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시국’ 개봉 미룬 영화 쌓이고 OTT 등 플랫폼 늘어…임수향 드라마 논란은 ‘SBS 책임론’도
#올해 상반기에만 3편 선보인 설경구
최근 극장가에서는 배우 설경구와 천우희의 얼굴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두 배우는 4월 27일 개봉된 영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의 남녀 주인공을 맡았다. 하지만 이에 앞서 두 배우는 또 다른 작품으로 대중과 먼저 만났다.
4월 8일 설경구의 넷플릭스 영화 ‘야차’가 개봉됐다. 그리고 불과 19일의 간격을 두고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가 극장에 걸렸다. 각각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와 극장이라는 서로 다른 플랫폼을 통해 공개됐지만 설경구가 전면에 나서 홍보했던 터라 대중의 기시감까지 없앨 수는 없었다.
천우희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보다 일주일 빠른 4월 20일 ‘앵커’가 먼저 개봉했다. 이 작품의 경우 그가 타이틀롤을 맡고 있는 터라 홍보 비중 역시 ‘앵커’가 더 컸다.
이 같은 상황이 벌어진 가장 큰 이유는 코로나19 때문이다. 팬데믹 기간 극장 관객 수가 크게 줄어들며 주요 영화들이 일제히 개봉을 미뤘다. 2017년 촬영한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의 경우 주연 배우로 참여한 오달수의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파문으로 인해 개봉이 연기되다 코로나19까지 겹치며 무려 5년을 표류했다. 그 결과 각각 ‘야차’, ‘앵커’와 비슷한 시기에 공개되며 설경구, 천우희 두 배우에게 모두 부담을 주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를 두고 영화계 관계자들은 “이제 시작”이라고 입을 모은다. 코로나19로 인해 개봉을 미뤄두었던 장편 상업 영화가 줄잡아 30편이 넘기 때문이다. 이 영화들은 4월 18일 사회적 거리두기가 사실상 해제된 뒤 일제히 개봉 시기를 조율 중이다. 최근 개봉한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가 엄청난 화제를 모으며 극장 산업이 회복되고 있는 터라 이 분위기에 편승하려는 눈치싸움이 치열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일부 배우들의 겹치기 출연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엄밀히 말해 ‘겹치기 출연’이라 볼 수 없다는 반응도 있다. 배우 입장에선 분명 시차를 두고 촬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봉이 연기되면서 적체 현상을 빚고 있는 터라 동시기에 여러 작품에 얼굴을 비치는 배우들을 나무랄 순 없다.
한 배우 매니지먼트 관계자는 “배우들은 오히려 피해자다. 지금 진행 중인 프로젝트들도 있는데 몰려드는 홍보 스케줄을 한꺼번에 소화해야 한다. 게다가 너무 자주 홍보 행사에 참여하면 대중들이 느끼는 피로도가 커지며 이미지가 나빠질 수도 있다”고 토로했다.
설경구의 경우 올해 상반기에만 무려 3편을 선보였다.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와 ‘야차’ 이전인 1월에는 영화 ‘킹메이커’가 개봉됐다. ‘대선에 출마한 정치인’이 3개월 뒤 ‘중국 선양에서 활동하는 스파이’가 됐다가 19일 만에 ‘명문 국제중학교 학부모인 변호사’가 된 셈이다.
설경구는 ‘야차’에 이어 일주일 만에 다시금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홍보 인터뷰에 참여하며 “데뷔 이래 이런 적은 처음이다. 지금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가 개봉할 줄 몰랐고 지금 정신이 하나도 없다”면서 “일주일 전에 다른 영화로 인사 드렸는데 이번에 또 인터뷰를 하게 됐다. 다른 어떤 배우는 작품이 일곱 개 정도 남았다고 하던데 저는 꾸준히 털고 있다. 하루 빨리 극장가가 정상화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임수향 vs 임수향, 상황이 다르다?
겹치기 출연 논란은 방송가에서도 불거졌다. 배우 임수향이 SBS 월화극 ‘우리는 오늘부터’와 MBC 금토극 ‘닥터 로이어’의 여주인공으로 비슷한 시기에 시청자들과 만나게 됐다. ‘우리는 오늘부터’는 5월 9일 이미 방송 시작됐고, ‘닥터 로이어’는 5월 27일 방송을 시작한다. 18일 정도의 시차가 있고, 편성 요일도 다르지만 이를 바라보는 업계의 시선은 곱지 않다.
방송은 ‘우리는 오늘부터’가 먼저 시작했지만, 이번 사태를 두고는 ‘SBS의 책임’이라는 목소리에 무게가 실린다. MBC가 먼저 ‘닥터 로이어’의 5월 편성을 확정했기 때문이다. 당초 SBS는 배우 서현진이 출연하는 ‘왜 오수재인가’를 월화극으로 염두에 두고 편성을 준비해왔다. 하지만 촬영 사정이 여의치 않아 방송 시기를 맞추기 어렵고, 역시 월화극으로 준비하던 배우 이준기 주연작 ‘어게인 마이 라이프’를 월화극에서 금토극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우리는 오늘부터’가 대타로 투입했다. 그러면서 불편한 상황이 연출됐다.
하지만 “향후 이런 일이 더 잦아질 것”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지상파, 종편, 케이블채널 외에 OTT 플랫폼까지 가세하면서 작품 수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한경쟁체제로 돌입하면서 서로에 대한 배려도 줄어들었다. 다른 플랫폼의 눈치를 보다가 적절한 공개시기를 놓치면 대중에게 외면받기 십상이라는 분위기가 점점 번지는 모양새다.
이런 논란에 임수향은 ‘우리는 오늘부터’ 제작발표회에서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겠다. 좋은 연기 보여드릴 테니 예쁘게 봐줬으면 좋겠다”고 했고, 연출을 맡은 정정화 PD는 “창작물을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 작품 말고 다른 이슈로 흠집이 나면 너무 마음이 아프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이런 사과는 궁극적인 사태 해결과는 무관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향후 허울뿐인 사과를 앞세운 겹치기 출연 논란은 가열될 가능성이 높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