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수사공적으로 감형, 경찰은 실적 쌓아 승진…다른 마약사범과 허위 공적 거래하다 탈 나기도
#"감방 안 야당의 정보력이란…"
야당은 수사기관의 정보원 역할을 하는 마약사범을 말한다. 범죄 영화 속에서 형사가 사건 수사에 돌입하기 전 그 바닥 생태계를 알기 위해 불러 놓고 관련 정보를 읊게 하는 장면에 감초처럼 나오는 바로 그 역할이다. 영화 속에서는 감초처럼 묘사되지만 실제 마약 세계에서 야당이 갖는 영향력은 같은 마약사범은 물론이고 수사기관에도 매우 크다. 마약범죄 특성상 수사기관은 내부자의 조력 없이 수사의 방향성조차 잡기 어렵기 때문이다.
야당은 정보를 털어놓고 ‘공적’이라는 혜택을 얻는다. ‘위 피고인의 협조가 다른 마약 수사에 도움이 되었다’는 내용의 수사공적서(공적조서)를 쌓으면 재판에서 감형을 받을 수 있다. 플리바게닝 제도(사전형량조정제도)가 없는 국내 사법체제에서 마약범죄는 형량 조절이 인정되는 거의 유일한 범죄이기도 하다.
문제는 야당이 손에 쥐고 있는 정보가 차고 넘칠 때 발생한다. 갖고 있는 일부의 정보만으로도 공적을 충분히 쌓았거나 재판이 다 끝나 더 이상의 수사공적서가 필요하지 않은 야당이 그동안 쌓아둔 정보와 인맥을 다른 마약사범에게 팔기 때문이다. 이른바 ‘공적조서 거래’ 혹은 ‘공적 거래’다.
공적 거래는 감형이 절박한 마약사범, 돈이 필요한 야당, 그리고 실적을 쌓아야 하는 수사기관의 이해관계에 모난 곳 없이 들어맞는 장사다. 법정에 오른 상당수의 마약사범은 딱히 제보할 만한 사건이 없어 자신을 대신해 제보해줄 사람이 필요하고, 수사관 일부는 수사의 어려움이나 승진 등을 이유로 마약류 사건 제보자를 찾는다. 야당은 돈이 필요하다. 이렇게 삼박자가 맞으면 실제 정보 제공자와 공적조서 대상자가 다른 허위 공적서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마약수사 현장에서 야당이 갖는 영향력은 막강하다. 마약 전과자들은 “감방 안 야당의 정보력이 감방 밖 경찰보다 좋은 것이 이 바닥”이라고 했다. 마약 관련 범죄로 수감되면 며칠 내로 그 지역의 야당으로부터 편지를 받게 되는데 감형을 받고 싶으면 이때 줄을 잘 서야 한다고도 했다. 그렇게 얻어 낸 수감자 정보를 야당이 수사기관에 넘기거나 아예 연결다리를 놓으면, 경찰이 전국의 구치소를 찾아다니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마약수사 현장의 딜레마
취재에 응한 마약 범죄 전과자들은 “제대로 된 야당 한 명만 잡으면 다른 마약범들은 고구마줄기처럼 줄줄이 엮어 올릴 수 있다. 마약을 안 해본 애도 일부러 마약을 하게 만든 다음 경찰이나 검찰에 정보를 넘긴 야당도 있었다”고 했다. 실제로 경찰관 A 씨는 야당 2명과의 만남으로 총 11개의 허위 수사공적서를 만들어 냈다가 뒤늦게 기소됐다. A 씨가 법원에 제출한 공적조서는 모두 사실과 다른 허위 문서였다. 심지어 수사협조를 통해 잡았다는 마약사범 가운데 무혐의를 받은 자도 있었다.
A 씨가 야당 B 씨를 처음 만난 건 2017년 3월 서울 성동구치소 수사접견실에서다.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위반(향정) 혐의로 수감 중이던 B 씨는 A 씨에게 “제보를 해야 주변 정리가 된다고 해서 필로폰 취급 범행에 대하여 제보를 하려 한다”며 총 4명의 범죄정보를 넘겼다.
그런데 B 씨의 행동은 “주변 정리를 하고자 한다”는 말과 달랐다. 그는 자신이 가진 정보를 알뜰하게 써먹었다. B 씨는 A 씨에게 “제보를 내가 아닌 같은 구치소에 수감 중인 C 씨의 공적으로 해 달라”고 부탁했다. 구체적으로는 자신이 넘긴 4명의 마약사범 공적을 각각 C 씨, D 씨, E 씨, F 씨의 공적으로 해달라고 했다. 모두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위반(향정)죄로 전국 구치소에 수감돼 항소심을 기다리고 있는 마약사범이었다.
B 씨가 해준 “서울구치소에 있는 아무개를 찾아가면 마약사건을 제보해 줄 것이다”, “아무개가 제보할 것이 있으니 접견해 봐라” 등의 이야기를 들은 A 씨는 서울 곳곳의 구치소를 찾아 접견을 가기도 했다. A 씨에게 정보를 넘긴 마약사범들은 “내가 제보한 사건의 공적조서를 B 씨가 지정한 사람 앞으로 넣어 달라”고 했다. 재소자 간 공적 거래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A 씨는 B 씨의 말대로 허위의 ‘사실확인서’ 및 ‘수사보고서(수사공적서)’ 10여 장을 작성해 서울동부지방법원과 서울북부지방법원 등 전국의 법원으로 보냈다. 사실확인서에는 ‘재소자 C‧D‧E‧F 씨가 마약을 단약(마약을 끊는 것)하기 위해, B 씨를 통해 지인의 마약 거래사실을 수사기관에 제보하는 등 수사에 협조했다’고 쓰여있었다. 특히 수사보고서에는 감형을 부탁하는 문구가 직접적으로 쓰여있었다. A 씨가 서울북부지방법원에 제출한 수사보고서의 내용은 이랬다.
‘피고인은 구속된 이후 잘못을 반성하고 마약 단약을 결심하면서 다른 마약사범들의 최근 동향에 대한 정보 제공 등 많은 마약사건 수사에 협조를 했던 자입니다. (중략) 피고인의 범행이 중하기는 하나 피고인의 제보로 인하여 10명의 마약사범을 검거할 수 있었는 바 범죄의 수법이 매우 은밀하여 검거가 용이하지 않은 마약사범의 수사에 적극 협조하여 (중략) 그와 같은 사정을 피고인에 대한 양형에 최대한 반영하여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공 들여 작성한 허위 공적조서 덕분일까. 2017년 1월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위반죄로 징역형을 선고 받았던 C 씨는 항소심에서 벌금 2000만 원으로 감형됐다. 마찬가지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아 항소 중이던 D 씨 역시 공적을 인정받아 2심에서 4개월의 감형을 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양형 이유에 대해 “수사기관에서 피고인의 공적을 확인하는 확인서를 당심 법원에 3회에 걸쳐 제출한 점을 이유 등으로 하여 원심 판결을 파기한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실제로 D 씨는 A 씨에게 마약 관련 제보를 한 적이 없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A 씨는 야당과의 합동수사에 지나치게 몰입한 나머지 직무상 유출이 불가한 체포영장 사본을 재소자들의 법률대리인 사무실로 보내기도 했다. 엄연한 ‘공무상비밀누설죄’였다. 또, 동일한 사건의 수사보고서를 다른 사람에게 중복해 활용하기도 했다. 결국 A 씨는 2020년 6월, 1심에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고 항소했으나 2021년 5월 기각됐다.
야당과의 관계는 마약을 수사하는 입장에서도 딜레마다. 폭행이나 살인처럼 피해자와 가해자가 명확히 존재하지 않는 마약 사건의 경우 신고를 통한 검거를 기대하기 힘들다. 결국 제보자나 공범의 조력 없이는 수사의 방향을 잡기 힘든 사건이 대부분이라, 야당과의 관계를 단번에 끊어내기 어렵다는 것이 현실이다.
야당의 도움을 받지 않으려는 수사관들은 직접 판매책이나 구매자로 위장해 검거에 나서기도 한다. 일종의 함정수사다. 그런데 이마저도 단순히 기회를 제공한 것에 불과한지, 아니면 마약을 할 생각이 없던 자를 부추겨서 범죄를 하게 한 것인지에 따라 위법 여부가 갈린다. 이래저래 골치 아픈 셈이다.
정보과에 근무했던 전직 경찰관은 “결국 마약수사는 경찰이 짜놓은 판에 그들이 들어오게 하거나 우리가 그들의 정보를 받는 것뿐이다. 위에서 마약사범을 잡으라고 하니 잡기는 해야 하는데, 어떻게 검거해야 적법한지는 불명확하다. 결국 합법의 영역을 스스로가 판단해야 하는데 쉬운 일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