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널랩스, 테라 관련 특허권 보유…취재 시작되자 테라폼랩스 흔적 지우기 모양새
이런 가운데 일요신문은 대중에 알려지지 않은 국내 법인 커널랩스(Kernel Labs, 옛 가즈아랩스)가 테라 개발과 운영에 깊숙이 관여한 정황을 포착했다. "커널랩스가 사실상 테라폼랩스 국내 지사 역할을 하고 있다"는 말도 나돈다. 5월 18일 출범한 검찰 금융·증권범죄 합동수사단의 1호 수사 대상은 테라 폭락 사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커널랩스가 수사의 단초가 될지 주목된다.
커널랩스는 '블록체인 상에서 스테이블 코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법 및 장치' 특허권을 갖고 있다. 발명자는 다름 아닌 테라폼랩스 권도형 대표와 니콜라스 플라티아스 리서치팀장. 특허는 2018년 8월 20일 출원, 특허청 심사에서 한 차례 보정을 거쳐 2020년 11월 등록됐다. 당시 사명은 가즈아랩스였다. 커널랩스는 사명을 1월 24일 가즈아랩스에서 현재 이름으로 바꿨다.
특허는 제2 코인을 활용해 제1 코인 가격 안정성을 유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자매 코인 루나와 알고리즘 연동을 통해 1테라가 항상 1달러와 같은 가치를 갖도록 설계했다는 테라폼랩스 측 설명과 일맥상통한다.
전직 테라폼랩스 직원 A 씨는 "특허 내용은 테라의 근간이 된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테라의 현재 알고리즘보다 발전된 형태"라며 "실제로 구현 가능한 아이디어인지는 모르겠지만, 구현했다면 테라 폭락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커널랩스는 여전히 테라 개발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는 새로운 암호화폐를 만들어 테라를 부활시키겠다는 구상을 담은 글을 5월 16일 테라 리서치 포럼에 올렸다. 이 계획에 커널랩스는 루나재단(LFG·Luna Foundation Guard)과 함께 핵심 인프라 구축 역할을 맡는다고 적혀 있다. 루나재단은 권도형 대표가 2021년 12월 29일 싱가포르에서 설립했다. 비트코인 등 다른 암호화폐를 준비자산으로 매입해 테라 가격을 안정화하는 역할을 맡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커널랩스는 홈페이지와 채용 포털사이트에서 자사 구성원이 블록체인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경험이 있다며 미러 프로토콜과 앵커 프로토콜 서비스 개발과 운영에 참여했다고 소개했다. 미러, 앵커 프로토콜은 테라 기반 블록체인 서비스다. 암호화폐 투자자를 테라로 끌어모았다고 평가받는다. 동시에 위법성 논란이 제기됐다.
미러 프로토콜은 테라를 담보로 미국 증시에 상장된 테슬라, 넷플릭스 등 빅테크 기업 주가를 추종하는 자산을 발행하는 상품이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미러 프로토콜이 증권법을 저촉했다고 보고 2021년 관련 조사를 진행했다. 앵커 프로토콜은 테라를 예치하면 연 20% 이자를 제공하는 서비스다. 신규 투자자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수익을 제공하는 다단계 금융사기와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을 받았다.
김현중 커널랩스 대표는 18일 일요신문과 주고받은 카카오톡 대화에서 "커널랩스는 테라폼랩스 출신 개발자들이 모여 만든 블록체인 컨설팅 회사"라며 "테라를 기반으로 블록체인 서비스를 만들고자 하는 회사들과 협업해오던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또 "기존에 활용되지 않던 법인을 제가 인수했다"고 설명했다. 테라 관련 서비스 개발에 관여했지만 별개 회사라는 주장이다. 회사 인수 시점에 대한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A 씨는 "거짓 해명"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권도형 대표가 테라 개발자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사업가에 가깝고 핵심 개발자는 따로 있다"며 "김 대표는 미러, 앵커 프로토콜을 개발한 핵심 개발자 중 한 명"이라고 말했다. 실제 김현중 커널랩스 대표는 테라폼랩스 엔지니어링 부사장 출신이다. 국내 지사인 테라폼랩스 코리아 감사도 2020년 3월 2일부터 지난 4월 30일 해산 때까지 맡았다.
커널랩스에 대한 일요신문 취재가 시작되자, 테라폼랩스와 커널랩스는 연관성을 나타내는 흔적 지우기에 나선 모양새다. 권도형 대표는 테라 리서치 포럼에 올린 글을 5월 17일 일부 수정했다. 이때 커널랩스 이름이 빠졌다. 커널랩스 홈페이지에는 5월 18일 미러, 앵커 프로토콜을 언급한 내용이 사라졌다.
테라 폭락 사태 직전 커널랩스의 움직임도 수상쩍다. 법인등기부에 따르면 커널랩스는 5월 1일 서울 성수동 사무실을 성수동에 있는 또 다른 사무실로 옮겼다. 이에 대한 등기는 5월 11일 마쳤다. 그러나 실제로는 사무실 이전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5월 13일 등기부상에 나오는 이전한 사무실을 찾아가 보니 아직 인테리어 공사가 한창이었다. 자재를 나르는 인부만 오갔다. KF94 마스크를 쓰고 있었음에도 페인트 냄새가 코를 찔렀다.
커널랩스는 주소를 바꾸기 전에 테라폼랩스 코리아 서울 사무실과 같은 건물, 같은 층에 있었다. 그런데 테라폼랩스 코리아는 4월 30일 주주총회를 열어 법인 해산을 결정했고, 다음 날인 5월 1일 커널랩스는 등기부상 주소를 바꿨다. 테라폼랩스와의 연관성이 강하게 의심된다.
테라폼랩스 본사로 알려진 싱가포르 법인은 서류상에만 존재하는 유령회사로 추정된다. 테라폼랩스 싱가포르 법인은 설립 당시 주식이 단 2주였다. 법인등기부에 기재된 본사 주소는 유령회사의 가상오피스로 활용되는 건물이다. 한 가상오피스 대여 전문 웹사이트에는 해당 건물을 주소지로 한 가상오피스를 월 253싱가포르달러(19일 환율 기준 약 23만 원)에 빌릴 수 있다고 나온다.
남경식 기자 ng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