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명가량 평균 수백만 원 결제…입점 유통사별 대응 달라 상대적 박탈감 느껴
2016년 설립된 크레빌은 선불형 영어키즈카페·어학원으로 대형 백화점·쇼핑몰·아울렛 등에 입점해 있다. 영업 중단 전까지 서울, 울산, 전주 등 전국 주요 지점에 총 15개 점포가 운영되고 있었다. 원어민 강사와 함께 프리미엄 영어교육 콘텐츠로 놀이를 진행해 학부모들 사이에서 꽤 인기를 끌었다. 대부분 소비자들은 프로모션 기간을 이용해 최소 100시간 이상씩 이용권을 구매했다. 지점별로 차이는 있지만 1회권 1시간 이용 금액은 2만 5000원 선이다. 6~48개월 장기로 바우처를 결제하면 50시간에 100만 원, 400시간에 600만 원까지 시간당 금액이 할인된다. 그러나 크레빌이 돌연 영업중단을 알리면서 혼란이 야기되고 있다.
지난 19일 기준 ‘크레빌 경영악화로 휴업 통보 후 잠수 타서 열 받은 부모들’이란 제목의 모바일 메신저 오픈 채팅방에는 680여 명이 참여 중이다. 지역별로 개설된 피해자 오픈채팅방까지 합하면 그 수는 더 많다. 피해자 수는 약 1000명, 1인당 피해 금액은 100만~700만 원선으로 추산된다.
크레빌을 운영하는 ㈜키즈팩토리 한현근 대표는 지난 4월 29일 홈페이지에 올린 입장문을 통해 “회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임원의 부적절한 행동을 포착해 이를 회사 내부적으로 밝히는 과정에서 드러난 중대한 범죄 혐의들이 일시 영업중단의 주요한 원인”며 “해당 임원은 크레빌 가맹점이 입주하고 있는 일부 대형몰 및 기타 시공업체와 결탁하는 방식으로 수차례 알선수재 및 업무상 배임행위를 행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고 전했다.
앞서 4월 21일 한현근 대표는 크레빌 회원들에게 문자메시지로 “작년 말부터 악화된 경영난으로 인해 부득이하게 4월 21일부터 약 3주간 임시 휴업 조치를 하게 됐다”고 휴업 사유를 전한 바 있다. 경영난 때문에 잠시 쉬겠다고 한 한현근 대표가 불과 일주일 만에 직원 범죄 혐의로 영업을 중단한다고 밝힌 것이 뭔가 수상쩍다는 시선도 있다.
회사가 경영 악화에 시달리는데도 새 지점을 오픈한 것도 의아한 대목이다. 크레빌 롯데몰 수지점 회원이라 밝힌 A 씨는 “3월 체험학습 후 4월 오픈이라고 해서 1년 회원권을 등록했다. 4월 초에 코로나 걸리고 이제 가볼까 했더니 오픈 3주 만에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다고 한다. 이건 그냥 사기 아닌가”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면서 “적은 돈도 아니고 작년부터 적자였다는데 왜 새로 수지점을 오픈했으며 롯데몰은 왜 이런 회사를 받아준 건지 (이해가 안 간다)”고 밝혔다.
지점별로 대응이 달라 피해자들은 상대적 박탈감마저 느끼고 있다. 지난 19일 기준 크레빌 현대프리미엄아울렛 대전점, 크레빌 현대백화점 판교점, 크레빌 현대프리미엄 아울렛 송도점, 크레빌 롯데백화점 수원점·울산점·평촌점, 롯데몰 광명점·수지점 등은 해당 유통사들이 선제적으로 환불 절차를 진행하거나 진행 계획임을 밝혔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고객들이 롯데백화점을 믿고 크레빌 결제를 진행하신 부분이라 당사에서 피해를 최소화하는 게 맞다고 판단해 환불을 진행했다”며 “19일부터 환불 절차를 순차적으로 진행 예정”이라고 밝혔다.
반면 크레빌 신세계파미에스테이션점, 용산아이파크몰점, 전주점이 입점해 있는 파미에스테이션, HDC아이파크몰, DK몰 등 유통사들은 환불을 해주고 있지 않아 소비자들이 답답해 하고 있다. 이곳 소비자들은 대형 유통사를 믿고 크레빌에 선결제를 했다고 주장한다. 또 입점 수수료 등을 유통사에서 받은 만큼 유통사도 책임이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크레빌 용산아이파크몰점 고객이라고 밝힌 B 씨는 “휴업 하루 전 날까지 쇼핑몰 차원에서 프로모션 하고 결제 수수료도 뗐으면서 문제가 생기니 나 몰라라 하는 행태가 너무 답답하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HDC아이파크몰 관계자는 “크레빌을 상대로 명도소송을 진행 중이며 유사업체가 인수해 운영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방안을 만들고 있다”며 “직접적인 환불보다 차선책으로 강구 중”이라고 말했다.
신세계센트럴시티 관계자는 “11일까지 휴업하겠다는 소식 이후 업체 측으로부터 우리도 들은 얘기가 없다. 보상 방법에 대해서는 내부적으로 검토 중이며 타 유통업체와 동일한 수준으로 보상할 예정”이라며 “유사 업체와 영업 인수인계를 하는 방법을 고객들이 원하고 있어 그 부분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주 DK몰은 ‘법적 책임이 없어 환불이 불가하다’는 내용을 피해자들에게 통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피해자들은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크레빌 전주점 관할 전주교육지원청 관계자는 “학원으로 등록된 크레빌 전주점의 경우 교습비 반환과 관련해 교육지원청 차원의 배·보상은 진행하기 어렵다”며 “민원인들이 소송을 진행한다고 들었다”고 밝혔다
박영생 법무법인 정진 변호사는 “민사적으로 선납금의 반환청구소송 및 가압류와 같은 법률상 조치를 고려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어떤 형태로든 확인 가능한 크레빌 측 재산에 대한 가압류가 필수적이라고 판단된다”며 “사기, 횡령 등 범죄 혐의가 드러난다면 경우에 따라서는 민사 조치와 별개로 형사고소(고발)도 고려해볼 수 있는데, 아직 '임시휴업' 외에 어떤 범죄 사실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바는 없기 때문에 당장은 배제하는 편이 바람직해 보인다”고 밝혔다.
크레빌과 한현근 대표 측은 지난 4월 29일 입장문에서 “피해상황 파악 및 빠른 운영재개를 위한 조치에 총력을 기울이고, 추가적인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했지만 이후 현재 상황에 대해 아무런 설명이 없다. 한 대표는 “경영진이 연락을 중단하고 잠적을 하였다는 것은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억울해 했지만 취재 과정에서 크레빌과 ㈜키즈팩토리 그리고 한현근 대표와 연락이 닿지 않았다. 대부분 피해자들 역시 회사 측과 연락이 안된다고 호소했으며 심지어 일부 유통사들조차 크레빌 측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하소연할 정도다. 피해자들이 안절부절 못하는 상황에서 정작 피해와 혼란을 야기한 크레빌과 한현근 대표는 연락두절인 채 입을 닫고 있다.
김정아 기자 ja.k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