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공부 잘해서 변호사가 됐고 나는 공부 못해서 형사가 됐다. 하지만 수사권은 나한테 있으니까 잘 봐줄까 아닌가는 내 맘이야.”
열등의식으로 비틀어진 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한번은 내가 직접 경찰에 고소를 한 적이 있다. 변호사인 나를 쳐다보는 나이 먹은 형사의 눈길이 떨떠름했다. 그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제대가 1년 남은 형사요. 이 경찰조직에서 더 이상 나를 건드릴 사람이 없어. 무서운 게 없지.”
그는 무성의하게 수사를 했다. 법률 지식도 밑바닥 수준이었다. 평생 진급을 못한 한 서린 하급경찰의 모습이었다. 그런 경찰들은 소수만 있어도 세상은 독에 오염된다.
내가 어린 시절 국민들은 못된 경찰관을 혼내는 게 검사라고 생각했다. 많이 배웠다고 인식했기 때문에 존경도 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그런 인식이 사라졌다. 왜 그랬을까. 자유당 정권은 경찰을 권력의 도구로 사용했다. 군사정권은 정보부가, 문민정권으로 들어와서는 검찰이 그 역할을 맡았다. 내가 사법연수원 시절 검사장 출신의 한 교수는 전체 연수생들 앞에서 이런 자랑을 했다.
“내가 작성한 공소장 한 장으로 재벌그룹을 작살냈어.”
또 다른 검사장은 전국의 도지사 시장 군수를 임명하는 건 국민이지만 검사는 언제든지 비리를 잡아 그들을 해임시킬 수 있다고 했다. 나를 지도했던 검사 출신 연수원 교수는 이렇게 가르쳤다.
“검사는 누구에게도 고개를 빳빳하게 해야 해. 검사의 근성이라는 게 있어. 나이가 30년 위까지는 맞먹어도 돼.”
검찰조직에서 일하는 상당수의 영혼이 병들어 있는 것 같았다. 물론 피해자를 위해 밤낮없이 일하는 성실한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러나 야망과 정치성을 가진 일부 검사가 조직을 망쳤다. 고위직 공무원의 변호인이 된 적이 있다. 그의 선거 출마를 막기 위해 그는 수사대상이 됐다. 담당 검사는 나에게 자기는 정무를 하는 거지 수사를 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그의 맘에 들게 자백을 하지 않자 언론에 자료를 흘리면 망신을 당할 텐데 하고 협박을 했다. 끝까지 버티면 다른 걸 캐서 별건으로 기소하겠다고 겁을 주었다. 그게 정치 수사의 일반적인 행태였다. 엘리트 검찰은 세련됐다. 여론의 흐름을 살피기도 하고 언론을 관리하는 기술도 탁월했다.
검찰 조사를 받은 후 빌딩 창에서 떨어져 자살한 재벌 회장도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망신 주기 검찰 조사를 받고 난 후 바위 꼭대기에 올라가 몸을 던졌다. 검찰의 오만이 하늘을 찌르면서 반발의 파도가 거세졌다. 변호사였던 문재인 씨를 대통령이 되기 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권력을 잡으면 꼭 검찰개혁을 하겠다고 했다.
문재인 정권에서 공수처가 발족했다. 그리고 마지막이 검찰 수사권의 완전박탈인 것 같다. 수사권이 경찰로 가면 정의가 이루어질까. 우리는 눈앞의 현상만 보고 그 뒤에 있는 본질에는 무심한 게 아닐까. 나는 대통령 직속기관에서 권력 내부를 깊숙이 들여다 본 적이 있다. 그때 권력 실세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검찰이나 경찰 같은 기관들은 어느 하나에만 힘을 실어 줘서는 안 돼. 적당히 무게 중심을 바꾸어야 해. 오만해지거나 국민의 원성을 살 때는 목을 쳐서 국민들 속을 시원하게 풀어주어야 하는 거야. 따지고 보면 그놈이 그놈이고 다 사냥개 역할이야. 써먹고 여차하면 죽여버리는 거야. 밑에서 보면 완장이 대단해도 위에서 보면 하바리 일회용품 같은 거지.”
새로 탄생한다는 수사기관은 권력의 하바리 도구가 안 된다는 보장이 있을까. 문제의 본질은 정의다. 민주주의 본질인 법치의 문제다. 포장과 기능을 바꾸어 장사꾼처럼 국민을 현혹시키면 안 된다. 정말 중심을 잡아야 할 것은 사법부다. 판사들이 권력에 위축되지 않고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기관을 통제했어야 했다. 교만하면 아무리 잘나도 싫어한다. ‘검수완박’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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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