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그룹 용퇴·팬덤정치 청산 거론 발칵, 친명계서조차 쓴소리 나오자 사과…지방선거 결과 따라 재분출될 가능성
박지현 위원장은 5월 24일 대국민사과를 통해 86그룹의 용퇴를 요구했다. 이어 팬덤정치 청산을 주문했다. 이날 박 위원장 대국민사과의 구체적 내용은 당 지도부와 사전에 공유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여러 현안에서 ‘패싱’ 논란이 있었던 박 위원장의 독자적인 행동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당은 발칵 뒤집혔다. 25일 비대위 회의에선 고성이 오갔다. 86그룹인 동시에 팬덤정치 수혜를 톡톡히 본 친문계의 윤호중 공동비대위원장이 박 위원장을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박 위원장은 “이럴 거면 나를 왜 임명했느냐”라는 취지로 항변했다. 그러자 윤 위원장은 “(지도부) 자격이 없다”면서 자리를 뜬 것으로 전해졌다. 대선 패배 후 민주당을 이끌었던 투톱 간에 파열음이 생긴 셈이다.
윤호중 위원장은 “(대국민사과문은) 박 위원장 개인 생각”이라며 선을 그었다. 그러자 박 위원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절차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지적과 비판이 있다. 기자회견 전 윤호중 선대위원장께 같이 기자회견 하자고 했고, 선거 전략을 총괄하고 있는 김민석 총괄본부장에 취지와 내용을 전하고 상의를 드렸다. 더 어떤 절차를 거쳐야 했던 건지, 어느 당의 대표가 자신의 기자회견문을 당내 합의를 거쳐 작성하는지 모르겠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박 위원장 발언 후 민주당 권리게시판엔 글이 쏟아졌다. 대부분 박 위원장을 성토하는 글이었다. 박 위원장이 당장 그만둬야 한다는 글도 적지 않았다. ‘내부총질’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박 위원장은 5월 26일 “민주당의 개혁, 쇄신에 저항하고 있는 것이라고 규정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박 위원장 발언에 대한 판단과는 별개로 현재 당내에선 시기, 방법 등을 놓고 부정적인 목소리가 높은 게 사실이다. 박 위원장에 대해 우호적 평가를 해왔던 조응천 의원은 5월 26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대화, 장소, 형식, 절차 이런 것이 맞았나 싶은 생각이 좀 든다”면서 “지방권력을 두고 백척간두에서 지금 싸우고 있는 그런 전시상황 아니냐. 근데 누구는 나가라 이렇게 하면 사실 좀 힘이 빠지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논란이 커지자 5월 27일 박 위원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일선에서 뛰고 계시는 민주당 후보들께 정중하게 사과드린다. 당 지도부 모두와 충분히 상의하지 못하고 기자회견을 한 점 사과드린다. 더 넓은 공감대를 이루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지적도 달게 받겠다. 특히 마음 상하셨을 윤호중 위원장께 사과드린다”며 한 발 물러섰다.
‘박지현의 난’이 3일 천하에 그친 것은 계파를 가리지 않고 비판이 나오면서 고립 양상에 빠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 당초 박 위원장은 이재명계와 가까운 것으로 분류돼왔다. 하지만 이번엔 이재명계에서조차 박 위원장에 대해 쓴소리가 적지 않았다. “이재명 위원장이 계양을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찬물을 뿌렸다”는 얘기가 이재명 지지자들로부터 나왔다.
당초 박 위원장이 대국민사과를 발표한 직후 친문계에선 ‘이재명 작품’이 아니냐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원내 입성 후 차기 당권을 노리는 이 위원장이 당 주류인 친문을 견제하려 박 위원장을 앞세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재명계 한 의원은 기자회견 다음 날인 5월 25일 통화에서 “이 위원장은 전혀 몰랐다. 박 위원장이 독자적으로 한 것이다. 이 위원장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행동”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 위원장의 대국민사과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았다’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당내 기득권 세력들을 상대로 할 말을 했다는 것이다. 또 시기적으로 볼 때도 오히려 중도층으로의 외연 확장엔 도움이 되는 것 아니냐는 물음도 뒤를 잇는다. 민주당 한 재선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박 위원장이 고개를 숙인 게 오히려 더 악재가 될 수 있다. 민주당은 자유롭게 의견을 말할 수 없는 당이 된 것이냐. 분명 우리가 새겨들을 말이 있는데 또 강경 지지층에 밀렸다. 모든 건 선거 결과에 달렸다. 만약 우리가 지방선거에서 패할 경우 박 위원장이 대국민사과에서 했던 86그룹 용퇴와 팬덤정치 청산이 다시 분출할 것으로 본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