근거로 ‘6·1 지방선거 후 미국행’을 꼽았다. 이 전 대표는 지방선거 직후 미국 워싱턴 DC의 조지워싱턴대학 한국학연구소로 향한다. NY계 인사들은 “해외 공부 계획까지 세웠는데, 삼고초려해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차출설 중심에 선 이낙연 전 대표도 4월 19일 그간 침묵을 깨고 “서울시장 출마를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부 언론이 이 전 대표가 최근 윤호중 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과 만나 불출마 의사를 밝혔다는 보도가 나온 직후다.
다만 이낙연 차출설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것은 아니다. 여의도 안팎에서는 이 전 대표 출마 여부에 대해 “50 대 50 아니겠느냐”고 전망했다. NY계 인사들은 “미국행을 스톱할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는 말을 한다. 사실상 당 지도부에서 등판할 명분을 쥐어 달라는 의미로 보인다. 민주당 구주류와 신주류가 ‘원 보이스’로 단독 추대를 하면, 이 전 대표가 움직일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고립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다. 특히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정국에서 문 대통령의 고립은 극명히 드러났다. 민주당은 사실상 대통령의 만류에도 ‘풀 액셀’을 밟고 직진했다. 검수완박 정국에서 뒷짐 정치 논란에 휩싸였던 문 대통령은 4월 18일 사의를 표명한 김오수 검찰총장을 청와대로 불러 70분간 면담했다. 김 총장이 사의를 표명한 지 하루 만이다. 그간 ‘국회의 시간’이라며 침묵하던 문 대통령이 김오수 사의 반려를 통해 입법의 속도조절을 주문했다.
일각에선 문 대통령이 검수완박에 대한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고 비판했지만, 정치권 인사들은 “검수완박에 찬성했다면 김 총장 사표를 수리했을 것”이라고 했다. 여권 내부에서조차 “개혁은 검경의 입장을 떠나 국민을 위한 것” “국회의 입법도 그래야 한다” 등의 문 대통령을 발언을 거론하며 “현직 대통령이 낼 수 있는 최고 수위의 메시지”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문제는 군사작전을 방불케 한 민주당의 속도다. 문 대통령의 메시지는 ‘민주당발 풀 액셀의 제동이다. 그러나 민주당 인사들은 문 대통령이 김 총장의 사의를 반려한 그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단독으로 열었다. 여의도 정치권 안팎에선 “172석의 민주당이 대통령 메시지를 뭉갠 것”이라는 해석까지 나왔다. 높은 지지도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식물 청와대’라는 얘기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