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이어 검찰도 소환 대신 서면조사 갈음 분위기…법조계 “인사권자 눈치보기” 지적
다만 대선 전이라 조사 자체가 정치적 개입이라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었지만, 정작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대통령으로 취임한 뒤에 서면조사만 하는 것을 두고는 여러 해석이 나온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바람 불면 눕는 게 검찰이라면, 바람 불기 전에 눕는 게 경찰”이라며 수사기관들의 달라진 분위기를 비유했다.
#김 여사 잘못 인정한 사건도?
먼저 서면조사 방식을 활용한 곳은 경찰이었다. 경찰은 윤석열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의 ‘허위 학력·경력 기재 의혹’ 수사와 관련해 김 여사를 소환하지 않고 서면조사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서면조사는 통상적으로 사건에 직접적으로 관여되지 않은 참고인 신분일 때나, 피의자가 억울하게 고소·고발을 당했을 때 무혐의 처분 전 형식적인 조사를 위해 선택한다.
대선 과정에서 제기된 허위 학력·경력 기재 사건은 김 여사가 여러 대학에서 시간강사(교수)를 지원할 때 과장과 허위로 경력을 적었다는 의혹이다. 민생경제연구소 등 시민단체들은 “김 여사가 시간강사와 겸임교수로 강의했던 대학에 제출된 이력서에 허위 사실이 기재돼 있다”며 2021년 12월 23일 김 여사를 고발했고, 같은 달 26일 김 여사는 기자회견을 열어 “일과 학업을 함께하는 과정에서 제 잘못이 있었다. 잘 보이려 경력을 부풀리고 잘못 적은 것도 있었다”며 일부 의혹에 대해서 인정했다.
그동안 대학 관계자 등에 대한 조사를 실시한 경찰이지만 김 여사에 대해서는 소환조사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는 5월 3일 김 여사 변호인 측과 조율한 뒤 서면조사서를 발송했다.
최관호 서울경찰청장은 5월 23일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서면조사가 무혐의를 전제로 하는 건 아니”라며 서면조사 방식을 결정했음을 전했다. 이어 “대학 관계자 입장도 다 조사했고 서면조사 단계가 됐다고 생각해서 질의서를 보냈다”며 “성급하게 한 건 아니다. 내용을 받아보고 판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면조사 결과에 따라 소환조사 등 추가적인 조치가 이뤄질 수도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다.
현재 경찰에 김 여사가 피의자나 참고인 신분으로 관여된 사건은 10여 건가량. 경찰은 나머지 사건들에 대해서도 서면조사를 통해 김 여사 조사를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김 여사 측의 변호인들과 수사 진행 일정을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측은 “제반 상황을 고려해서 한 것일 뿐 무혐의를 전제로 한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이미 수사당국 안팎에서는 ‘무혐의 처분’을 예상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검찰 출신 법조인은 “만일 김 여사가 대통령의 부인이 아니라, 보통의 국민이었다면 서면조사로 갈음한다는 게 가능했겠나. 경찰이 먼저 알아서 인사권자의 심기를 고려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윤 대통령, 철저 수사 명령해야"
경찰이 서면조사를 활용하기 시작하자 검찰도 김 여사 서면조사를 검토 중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송경호 검사장이 지검장으로 취임한 서울중앙지검은 반부패·강력수사2부(부장 조주연)에 배당된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연루 의혹’을 조만간 처리할 것으로 알려졌다. 고발이 이뤄진 지 2년이 넘은 사건으로, 이미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과 주가 조작을 주도한 주범은 2021년 12월 자본시장법 위반으로 기소됐다. 하지만 그 후 수사는 더 나아가지 못했는데, 서울중앙지검은 김 여사에 대해 서면조사를 잠정적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익명을 요구한 대검찰청 관계자는 “2021년 수사가 한창 진행되던 때에도 김건희 여사와의 공모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얘기와 함께, 무혐의 처분이 맞는 것 같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며 “당시에는 대선 전이라서 판단 자체가 정치적일 수 있어 보류했다면 이제 대선이 끝났으니 사건을 수순대로 처리하려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실제 권오수 전 회장 등의 공소장에도 김 여사의 이름은 담기지 않았는데 이는 수사팀이 ‘공모 관계’를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풀이다. 명확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현직 대통령의 부인에 대한 예우 차원이라는 설명이다.
서면조사 후 약간의 검토를 거친 뒤 무혐의 처분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받는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5월 20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서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수사가) 대단히 많이 진행돼 있다”며 처분 가능성을 암시했다.
야당은 반발하고 있다. 신현영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변인은 5월 16일 “윤석열 대통령이 진정으로 공정과 상식을 바로 세우고자 한다면, 지금이라도 배우자 김건희 씨에 대한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명령해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법조계에서도 ‘수사기관들의 인사권자 눈치보기’가 시작됐다고 평가한다. 특히 김건희 여사가 제기된 의혹에 대해 일부 사실관계를 인정한 허위 경력 기재 사건의 경우 무혐의 처분을 내리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도 나온다. 특수 수사 경험이 많은 검사 출신 변호사는 “검찰이나 경찰은 인사권이 대통령에게 있고, 인사는 만사”라며 “다만 서면조사를 선택한 순서를 보면 ‘경찰이 검찰보다 먼저, 바람이 불기도 전에 눕는다’고 비유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