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뮤직 드라마’ 생소한 장르 마법처럼 성공…“대단한 배우보다 함께 작업하고 싶은 배우 되고파”
“제가 어렸을 땐 왜 이렇게 아무 것도 없는데 하루하루가 기대되고 설렜을까 생각했어요. 어릴 땐 천 원 한 장만 있어도 친구들이랑 밤새 놀 수 있을 정도로 재밌었죠. 그런 순수함 같은 것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는 작품이었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때 내가 막연히 꿨던 꿈들, 그런 동심을 되짚어 보게 되는 것처럼요.”
‘안나라수마나라’에서 지창욱은 동네의 버려진 유원지에 살고 있는 미스터리한 마술사 리을 역을 맡았다. 어른이 돼서도 아이로 남고 싶은 리을은 나이에 맞지 않게, 나쁘게 말한다면 철이 없고 좋게 말한다면 자신의 감정에 한없이 솔직한 모습으로 매사를 대한다. 버거운 현실에 지쳐 꿈을 꿀 겨를도 없는 소녀 윤아이(최성은 분)와 성공적인 현실을 위해 꿈을 강요받는 소년 나일등(황인엽 분)과 대비되는 리을에겐 미스터리함과 신비함이 풍긴다.
“리을은 사람들이 볼 때 신비로운 느낌을 받아야 하는 캐릭터다 보니 어떻게 하면 그 느낌을 잘 전달할 수 있을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어요. 사실 신비로움을 무작정 연기한다고 하면 이게 또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거든요(웃음). 그래서 장면마다 리을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면 오히려 이런 게 쌓여서 신비로움과 순수함이 모두 보이지 않을까 했죠. 기분 좋고 신나는 신은 마냥 신나게, 슬픈 신은 마냥 슬프게, 토라지는 신은 대놓고 토라지는 식으로 접근했어요. 그런 게 쌓이다 보면 이 사람은 신비롭다고 느껴질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연기했던 기억이 나요.”
마술사라는 점이나 어딘지 종잡을 수 없는 태도, 나이에 걸맞지 않은 유치함은 흡사 판타지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지브리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 속 하울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연출을 맡은 김성윤 감독은 지창욱에게 리을 캐릭터를 설명하며 하울을 많이 언급했다는 뒷이야기도 있었다. 정작 지창욱은 그 말을 들으며 “나보고 어떻게 하울을 연기하라는 거야?”라며 속으로 투덜댔다고.
“하울을 연기하는 거랑 리을이를 연기하는 건 다르잖아요(웃음). 저도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보긴 했지만 하울을 따라가려 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러려고 해서 그럴 수도 없는 캐릭터고요. 다만 리을이 하울이란 인물과 비슷한 모습을 가진 친구일 수 있겠다 싶어서 접근했었죠. 실제로 아이 같은 면이나 미스터리한 면은 비슷할 수 있으니까요.”
연기에 필요 이상의 욕심을 내지 않는다는 그였지만 이번 ‘안나라수마나라’를 찍으며 딱 한 번 나서려 한 적이 있었다. 리을의 과거사가 풀리면서 등장하는 리을의 아역을 자신이 연기하고 싶었다는 것. 불행히도(?) 그보다 더 리을의 아역다운 배우가 등장하면서 지창욱의 욕심은 좌절될 수밖에 없었다고.
“제가 리을을 연기하다 보니까 ‘이거 내가 하면 재밌겠는데?’ 싶었거든요. 감독님도 심지어 저한테 ‘네가 할 수 있겠어?’ 하고 물어보셔서 대뜸 ‘해볼까요?’ 했는데 대본 보니까 이미 남다름 씨를 캐스팅하셨더라고요(웃음). 아무래도 어린 역할을 연기하는 건 이제 무리가 좀 있죠. 대본을 읽자마자 ‘아, 이건 내가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흔쾌히(양보를), 20대 초반만 됐어도 욕심냈을 텐데 아쉬웠어요(웃음).”
지창욱이 아역을 제외한 리을을 연기하느라 고군분투하는 동안 윤아이 역의 최성은과 나일등 역의 황인엽 역시 각자의 책임을 다 했다. ‘판타지 뮤직 드라마’라는 신개념 장르로 넷플릭스에 입성한 이들은 뮤지컬 경험 자체가 전무한 ‘초짜’였다. 10년 이상의 뮤지컬 경력을 보유한 지창욱이 이들에게 의지가 돼 주진 않았을까. 질문에 지창욱은 “걔들이 저한테 많이 의지했을까요?”라고 반문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오히려 성은이와 인엽이한테 제가 더 많이 의지했죠(웃음). 사실 뭔가 조언을 하고 싶지도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런 조언 없이도 너무 잘하는 친구들이고 모두가 뛰어난 사람들이거든요. 성은이에겐 정말 너무 고마워요. 우리 현장의 중심을 지켜주는 그 모습이 너무 멋있었고, 최고의 파트너였어요. 또 인엽이는 항상 뭔가 웃으면서 겸손한 자세로 현장에 오는데 그 마음가짐이 정말 멋있어요. 충분히 좋은 배우고 멋진 배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스스로도 더 믿고 자신감을 가지고, 훨씬 더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해도 된다고 생각해요.”
커가면서 잊게 되는 꿈을 다시 한 번 기억하게 한다는 점에서 ‘안나라수마나라’는 어른이 된 시청자들에게 좀 더 각별하게 느껴진다. “꿈이 없었던 사람은 없다”는 너무 당연한 말을 되새기게 하는 작품의 일원으로 지창욱 역시 여러 가지를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게 됐다고 귀띔했다. 인간 지창욱으로서 35년, 배우 지창욱으로서 15년을 보내며 숨 고르기를 할 타이밍에 딱 그 시기에 맞는 좋은 작품을 선택한 데에 감사의 말도 잊지 않았다.
“어렸을 때는 막연하게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어린 마음에 생각한 훌륭한 사람은 선생님, 경찰관, 소방관, 대통령 이런 분들이라 누가 ‘너 커서 뭐가 되고 싶니?’ 하면 저 분들을 얘기했죠(웃음). 지금 생각해 보면 저는 배우를 하기 시작하면서 때론 돈을 좀 많이 벌고 싶다는 생각도, 굉장히 존경 받는 배우가 되고 싶단 생각도 해보고, 막연히 좋은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배우로서의 목적보단 사람으로서 즐겁게, 그냥 저 사람이랑 작업하면 즐겁고 너무 좋다고 들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행복하게 살고, 매순간 즐겁게 사는 게 지금 저의 막연한 꿈이에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