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혈 캠퍼들 5월부터 400m 민머루 해변 접수…조개 잡아 탕 끓이고 제철 밴댕이초무침 즐겨
차 타고 가는 섬 여행은 배 타고 가는 섬 여행보다 편하고 한밤중이든 새벽이든 언제든 원할 때 빠져나올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심리적으로도 가깝다. 애써 멀리 떠나왔다는 고립감을 느끼기 위해 섬을 찾는 사람에겐 좀 싱거운 섬 여행이 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섬은 섬인지라 불빛이 적어 오롯이 별빛 달빛 만끽하기엔 제격이다.
석모도의 유일한 해수욕장인 민머루 해수욕장은 주말이면 300~400m 이어진 모래사장이 텐트로 가득 찬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하지만 열혈 캠퍼들에게 5월의 날씨는 포근하기만 하다. 해수욕장의 모래사장은 텐트를 칠 수 있도록 구획이 나뉘어 있지만 이용 요금은 따로 없다. 설거지 등을 할 수 있는 개수대는 없지만 화장실이 널찍하고 주차장도 커 캠퍼들에겐 나쁘지 않은 환경이다.
바로 앞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씨뷰’ 캠핑이다. 바다는 럭셔리 호텔 씨뷰룸보다 더 가깝게 다가오고 짠내도 생동감이 넘친다. 오가는 발길에 채여 텐트 안으로 종종 모래가 들어오기도 하지만 하룻밤쯤은 모래도 낭만이라 부를 수 있다.
민머루 해수욕장에선 물때에 따라 하루 두 번 물이 빠지고 또 들어온다. 물이 빠지고 너른 갯벌이 드러나면 여행 온 사람들은 삼삼오오 갯벌로 나가 호미질을 하고 갯벌을 뒤진다. 서툰 손놀림으로도 조개를 캐고 뭔가 싱싱한 갯것들을 속속 건져 올린다. 아이들은 아예 철퍼덕 갯벌에 엉덩이를 붙이고 모래놀이 하듯 갯벌놀이를 하고 어른들은 안줏거리를 찾느라 분주하다. 그날 갯벌에서 막 잡아 넣은 재료가 무엇이냐에 따라 탕 이름도 달라진다. 갯벌놀이를 위해 인근 편의점에서 호미와 장화 등을 빌려주기도 하고, 팔기도 한다.
하지만 도구를 갖췄다고 모두가 탕을 끓일 만한 조개나 갯것들을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도시인들은 뻘에서 실컷 ‘뻘짓’만 하다 끝날 수도 있다. 갯벌에서 먹을 만한 걸 못 캤다면 근처 식당에서 밴댕이회를 먹어도 좋다. 밴댕이는 5~6월이 제철로 밴댕이초무침 등으로 입맛을 돋울 수 있다. 밴댕이는 순무, 새우젓, 천일염과 함께 석모도의 지역 특산물이기도 하다.
물 빠진 갯벌에서 하염없이 놀 수 있을 것 같아도 어느샌가 물은 다시 차오른다. 물이 빠질 때도 들어올 때도 순식간이다. 한눈팔고 있다 보면 어느새 해변까지 밀고 들어온 밀물에 ‘어엇’ 하며 놀라 뒷걸음치게 된다.
민머루 해수욕장의 압권은 뭐니 뭐니 해도 아무 때고 느닷없이 펼쳐지는 갈매기들의 군무다. 갈매기들의 군무를 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새우깡 한 봉지면 된다. 새우깡 하나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리면 어디선가 수십 마리의 갈매기가 날아오기 시작하고 어느샌가 새우깡을 든 손가락에 홀연히 입을 맞추며 새우깡을 채간다.
사실 석모도는 석모대교가 놓이기 전, 배를 타고 오갈 때부터 갈매기들의 섬이었다. 그 시절엔 석모도로 가는 배를 타면 꼭 갈매기들에게 새우깡을 던지며 노는 것을 빼 먹어선 안 된다는 게 석모도 관광 팁 중 하나였다.
5월부터 이미 사람들로 빼곡히 채워지는 민머루 해수욕장은 7~8월 해수욕장이 여름 시즌을 맞아 정식 개장하면 더 러시를 이룬다. 물이 얕고 모래가 고와 아이들과 어르신도 놀기 좋아 가족 단위 캠핑족도 많이 찾는다. 여름엔 샤워장도 문을 연다.
바다를 보며 온천욕을 즐길 수도 있다. 석모도엔 미네랄 온천탕이 있다. 화강암에서 용출하는 고온의 온천수에는 미네랄 성분이 풍부해 아토피 등 피부염 개선과 관절염, 근육통에도 좋다고 알려져 있다. 흔한 실내온천탕뿐 아니라 바다를 보며 온천욕을 할 수 있는 노천탕과 옥상 전망대가 갖춰져 있어 온천을 즐기며 서해의 노을을 만끽할 수도 있다. ‘깔끔’ 떠는 캠퍼라면 저녁 무렵 이곳에서 온천욕으로 피로를 풀고 다시 야생의 텐트로 돌아가 잠을 청할 수 있어 편리하다.
느긋하게 일몰을 즐기기 위해 이곳에서 캠핑을 하는 캠퍼도 적지 않다. 서해는 동해처럼 푸르지는 않아도 저녁이면 어김없이 붉은 바다를 선사하고 시간마다 슬며시 다른 풍경을 꺼내 놓는다. 텐트 안에서, 또 밖에서, 낮은 낮대로 밤은 밤대로 물때가 오가는 것을 지켜보고 해가 뜨고 지는 풍광을 아무렇지 않게 바라보다 보면, 늘 쫓기기만 했던 시간도 비로소 즐기게 된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