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이전 추진 황영기 회장 하마평 등 산은 내부 불안…산은 “입장 밝히기 어려워”
이동걸 전 산은 회장 후임으로 누가 새로운 수장이 될지는 산은 안팎의 최대 관심사다. 5월 초부터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힌 인물은 황영기 전 금융투자협회장이다. 황 전 회장은 삼성생명 자산운용본부장, 삼성투자신탁운용 사장, 삼성증권 사장, 우리금융지주 회장, KB금융지주 회장 등을 역임했다. 그는 2015년 2월부터 2018년 2월까지 금융투자협회장을 맡는 등 국내 금융업계를 대표하는 인물로 꼽힌다.
황영기 전 회장은 지난 2월 대선을 앞두고 ‘윤석열 후보를 공개 지지하는 전·현직 금융인 110명 선언’을 주도했다. 이에 대한 보은 차원에서 산은 회장 자리를 받기로 했다는 이야기가 산은 안팎에서 나왔다. 이에 대해 70대인 황 전 회장은 산은 회장직에 관심이 없다며 내정설을 일축하고 있는 상황이다.
황영기 전 회장의 입장과는 별개로 산은 내부에서는 공개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 산은지부 관계자는 “황영기 전 회장은 과거 우리금융지주 회장 시절 은행에 걸맞지 않은 무리한 파생상품 투자로 수조 원의 손실을 안긴 인물”이라며 “대출 청탁 의혹 등으로 수차례 검찰청을 드나드는 등 경영 능력에서나 도덕성 측면에서 전혀 적합하지 않은 인사”라고 전했다.
산은지부가 황영기 전 회장 선임설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배경에는 본점 이전 논란이 자리잡고 있다. 황 전 회장이 부산으로의 산은 본점 이전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동걸 전 회장은 지난 5월 2일 “부산 이전이 충분한 토론과 공론화 절차 없이 이뤄지고 있어 우려스럽다”며 “잘못된 결정은 치유할 수 없는 폐해를 낳는다”고 밝혔다. 반면 황 전 회장은 지난 2월 “윤석열 대통령의 금융 정책방향에 전적으로 동감하며 적극 지지한다”고 말했다.
산은 직원들은 대부분 본점 이전을 반대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산은의 한 직원은 “산은을 지방으로 이전하는 것이 국가 균형발전에 기여하는 바가 없고, 오히려 국가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전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양보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5월 17일 “이번 지방선거 결과를 통해 산은 부산 이전을 더 확실히 추진해야 한다”고 밝히는 등 여당의 지지를 업은 상황이다.
산은의 본점 이전 작업이 순탄치만은 않을 전망이다. 한국산업은행법(산은법)에는 “산은은 본점을 서울특별시에 둔다”고 명시돼 있다. 산은 본점 이전을 위해서는 법을 개정해야만 한다. 국회 과반 이상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의 협조가 필요한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산은 본점 이전과 관련해 통일된 입장이 없다.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4월 국책은행 소재지를 대한민국 어디에나 설치할 수 있도록 하는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13일 KBS 주관 TV 토론회에서 “산은을 부산으로 옮기는 것이 부산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객관적 자료가 없다”고 반대 의사를 보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산은 본점을 부산으로 이전한 후 추이에 따라 한국수출입은행, 수협중앙회 등 다른 기관의 본점도 부산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산은의 본점 이전이 단순 산은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들 직원들 입장에서는 하루아침에 거주지를 옮겨야 하므로 반가운 소식이 아니다. 이 때문인지 금융노조 산은지부를 넘어 금융노조 차원에서도 산은의 본점 이전을 반대한다.
금융노조 관계자는 “국책은행의 지방 이전이 대한민국의 금융 경쟁력을 훼손시키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와 국민의 삶에 있어서도 마이너스가 되는 정책임을 수차례 강조해 왔다”며 “국책 금융기관의 지방 이전 공약은 국가의 미래는 외면한 채 지역의 표심에 기대어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한 얄팍한 술책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산은 내부에서는 본점을 부산으로 이전한 후 민영화 수순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윤석열 정부가 산은 본점 이전과 동시에 기능까지 전면 재편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금융권이나 국회, 시민사회 등에서 산은 본점 이전과 민영화 관련 토론회가 수차례 열렸다. 박창균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조정실장은 지난 4월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주최한 한 토론회에서 “정책금융 지배구조를 바꿔 자금 규모를 효과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며 “산은의 중소기업 지원은 정책금융공사로 이전하고, 중장기적으로 상업금융에서도 손을 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전했다.
공교롭게도 윤석열 정부에서 요직을 맡은 김주현 금융위원회(금융위) 위원장 후보,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등은 이명박 정부 시절 산은 민영화를 추진했던 인물들이다. 김주현 후보는 2008년 금융위 금융정책국장을 맡으면서 산은 민영화 관련 실무를 총괄했다. 김 후보는 당시 기자회견에서 “정부 소유 은행 민영화 등 은행 산업 대형화를 통해 향후 글로벌 플레이어로 성장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로 산은 민영화가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고, 이어진 박근혜 정부는 민영화 계획을 백지화시켰다.
이창용 총재도 2008년 당시 금융위 부위원장을 맡으면서 산은 민영화를 추진했다. 이 총재는 지난 4월 인사청문회에서 “산은 민영화의 목적은 민간 기능을 확장시켜 투자 쪽으로 발전시키고, 공적 기능은 정책금융공사로 현대화하자는 것이었다”며 “목적은 올바른 방향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산은 관계자는 “아직 결정된 것이 없어서 지켜보는 단계이며 특별한 입장을 밝히기는 어렵다”라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