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 전 ‘사용검사’ 두고 문화재청 vs 건설사 다시 강경모드…‘예외 단지’로 남을 가능성도
문화재청과 건설사(대광이엔씨·시공 대광건영, 제이에스글로벌·시공 금성백조, 대방건설·시공사 동일)의 갈등은 2021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문화재청 직원이 김포지역의 다른 현장 조사를 위해 근처를 방문했다가 문제의 아파트를 발견한 것이다. 뒤늦게 부랴부랴 문제를 파악한 문화재청은 지난해 8월 3개 건설사와 허가를 내준 인천 서구청 직원을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8월부터 해당 아파트를 두고 문화재위원회가 심의를 진행했는데 문화재청과 건설사 양측은 한 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경관 훼손’이 제일 큰 문제라고 판단한 문화재청은 스카이라인의 철거를 제외한 수정안은 전부 퇴짜를 놓았다. 철거를 수용할 수 없었던 건설사 3곳은 현상변경 허가 신청을 철회한다. 결국 이 문제는 본안 소송으로 이어지게 된다.
본안 소송이란 원고의 청구 또는 상소인의 불복 주장에 대해 법원에 판단을 구해 권리를 확정짓는 소송이다. 문제는 법원의 판단을 구하기 전에 아파트 공사를 어떻게 하느냐다. 아파트가 완공될 경우 철거 시 침해되는 사회적 비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경관을 침해하지 않도록 원상복구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도 철거가 아니라 돈으로 배상하라는 판결이 내려질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을 염두에 둔 문화재청은 이들 건설사가 짓고 있는 검단신도시 3400여 세대 규모 아파트 44동 중 19개 동의 공사를 중지하라고 명령한다.
반면 예정대로 아파트를 완공하고 분양을 마무리해야 하는 건설사 입장에서는 공사 중단은 치명적인 시나리오다. 건설사들은 즉시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내며 맞불을 놓았다. 앞서 서울행정법원은 대방건설이 낸 집행정지 신청 1건만 받아들이고 대광이엔씨와 제이에스글로벌의 집행정지 신청은 기각했으나 2심인 서울고등법원이 항고 사건에 두 건설사의 손을 들어줬다. 1심에서 이미 공사 중지 명령 집행정지를 받아낸 대방건설은 2심에서도 동일한 법원 결정을 받아든다. 결국 공사가 재개됐다.
아파트가 완공되면서 논란은 2라운드에 접어든 모양새다. 지금은 건물을 지은 건설사가 아파트의 소유주다. 문화재청은 소유주인 건설사가 문화재 보호법을 위반하고 아파트를 건설한 사실을 ‘불법행위’로 보고 원상복구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입주가 진행되면 건설사에서 입주민들에게로 소유권이 넘어가게 된다. 이 경우 상황이 복잡해진다. 문화재보호법을 위반한 주체는 입주민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에게 불법행위의 책임을 물을 수는 없게 되기 때문이다.
건설사와의 적법한 계약으로 소유권을 취득한 입주민에게 문화재청이 제3자로서 청구할 수 있는 권한은 전무하다. 즉 입주가 성사되면 소유관계가 복잡해져서 철거가 요원해진다는 뜻이다. 문화재청 입장에서는 공사 중지명령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이 기각됐어야 소유권을 지닌 건설사와 계속 다툴 수 있는데 현재로서는 가처분 신청이 인용된 상황이다. 문화재청이 주민 입주를 막으려고 사력을 다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민이 입주하려면 건설사들은 실제 입주가 가능한지 ‘사용검사’ 신청을 해야 한다. 김포 장릉 인근 아파트의 경우 관할 구청인 인천시 서구청이 사용 승인을 내주어야 입주가 가능해진다. 문화재청이 서구청에 보낸 ‘사용검사 처리 유보 요청 공문’은 건설사들이 신청할 경우 유보해달라는 내용이다. 문화재청이 행정협의조정위원회에 넣은 ‘준공 유보 신청’ 역시 입주를 유보하기 위한 행정조정신청이다.
서구청 관계자는 문화재청의 ‘사용검사 처리 유보 요청 공문’에 대해 4월 21일 회신했으나 내부 검토 중이라며 상세 내용은 밝힐 수 없다고 입장이다. 서구는 조정위원회에서 관련 의견을 제출해달라는 공문도 받은 상태다. 서구 관계자는 “의견을 아직 보내지 않은 상황이지만 의견을 보낸 후에도 상세 내용은 공개하지 않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구 측이 비공개 방침을 고수하는 이유는 입주민의 주거권과 결부된 민감한 사안이다 보니 와전된 내용이 흘러나갈 경우 여파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입주를 준비하는 주민들 입장에서는 날벼락인 상황이다. 그렇다보니 지난해부터 서구청과 문화재청에는 민원이 빗발치고 있다. 문화재청 홈페이지에도 2021년 8월~12월 동안 문화재청을 규탄하는 내용의 민원글이 150건가량 올라온 상태다. 이와 관련해 문화재청 관계자는 “무분별한 개발 때문에 망가진 문화재들이 그간 얼마나 많았느냐”며 “저희는 문화재를 보호해야 할 임무가 있기 때문에 해야 할 업무를 하는 것뿐이고 입주민과 관련해서는 건설사가 책임져야 할 문제”라고 답했다.
문화재청의 이번 조처와 관련해 대방건설의 경우 입주 예정 시기가 9월이라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상황이다. 대방건설 관계자는 “아직 저희는 사용검사를 신청할 시기가 아니기 때문에 다른 단지를 두고 어떤 결론이 날지 지켜보고 있는 입장”이라며 “가장 중요한 것은 본안 소송이기 때문에 소송 결과를 기다리는 상태”라고 밝혔다. 대광이엔씨와 제이에스글로벌 측은 연락을 시도했으나 닿지 않았다.
법무법인 차율의 고형석 변호사는 “구청에서 사용검사를 승인할 경우 소유권자는 보존등기를 할 수 있게 되고 전·월세 세입자들도 입주를 신고할 수 있게 된다”며 “이번에 입주를 막지 못하면 굉장히 많은 이해관계자가 개입하게 되기 때문에 문화재청에 불리한 상황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다른 변호사 역시 “이미 다 지은 아파트를 철거하기에는 너무 큰 사회적 비용이 들기 때문에 문화재보호법 위반을 이유로 건물철거청구인용판결이 나올 확률은 높지 않다”며 “이미 공사 중지와 관련한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이 승인돼 철거가 현실화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상황인데 위원회나 관련 지자체가 문화재청 요청을 받아들여 입주가 지연되도록 처리할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건설업계에 일각에서는 논란이 된 김포 장릉 인근 아파트가 ‘예외’로 남을 수도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아파트가 철거될 가능성은 대단히 낮아 보이고 아마 입주도 예정대로 진행될 것 같다”며 “다만 문화재청이 앞으로 관련 규정을 더 세밀하게 정비할 것으로 보이고 건설사들도 굳이 머리 아픈 송사와 분쟁을 겪고 싶어 하지는 않을 것이므로 검단 신도시 아파트가 문화재 주변에 지어지는 ‘예외 단지’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