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내과 의사들 사이에 ‘역병 6년 주기설’ 나돌아…원인 불명 소아 급성 감염 방역당국 예의주시
코로나19가 전세계인의 시선을 사로잡기 시작했던 2020년 1월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C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당시만 해도 미국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8000만 명을 넘기고 사망자도 100만 명이나 나올 것이라곤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5월 11일 14시 기준 전세계 확진자 수는 5억 1870만 5135명이며 사망자는 625만 5403명이나 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물론 전세계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수치다.
문제는 언젠가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은 끝나겠지만 머지않은 시점에 새로운 전염병이 다시 등장해 다시 한 번 전세계를 팬데믹 상황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요즘 전세계는 ‘전염병 포비아’로 시름하고 있다.
#"다음 전염병이 더 무섭다" 빌 게이츠의 경고
최근 과학저널 ‘네이처’에는 미국의 조지타운대 생물학과, 국제 보건과학·안전연구센터, 뉴욕 에코헬스 얼라이언스, 코네티컷대 에버소스 에너지센터, 퍼시픽 루터대 생물학과 등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타운대 아프리카 기후·발전 이니셔티브가 공동으로 진행한 연구 결과가 실려 눈길을 끌었다.
기후변화로 인해 2070년까지 최소한 1만 5000가지의 새로운 이종 간 바이러스성 감염병이 나타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담긴 연구 결과다. 기후 온난화로 인한 생태계 파괴로 그동안 접촉이 없던 포유류들이 접촉하게 되면서 새로운 바이러스를 공유하게 되고, 이런 포유류들이 서식지가 파괴돼 서서히 인간 거주지와 가까운 곳으로 이동하며 인수공통감염병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연구 결과다. 결국 기후 온난화를 막지 못한다면 사스, 메르스, 코로나19와 인수공통감염병이 다시 등장하게 된다는 의미다.
문제는 언제쯤 등장하느냐인데 여기서 눈길을 끄는 게 6년 주기설이다. ‘의약뉴스’ 보도에 따르면 최근 평택시의사회 춘계학술대회에 발제자로 나선 고대안산병원 감염내과 최원석 교수가 ‘역병 6년 주기설’을 언급했다. 이 자리에서 최 교수는 “인류를 위협할 수 있는 신종 감염병은 계속 등장할 것이다.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를 경험한 뒤 감염내과 의사들이 사이에 ‘역병 6년 주기설’이 나돌고 있다”며 “6년마다 무슨 일이 터졌는데 이젠 훨씬 더 잦은 빈도로 큰 임팩트를 가진 감염병을 경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02년 사스, 2008년 신종플루, 2014년 메르스, 2020년에 코로나19로 이어진 6년 주기설이다. 그렇다면 다음은 2026년인데 앞으로는 그 주기가 6년보다 더 짧아질 수도 있다는 지적으로 그만큼 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는 의미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는 차기 팬데믹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을 저술한 책을 연내 발간 예정인데 이 책에는 “다음 전염병이 코로나19 바이러스보다 치명률과 감염률이 더 높을 것”이라는 경고가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되고 있다.
#원인 불명 소아 급성 간염, 한국에서도 첫 신고 접수
이런 흐름 속에서 전세계는 새롭게 등장하는 각종 전염병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원인 불명의 소아 급성 간염’이 눈길을 끌고 있다. 4월 5일 영국에서 최초로 보고된 뒤 5월 4일 기준 19개국에서 총 237건이 발생해 총 4명이 사망했다. 게다가 간 이식이 필요한 환자도 최소 18명으로 파악되고 있다.
영국이 145명으로 가장 많고 미국(19명), 이탈리아(17명), 스페인(13명), 이스라엘(12명) 등에서 많이 환자가 보고됐고 일본(1명), 인도네시아(3명), 싱가포르(1명) 등 아시아 지역에서도 속속 사례가 접수되고 있다. 한국 방역당국도 5월 10일 원인 불명의 소아 급성 간염 의심 신고가 처음으로 접수됐다고 발표했다.
주로 생후 1개월 신생아부터 16세 사이의 소아 환자들이 급성간염에 걸렸는데 황달, 복통, 설사, 구토, 위장 관련 증상이 보고됐다. 발생 환자들 가운데 아데노 바이러스 양성자가 최소 74명, 코로나19 바이러스 양성자가 최소 20명으로 알려졌는데 이번에 국내에서 최초로 신고된 의심 환자 역시 아데노 바이러스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동시에 검출됐다.
아직 환자 수가 그리 많지 않지만 원인 병원체조차 규명되지 않아 ‘아데노 바이러스 41F형’으로 추정만 하고 있을 뿐이다. 팬데믹이 될 만큼 전염성이 강한지 여부는 아직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영유아와 소아를 대상으로 감염이 이뤄지고 있는 데다 중증도도 심해 전세계적으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여전히 신경 쓰이는 코로나19 변이
문제는 코로나19 이후의 새로운 인수공통감염병을 논하기에 앞서 여전히 코로나19 팬데믹도 미처 극복하지 못한 상황이라는 점이다. 빌 게이츠 역시 5월 1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여전히 코로나19 팬데믹이 더 전염성 강하고 심지어 더 치명적인 변이를 만들어낼 위험에 놓여 있다”며 “가능성은 적지만 우리가 코로나19 팬데믹의 최악을 아직 경험하지 못했을 위험성이 5%보다 훨씬 높다”고 말했다. 한편 빌 게이츠는 5월 10일 코로나19에 확진됐는데 증상은 가벼운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 상황에선 ‘오미크론’ 이후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인 ‘파이’가 언제 등장하느냐가 관건인데 전염력은 다소 강해질지라도 치명률과 위중증률은 더 낮아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팬데믹이 엔데믹(풍토병)으로 가고 있다는 관측이 이런 예측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렇지만 빌 게이츠가 언급한 것처럼 ‘더 전염성 강하고 더 치명적인 변이’가 등장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순 없다.
최근에는 ‘뉴욕 변이’라 불리는 스텔스 오미크론(BA2)의 하위 변이인 ‘BA.2.12.1’가 눈길을 끌고 있다. 오미크론보다 전파력이 30%가량 높은 스텔스 오미크론보다도 전파력이 25% 더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최근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또 다른 오미크론 하위 변이인 ‘BA.4’와 ‘BA.5’도 확산하고 있다. 모두 오미크론보다 더 전염력이 강력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위중증률에선 큰 차이가 없어 치명률을 높이는 위험 요소가 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도 5월 10일 기준 6명의 ‘뉴욕 변이’ 확진자가 집계됐는데, 모두 미국에서 입국한 해외 유입 사례다.
전파력이 더 강력한 변이의 등장이 일일 신규 확진자 수 감소 흐름을 더디게 하고 일정 부분 상승 전환시킬 수도 있지만 오미크론 하위 변이로 인해 다시 대유행이 시작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오미크론 대유행이 시작할 당시인 2022년 1월 20일에는 코로나19 누적 확진자가 71만 2503명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1765만 8794명(5월 11일 14시 기준)으로 급증했다. 현재는 밀접접촉자까지 추적해 PCR(유전자증폭) 검사를 하는 방역 체제가 아니다. 감염 사실을 모르고 지나간 확진자와 자기진단검사로 확진을 확인한 뒤 방역당국에 알리지 않고 셀프 자가격리를 한 확진자 등을 합치면 이미 실제 누적 확진자는 2000만 명을 넘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전체 인구 대비 누적 확진자 수가 매우 적어 감염력이 높은 오미크론 변이로 인해 대유행이 시작됐던 2022년 1월과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파이’로 명명될 새로운 변이가 어떤 모습과 특성으로 등장할지 여부는 여전히 초미의 관심사다. 하지만 위중증률이 현재 상황을 유지하거나 더 낮아진다면 전염력이 더 높아진 오미크론 하위 변이들도 그리 큰 위협은 되진 않을 전망이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전동선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