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업·국적·지분 확보 등 넘어야 할 산 많아…말 아끼는 롯데케미칼 “아직 공개할 내용 없어”
#신유열 씨와 롯데케미칼
신유열 상무는 일본 게이오대학교를 졸업한 후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를 취득했다. 그는 노무라증권을 거쳐 2020년 일본 롯데홀딩스 부장으로 합류한 데 이어 최근 롯데케미칼 일본지사 상무에 취임했다. 겸직인 셈이다. 아버지 신동빈 회장와 유사한 행보다. 신 회장은 과거 컬럼비아대학교 경영학 석사를 취득한 후 노무라증권과 일본 롯데상사를 거쳐 호남석유화학(롯데케미칼 전신)에 입사했다.
롯데케미칼 내에서 일본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연결 기준 18조 1205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롯데케미칼재팬의 지난해 매출은 337억 원에 불과하다. 롯데케미칼재팬의 자본총액은 지난해 말 기준 26억 원 수준으로 롯데케미칼 전체 자본총액(15조 4512억 원)의 0.1%도 되지 않는다.
다만 신유열 상무가 입사한 곳은 롯데케미칼 일본지사로 롯데케미칼재팬과는 다른 곳이다. 대외적으로는 롯데케미칼 일본지사와 롯데케미칼재팬 모두 일본 내 판매 활동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롯데케미칼 일본지사는 판매 활동보다 시장 조사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롯데케미칼의 일본 내 사업이 아직까지 비중은 크지 않지만 최근 몇 년간 보폭을 넓히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2020년 일본 최대 화학 업체인 쇼와덴코 지분을 매입했고, 올해 2월 쇼와덴코 주식 204만 5100주를 520억 5000만 원에 추가 인수했다. 현재 롯데케미칼의 쇼와덴코 지분율은 4.90%다. 뿐만 아니라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일본 JSR 엘라스토머 사업부 인수도 추진했다가 실패했다. 엘라스토머는 탄성을 가진 플라스틱 소재로 자동차 범퍼, 기능성 필름, 건물 방음재 등에 사용된다. 이 외에도 일본 기업 3~4곳에 투자를 추진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신유열 상무가 맡은 역할도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롯데케미칼 일본지사에서 해외 투자 관련 업무를 맡고 있다. SK그룹, LG그룹, 한화그룹 등의 화학 계열사는 태양광이나 2차전지와 같은 신사업에 진출했지만 롯데케미칼은 상대적으로 이렇다 할 신사업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플라스틱 재활용 신사업에 뛰어들기는 했지만 아직 가시적인 실적으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신 상무의 투자 결정이 롯데케미칼 신사업 방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셈이다.
롯데케미칼의 실적이 하락세에 있고, 향후 전망도 낙관적이지는 않은 만큼 대규모 인수합병(M&A)이나 투자도 신중히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롯데케미칼은 최근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해 영업이익률이 크게 줄었다.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롯데케미칼의 매출은 지난해 1분기 4조 1683억 원에서 올해 1분기 5조 5863억 원으로 늘었지만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6238억 원에서 826억 원으로 86.8% 감소했다.
황성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롯데케미칼에 대해 “중국 상하이를 중심으로 도시를 봉쇄하면서 전반적인 전방 산업의 수요가 부진했고, 화학 구매심리도 동반 위축되며 최악의 시황이 지속되고 있다”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나프타 가격 상승 영향이 본격 반영되며 손익이 악화할 전망”이라고 전했다. 이와 관련,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신유열 씨는 롯데케미칼 일본 지사에서 투자 관련 업무를 하고 있다”면서도 “투자 계획 등에 대해서는 아직 공개할 수 있는 내용이 없다”고 전했다.
#멀고도 험한 승계의 길
신유열 상무가 그룹의 후계자가 되기에는 해결해야 할 숙제가 산적하다. 우선 신 상무는 보유 중인 롯데그룹 계열사 지분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의 행보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광윤사 지분 50.2%를 갖고 있고, 광윤사는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 28.1%를 가진 최대주주다. 또 호텔롯데의 최대주주는 지분율 19.07%의 일본 롯데홀딩스다. 즉, ‘신동주→광윤사→일본 롯데홀딩스→호텔롯데’로 이어지는 구조다.
현재 일본 롯데홀딩스와 호텔롯데가 가진 롯데지주 지분은 보통주 기준으로 각각 2.49%, 11.10%다. 신동빈 회장의 롯데지주 지분율은 13.04%이지만 우호지분 등을 합하면 50% 이상의 지분을 확보한 상황이다. 하지만 추후 지분 승계 과정에서 상속세 납부 등의 이유로 지분율이 희석될 수 있으므로 신 회장과 신유열 상무가 안심할 수만은 없다.
신유열 상무가 한국에 연고가 없다는 것도 약점으로 꼽힌다. 신 상무의 현재 국적은 일본이고, 한국어도 서툰 것으로 전해진다. 그간 롯데그룹이 수차례 국적 논란을 겪었던 점을 감안했을 때 신 상무의 귀화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현행법상 만 38세부터 병역이 면제되므로 1986년생인 신 상무는 2025년이 돼야 병역 의무로부터 자유로워진다. 따라서 그의 귀화 시기도 2025년 이후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재계 관계자는 “한국에서 각종 대외활동을 하거나 협회장을 맡을 때 일본 국적이면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며 “39세가 되자마자 귀화하면 너무 속 보이는 행동이므로 비판을 받을 수 있으니 아예 40대 중반 이후에 귀화를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신동빈 회장은 신유열 상무 외에도 장녀 신규미 씨와 차녀 신승은 씨를 자녀로 두고 있다. 신규미 씨와 신승은 씨는 아직 롯데그룹에 합류하지 않았고, 일본 사기업에 근무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