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장비·치료제·백신 ‘3무’ 속 뒤늦은 대유행…전문가들 “어떤 결과 나타날지 알 수 없는 상황”
이후 전 세계는 지난겨울 오미크론 대유행으로 몸살을 앓았지만 오히려 그 이후 상당한 안정세를 되찾으며 코로나19 엔데믹(풍토병) 시대가 열리는 분위기다. 그럼에도 여전히 걱정되는 부분은 남아 있다. 다음에는 또 어떤 변이가 등장하느냐다. 여전히 오미크론 하위 변이가 거듭 등장하고 있지만 전혀 새로운 특징을 가진 다음 변이인 ‘파이 변이’는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최근 파이 변이가 북한에서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는데, 실제로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코로나19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 수도 있다.
5월 17일(현지시각) 마이크 라이언 세계보건기구(WHO) 긴급대응팀장은 언론 브리핑에서 북한의 코로나19 집단 발병 상황에 대해 “현재 가용한 수단을 쓰지 않고 있는 것이라면 확실히 걱정스럽다”고 밝히며 “WHO는 바이러스가 걷잡을 수 없이 퍼지는 곳에서 항상 새로운 변이의 출현 위험이 더 높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해왔다”고 밝혔다.
현재 가장 우려스러운 확진자 급증 국가로 추정되는 북한에서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가 출현할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지금까지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가 최초로 보고된 국가들은 다음과 같다. 영국에서 처음 알파 변이가 출현한 이후 남아공에서 베타 변이, 브라질에서 감마 변이, 인도에서 델타 변이가 최초로 보고됐다. 이후 엡실론 변이(미국 캘리포니아), 제타 변이(브라질), 에타 변이(나이지리아), 세타 변이(필리핀), 요타 변이(미국 뉴욕), 카파 변이(인도), 람다 변이(페루), 뮤 변이(콜롬비아) 등이 등장했으며 보츠와나에서 처음 출현한 오미크론이 남아공에서 대유행한 뒤 전세계로 확산됐다.
남아공과 인도, 브라질 등 의료 환경이 비교적 열악한 나라에서 확진자가 급증할 때 새로운 변이가 잘 발생하며, 이런 지역에서 발생한 변이는 더욱 강력했다. 위중증률과 치사율이 매우 높았던 베타 변이는 남아공에서, 세계적인 우세종이 된 델타 변이는 인도, 그리고 오미크론 변이는 보츠나와에서 처음 발견돼 남아공에서 대유행이 시작됐다. 남미 지역에서 발생한 제타, 람다, 뮤 등도 강력한 변이로 분류됐다. 비록 델타 변이의 막강한 전염력으로 우세종이 되진 못했지만 남미 지역에선 상당한 영향력을 보였다. 따라서 만약 북한에서 새로운 변이가 출현한다면 기존 변이보다 더 강력한 변이일 가능성이 높다.
5월 17일 기준 북한의 누적 발열자는 171만 5950여 명이다. 현재 북한은 코로나19 진단검사 장비가 없어 고열 증상을 보이는 경우 ‘발열자’로 구분해 코로나19 확진자로 보고 있다. 4월 말부터 발열자가 조금씩 등장하기 시작해 5월 12일 1만 8000명의 발열자가 보고된 뒤 13일 17만 4440명, 14일 29만 6180명, 15일 39만 2920명, 16일 26만 9510명, 17일 23만 2880명의 발열자가 확인됐다.
문제는 이런 수치는 북한 조선중앙통신의 일방적인 보도에 따른 것으로 정식 코로나19 진단 검사를 통한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17일까지 171만 5950여 명의 누적 발열자가 발표됐지만 누적 사망자 수는 62명에 불과해 전문가들은 북한의 발표 수치를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WHO 역시 WHO 회원국인 북한이 바이러스 발병을 공식적으로 알리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는 국제보건규칙 상의 법적 의무를 명백히 위반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현재 북한 상황이 심각해 보인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아도 외국과의 교류가 많지 않던 북한은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된 이후 철저히 국경을 봉쇄해 전세계적인 코로나19 집단 발병 사태에서 비교적 안전지대였다. 그렇지만 오미크론 대유행의 기세가 최근 중국으로 확산되면서 중국과 북한의 국경지대를 통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북한으로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경우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이 사실상 ‘0’에 가까운 데다 집단 발병을 동반한 대유행도 벌어지지 않아 확진을 통해 항체를 갖고 있는 비율도 극도로 낮다. 한국의 경우 높은 백신 접종률에도 불구하고 확진을 통해 항체를 가진 누적 확진자 수가 적은 상황에서 오미크론 대유행이 시작돼 폭발적인 확진자 급증 시기를 거친 뒤에야 서서히 대유행이 잦아들었다. 백신조차 접종하지 않은 북한에서는 한국보다 훨씬 심각한, 상상을 초월하는 폭발적 대유행이 불가피하다.
코로나19 진단검사 장비조차 없는 데다 코로나19 치료제도 없고 백신도 없다. 전문가들은 이런 환경에선 의료시스템도 곧 붕괴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보고 있다. 그나마 통제국가인 터라 봉쇄 등의 방역 조치는 수월할 것으로 보이지만 이런 방식으로 버티는 것은 한계가 분명하다.
전세계가 북한의 코로나19 대유행 상황을 도우려 하고 있지만 문제는 북한이 도움을 요청할지 여부다. 마이크 라이언 WHO 긴급대응팀장 역시 “WHO는 도울 준비가 돼 있지만, 주권 국가에 개입할 권한은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문제는 이런 북한 상황으로 볼 때 오미크론 이후 새로운 변이, 순서상으로 이름이 ‘파이’가 될 변이가 북한에서 등장할 가능성이 제기됐다는 점이다. 백신 접종률과 기존 확진자들의 항체 등으로 어느 정도 코로나19에 대한 준비가 끝난 국가가 아닌 북한에서 새로운 변이가 등장할 경우 지금까지의 변이 변화 흐름에 역행하는 변이가 등장할 수도 있다. 전염력은 더 강해지지만 치명률과 위중증률은 낮아지는 흐름과 달리 전염력은 다소 약해지지만 치명률과 위중증률이 높아지는 변이, 내지는 전염력과 치명률, 위중증률이 모두 높아지는 최악의 변이까지도 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완벽한 통제와 봉쇄로 어느 정도 코로나19 대유행에서 벗어나 있었고 백신조차 접종하지 않은 북한에서 뒤늦게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된 터라 전세계가 지금까지 연구하고 대비한 상황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 펼쳐질 수도 있다. 이상원 중앙방역대책본부 역학조사분석단장 역시 브리핑에서 “오미크론 변이가 한 번도 코로나를 접촉하지 않았던 사람들 사이에서 확산될 때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아직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며 “관심을 가지고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전동선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