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개인 전시회·단체장 추천서까지 보장…“급조한 중구난방 스펙, 오히려 좋지 않아”
2019년 종영한 JTBC 드라마 ‘스카이캐슬’의 주인공 한서진(염정아 분)은 딸 예서(김혜윤 분)를 서울대 의예과에 입학시키기 위해 초호화 입시 컨설팅을 시키는가 하면 범법도 서슴지 않는 인물로 그려진다. ‘스카이캐슬’이 상류층의 입시 비밀을 조명하자 한때 교육부는 불법 사교육을 잡겠다며 대대적인 단속에 나서기도 했다. 그런데 망하면 가는 곳이 ‘서울대’인 세계가 있다.
#아이비리그 가려면 2억 원부터
“드라마 ‘스카이캐슬’이요? 그래봤자 국내 대학 보내는 이야기잖아요. 진짜는 해외 대학 입시죠. 정말 돈 있는 집은 국제학교에서 외국으로 대학을 보내요. 빠르면 초등학생 때 시작해서 대학교 입학할 때까지 컨설팅을 받아요. 그러다가 잘 안 되면 서울대 가는 거고….”
5월 9일 만난 강남의 한 입시전문가는 “‘스카이캐슬’에서 나오는 고액 입시 컨설팅은 해외 대학 입시에 들어가는 돈에 비하면 ‘새발의 피’ 수준”이라고 말했다. 평균적인 컨설팅 비용은 1년에 3000만~5000만 원 선이고 지원비는 따로 2000만 원 정도 든다. 이마저도 업체마다 ‘부르는 게 값’이라고 했다.
암암리에 운영되는 컨설팅 업체 가운데 억대의 컨설팅 비용을 요구하는 곳도 있다. 제보에 따르면 한 컨설팅 업체는 아이비리그 등 미국 명문대학 지원비를 포함해 포트폴리오와 레쥬메(자기소개서) 작성 등의 기본적인 컨설팅 비용으로 2억 원이 넘는 금액을 일시불로 결제할 것을 요구했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해당 업체의 계약서에는 “컨설팅 특성 상 입시에 관한 모든 것이 동시에 시작되며 환불이 불가하다”고 쓰여 있었다.
도대체 무엇을 해주기에 억 단위의 돈이 필요할까. 해당 업체가 컨설팅으로 제시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국내외 봉사단체 가입’, ‘리더 직위 부여’, ‘글로벌 단체와 산하 기관이 인증하는 봉사점수 100점 보장’, ‘국내 최대의 인권단체 가입 및 활동’, ‘정치 관련 단체 가입’ 등은 기본이고 ‘남들과 차별화된 스포츠클럽 활동’도 가능하다고 했다. 글을 쓰는 경우 이력에 남길 수 있는 ‘아카데믹한 기자단 활동’도 지원하는 것으로 보였다.
외부 추천서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해당 업체는 단체장의 외부 추천서를 3개까지 보장했다. 특히 “강력한 에세이를 보장”도 명시했는데 해외 명문 대학 출신의 박사와 함께 에세이를 쓰고 첨삭하는 것은 물론 박사 과정의 재원이 각 대학의 입학 인터뷰를 준비해 준다고도 했다. 미대 진학을 원할 경우 아트 포트폴리오 진행과 개인 전시회를 개최하는 것도 가능했다. 물론, 전시회에 올릴 작품 제작에는 별도의 비용이 들었다. 결국 2억 원은 최소한의 비용이었다.
‘억’ 소리 나는 컨설팅 비용에는 이유가 있다. 애당초 국제학교 학비부터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 자녀와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자녀 등이 다니는 것으로 유명한 인천 송도의 채드윅국제학교 1년 학비는 3000만~4000만 원이다. 2021년 기준 고등학교 과정은 약 4500만 원, 중학교는 4100만 원, 초등학교와 유치원은 3800만 원 수준이다. 여기에 스쿨버스 등 별도로 들어가는 비용을 합치면 고등학생의 경우 학비만 5000만 원을 웃돈다. 국제학교가 몰려있는 제주도 브랭섬홀 아시아의 경우 입시를 앞둔 12학년의 학비가 약 4100만 원대다.
앞서의 입시전문가는 “아무리 그래도 컨설팅 명목으로 억 단위로 받는 곳이 많지는 않다”면서도 “학비만 1년에 5000만 원이니까 사교육비는 1억~2억 원 정도 잡고 들어가시는 분도 있긴 하다. 부담되지만 자녀의 문제니 강행하시는 분도 계시고 ‘이 정도는 쓸 수 있다’는 분도 계시고 다양하다”고 말했다.
자녀가 국내 한 국제학교 10학년에 재학 중이라는 학부모는 “중학교까지 사립학교를 보내다가 아이가 좀 더 다양한 공부를 해봤으면 하는 마음에 국제학교를 보냈는데 정보가 너무 부족했다. 무엇보다 ‘잘하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반문이 계속 들어 조언이 절실했다. 이런 이유로 처음 컨설팅을 받고 나면 아이의 부족함이 보이기 시작하고 이것저것 다 해주는 선생님에게 기대게 된다. 어느 정도 상술이라는 걸 알면서도 결국 이 막막함과 불안함 때문에 컨설팅을 받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부풀린 스펙 드러나면 퇴학까지”
그렇다고 모든 국제학교 학생들이 모두 재벌가의 자녀라든가 초호화 컨설팅을 받는 건 아니다. 특히 고액 컨설팅은 국제학교 학부모 사이에서도 찬반 여론이 큰 주제 가운데 하나다. 교내 입시 컨설턴트의 도움만으로도 명문대에 간 사례가 있는가 하면 여력이 되면 받는 것이 좋다는 입장도 있다. 과도한 금액을 요구하는 업체는 지양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 다수의 의견이긴 하지만 워낙 암암리에 운영되는 탓에 거르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직지아카데미의 박종성 원장은 일부 사설 업체의 과도한 컨설팅 행태를 비판했다. 그는 “컨설팅 업체 가운데 제대로 된 신고도 없이 영업하는 곳이 적지 않다. ‘1~15위 명문대에 원서를 넣어준다’, ‘필요한 스펙은 다 만들어준다’면서 1억~2억 원을 요구하는데, 사실 학교 홈페이지 들어가서 원서 넣는 것일 뿐 특별할 것이 없다. 계약서는 조악하거나 허술하고 명문대 나왔다는 선생님들은 학위 증명도 제대로 안 된다. 그러다 막상 입시에 떨어지면 ‘아이가 부족해서 그렇다’고 한다. 업계에서 사라져야 할 나쁜 관행”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해외 대학, 특히 미국 대학에 대한 오해가 많다”며 “미국 대학이 굉장히 자유롭고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그런데 미국만큼 합격 기준이 모호한 곳이 없다. 국내 입시에서 정시는 수능 점수라는 명확한 기준이라도 있지만 미국 대학은 무엇 때문에 붙고 떨어지는지 알 수가 없다. SAT(1600점 만점) 1400점을 받는 애가 최상위권 학생보다 더 좋은 대학을 들어가기도 한다. 아니라고는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아시아인 쿼터도 적용하고 있고 각 학교가 특정 시기에 원하는 학생도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결국 상당 부분 ‘운’도 작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역설적이게도 학부모들은 이런 모호함 때문에 더욱 컨설팅 업체를 찾는다. 무엇이 합격에 영향을 주는지 알 길이 없으니 에세이부터 봉사활동, 개인전까지 다양한 스펙을 만들어 둘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박 원장은 “컨설팅을 받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나쁜 컨설팅은 받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기본에 충실하되 자신만의 강점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중요한 건 일련의 활동에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에세이든, 수상 내역이든 활동 주제가 중구난방이면 좋지 않다. 게다가 부풀려진 스펙으로 합격한 학생은 학교에 들어간 순간부터 그 스펙을 본인이 증명해야 한다. 특히 미국 학계에서 표절은 사망 선고나 다름없기 때문에 입학하고 나서 뒤늦게 퇴학을 당한 사례도 꽤 있다. 단지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국‧영‧수‧사‧과를 배우지 않는 국제학교 학생들
해외 대학을 가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최근 국내 국제학교의 트렌드는 국제 바칼로레아라고 불리는 IB(International Baccalaureate) 커리큘럼이다. 스위스에 본부를 둔 비영리 교육재단 IBO(IB본부·International Baccalaureate Organization)가 개발해 운영하는 교육과정인데, 이 가운데 IB Diploma(IBDP)는 고등학교 과정이다. 전세계 150여 개국 2000여 개 대학이 IB 점수로 학생을 선발하고 있는데 수능에 빗대어 설명하면 수능 점수 하나로 전 세계 여러 대학에 입학 지원이 가능한 셈이다.
쉽지는 않다. 언어와 문학, 언어 습득, 개인과 사회, 과학, 수학과 예술 총 6개의 그룹에서 각각 한 과목을 골라 2년 동안 공부하고 시험을 통해 최종 성적을 받는다. 6개 과목 가운데 3~4개는 심화 수준(Higher Level·HL), 2~3개는 표준 수준(Standard Level·SL)으로 이수해야 한다.
6개의 과목 외에도 반드시 해야 하는 3개의 코어(핵심 요소)들이 있다. Theory of Knowledge(TOK, 지식이론), Extended Essay(EE, 소논문)과 Creativity, Activity, Service(CAS·창의, 활동, 봉사)이다. TOK는 지식의 본질을 탐구하고 생각하는 방식에 대해 고찰해 보는 과정이고, EE는 관심 있는 과목을 선택해 연구하고 이에 대해 4000단어 수준의 글을 작성해 내는 것이다. 일반적인 에세이보다는 길고 논문 수준에는 미치지 못해 소논문이라고 부른다.
CAS는 동아리 활동 및 봉사 활동, 혹은 운동이나 음악 활동 등 취미 생활을 기록하는 것이다. 단기간의 활동은 안 되고 타인과 함께 하는 장기 프로젝트 활동으로 구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국내 입시로 치면 비교과 활동에 견주어 볼 수 있다.
IBDP는 6개 과목이 각각 7점으로 총 42점에 나머지 TOK와 EE가 3점으로 총 45점 만점이다. CAS는 따로 점수를 내지 않지만 CAS 없이는 IBDP 취득이 불가하기 때문에 반드시 이수해야 한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