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기간 영화산업 구조 변화…직원들 ‘12시간 근무 곡소리’에도 극장들 “당장은 알바 중심 채용”
그런데 영화의 흥행이 코로나19 기간 동안 응대 인력을 최소화한 극장 현장에 다른 형태의 충격으로 이어졌다. 인력 부족으로 근무자들의 노동 강도가 급격히 올라 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인력난이 영화산업의 구조 개편과 맞물려 쉽게 해결될 수 없다는 점에 있다. 극장 3사(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는 일단 단기 근로자 채용을 늘려 급한 불은 끄겠다는 방침이다. 근본적인 해결은 요원한 셈이다.
지난 5월 6일 직장인 익명 사이트 블라인드에는 극장 직원들이 휴게시간도 휴무일도 보장받지 못하고 혹사당하고 있다는 글이 올라왔다. CGV에서 일하고 있다고 밝힌 A 씨는 “매점엔 대기고객만 300명이 넘어가고 미소지기 2명이서 모든 주문 다 해결하고 있으며 정직원도 12시간씩 서서 밥은커녕 물도 못 마시고, 화장실도 못 가고 일하고 있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 역시 마찬가지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4월 18일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로 ‘띄어앉기’가 사라지면서 각 상영관에서 수용 가능한 인원은 배로 늘었다. 4월 25일부터는 상영관 내부에서 팝콘 등 매점 음식이 취식이 가능해졌다. 매출 실적 개선을 기대한 극장 3사도 홍보 영상을 송출하고 ‘영화 주간’(무비 위크) 동안 캠페인 전용관을 자유 입장할 수 있는 팔찌를 판매하는 등 공동 마케팅에 열을 올렸다.
서울 시내 한 메가박스 매장에서 일하고 있다고 밝힌 B 씨는 “실적 개선만 기대할 것이 아니라 인건비에도 충분한 투자를 했어야 한다”라며 “마블의 초대형 최신작이 어린이날을 앞두고 개봉했고 직후가 주말이었던 데다가 바로 직전 주에 매점 음식이 취식 가능한 상태로 바뀌었다. 거의 20분마다 상영하게끔 배치해놓고 인력은 그대로니 현장에선 지금 거의 곡소리가 나온다”고 지적했다.
지난 주말에 서울 시내 극장에서 영화를 봤다고 밝힌 직장인도 “오랜만에 팝콘을 먹나 싶었는데 매점 대기 번호가 100번이 넘어가길래 포기했다”며 “평소와 달리 표 검사나 퇴장 안내하는 직원도 없었다”고 말했다.
‘수요 예측에 실패했다’는 것이 극장 3사의 공통된 입장이다. 3사 모두 나름대로 대비를 했지만 예상보다 너무 많은 인파가 극장에 몰렸다는 것이다. 설령 극장 3사가 수요 폭증을 예측했다고 하더라도 이미 코로나19 기간 동안 지나치게 인력을 줄이며 체질을 바꾼 탓에 인력 충원이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와 관련, 이문행 수원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코로나가 2년 이상을 끌며 장기화했기 때문에 기존 인력들이 영화관을 떠나 다른 직장을 구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라며 “이들이 아무 교육 없이 투입될 수 있는 게 아니라 숙련이 필요한 업무를 맡기 때문에 극장 업무에 특화된 노동력을 다시 모으는 건 단기간에는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영화 산업은 코로나19 유행 기간 동안 빙하기를 겪은 대표적인 분야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2019년 한국의 국민 1인당 연평균 관람횟수는 4.37회로 세계 1위 수준이었지만 2021년에는 1.17회로 세계 10위권으로 떨어졌다. 극장의 수익도 급전직하했다. 실제 CGV 매출액은 2019년 1조 46억 원에서 2021년 3286억 원으로 3분의 1 수준으로 감소했다. 상장을 추진하던 롯데시네마랑 메가박스도 기업공개를 엄두도 못 낼 만큼 매출이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업황이 안 좋다 보니 업계는 인건비를 줄이는 데 사활을 걸었다.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전인 2019년 12월과 2021년 12월의 직원수를 비교하면 CGV 정규직 직원은 5058명에서 2993명으로, 아르바이트 노동자 수는 2010명에서 565명으로 줄었다.
서울의 한 CGV 매장에서 미소지기로 근무하는 C 씨는 “본사에서 다양한 특수관을 모아놓은 플래그십 상영관을 제외하고는 전국 모든 일반 매장에 관리자 1명과 아르바이트 2명이 상시 근무하는 '1+2' 방침을 밀고 있다고 들었다”며 “저희 매장도 3명의 매니저가 3교대로 근무하고 평일에는 오픈·미들·마감 세 타임씩 미소지기 2명이 근무한다”고 말했다.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도 상황은 대동소이하다.
현장 직원들은 지금부터 성수기라며 인력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훈련과 교육이 필요한 단기 노동자보다는 당장 투입이 가능한 관리자급 정규 직원의 충원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지만 극장들이 이제 와서 인력을 충분히 늘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코로나19 유행기 동안 영화 산업구조가 격변한 탓이다.
코로나19 유행 이전에는 극장에서 우선 개봉한 영화가 이후 부가판권시장으로 넘어가며 수익을 내는 구조를 유지해 왔다. 그런데 코로나19 유행을 계기로 극장 관객이 급격히 감소하자 OTT 등 온라인 플랫폼이 급성장하며 기존의 수익 구조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영화는 반드시 극장을 거쳐 개봉해야 한다는 전통이 파괴되고 극장 상영 없이 OTT나 온라인 플랫폼에서 곧바로 영화를 개봉하는 사례가 급증한 것이다. 관객을 극장으로 유인할 '흥행 대작'이 이어진다는 보장도 없다. 이런 추세 속에서 극장이 섣불리 인력을 충원했다가는 고스란히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문행 교수는 “코로나 이전에 왓챠, 웨이브, 티빙 등 토종 OTT들이 주류였고 넷플릭스 정도만 들어와 있었는데 지금은 아마존부터 시작해서 애플TV 플러스에 디즈니 플러스까지 오리지널 콘텐츠로 무장한 해외 OTT들이 다 들어왔다”며 “코로나가 종식되어가고 있지만 대형 스크린을 이용해 안방에서 편리하게 시청할 수 있는 OTT를 영화계가 어떻게 경쟁에서 물리치고 차별화할 수 있느냐가 앞으로의 커다란 숙제가 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극장 3사 역시 당장은 정직원보다 단기 근로자 중심으로 인력을 채용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CGV 관계자는 “지금은 미소지기를 좀 더 뽑는 형식으로 충원이 이뤄질 것 같고 정직원의 추가 채용은 더 논의가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롯데시네마 관계자는 “일단 아르바이트 위주로 채용 중이고 정직원의 경우 결원이 발생한 부분 위주로 상시 채용 중”이라고 밝혔다. 메가박스 관계자는 “방역조치가 풀리면서 모든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인력을 채용하려다 보니까 사람 구하기가 쉽지 않다”면서도 “최대한 인력을 충원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