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한동훈 전면 등판, 국정 난맥상 때 원군 활용 목적…이명박 정부 때 박근혜 사례 떠올리며 우려 목소리도
#안철수, ‘윤심’ 업고 급부상
국무총리 카드를 선택하지 않은 안철수 전 위원장에 대해 정가에선 “악수를 뒀다”는 평가가 많았다. 원외 인사인 안 전 위원장의 공백을 우려하는 목소리였다. 안 전 위원장은 김은혜 전 의원의 경기지사 출마로 자리가 빈 성남 분당갑 국회의원 보궐선거 공천권을 거머쥐면서 이런 해석을 돌려세웠다. 20여 년간 통계치를 놓고 볼 때 분당갑은 국민의힘에 유리한 지역으로 분류되는 곳이다. 안 전 위원장이 원내 입성에 성공할 경우, 차기 대선을 향한 그의 행보는 조기에 가동될 전망이다.
분당갑에는 윤 대통령 측근으로 알려진 박민식 전 의원이 일찌감치 출마 의사를 공식적으로 내비치면서 공천이 유력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하지만 안 전 위원장이 등장하자 박 전 의원은 갑자기 중도 포기를 선언했고, 안 전 위원장은 경선도 없이 단수공천 대상이 됐다.
안 전 위원장 분당갑 공천권은 일사천리로 부여됐다. 윤 대통령 측근이 출마 의사를 밝힌 데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까지 안 전 위원장에 대해서만큼은 결코 우호세력이 될 수 없다는 정치권 판단에 따라 난관이 훨씬 더 많을 것이라는 예측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안 전 위원장 앞에서 여러 장애물들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무엇보다 공천권을 쥐고 있는 이 대표가 안 전 위원장에 대한 전략공천에 반대해오면서 공천자 확정 발표 직전까지도 안 전 위원장 공천이 어려운 것 아니냐는 말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이 대표는 안 전 위원장 분당갑 출마설이 처음 나올 때부터 “꽃가마는 없다”며 경선이 원칙이란 점을 거듭 강조했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안 전 위원장과 이 대표의 과거사 때문이라도 안 전 위원장 공천은 힘든 것 아니냐”라는 전망이 나왔다. 2016년 총선 당시 서울 노원병에서 맞붙은 것을 시작으로 지난 대선에서도 막판 극적인 후보 단일화 전까지 거친 비난을 주고받는 등 안 위원장과 이 대표의 뿌리 깊은 갈등 역사가 공천 과정에 작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지속적으로 흘러나온 것이다.
전략공천이 이뤄질 경우 먼저 출마 선언을 한 박민식 전 의원의 반발이 거셀 것이라는 관측도 많았다. 공천 갈등이 여권 내홍으로 번질 가능성까지 제기된 것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모든 예상을 무너뜨렸다. 경선 원칙을 수없이 강조했던 이준석 대표는 안 전 위원장에 대한 단수공천을 받아들였고, 박 전 의원도 공천 확정 발표 전 출마 의사를 접음으로써 당의 부담을 덜어줬다.
안 전 위원장 공천은 공천관리위원회의 전략적 결정으로 받아들여졌지만 ‘보이지 않는 강력한 손’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정치권에서는 공동정부 존중 의지가 강한 윤 대통령의 뜻을 국민의힘 지도부가 이해하면서 결국 윤심이 물밑에서 작용한 것 아니냐는 해석에 무게가 실렸다.
공천권이 당선증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통계적으로 볼 때 안 전 위원장이 출마한 분당갑은 국민의힘에 유리한 선거구로 꼽힌다. 단일 선거구였던 성남 분당구는 2000년 16대 총선 때 갑·을 2개 선거구로 분리됐는데 분당갑은 2016년 20대 총선을 제외하고는 20여 년간 국민의힘 계열 정당이 당선됐다.
분당갑은 직전 대통령 선거에서도 국민의힘에 우세였다. 윤 대통령은 경기도에서 45.62%를 득표,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50.94%)에 5.32%포인트(p) 뒤졌지만 분당에서는 12.56%p(윤 대통령 54.58%, 이 후보 42.02%)가량 앞섰다. 이런 통계치를 인용하면서 정치권에서는 안 전 위원장이 여당 내부의 가장 강력한 2인자로 올라서고 있다는 평가를 내린다. 껄끄러운 상대이자 내년 당권 경쟁에서 라이벌이 될 것으로 보이는 이준석 대표를 이번 보궐선거 공천국면에서 일단은 제압했다는 관전평도 나온다.
안 전 위원장은 본격적으로 이 대표와 날을 세우는 모습도 목격된다. 안 전 위원장은 김은혜 국민의힘 경기지사 후보와 강용석 무소속 경기지사 후보의 단일화와 관련, 5월 18일 경기 성남시 야탑동 선거사무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를 통해 “단일화가 필요하다고 보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단일화 불가를 천명해온 이 대표와 정반대 의견을 제시한 셈이다.
안 전 위원장의 이 발언에 대해 이 대표도 기다렸다는 듯 즉각 맞받았다. 이날 전북 유세 현장에서 기자들과 만난 이 대표는 “그럴 거면 (안 후보가) 선대위원장을 하셨어야 했다”며 “선대위원장 하라고 할 땐 안 하시고, 또 선거 전체를 지휘하시고 싶으신 것 같다. 선대위 방침과 다른 메시지를 낼 거면 좀 상의하셨으면 좋겠다”고 꼬집으면서 견제심리를 내비쳤다.
#'소통령' 떠오른 한동훈
윤석열 정부를 이끌어갈 1차 내각 인선 발표 때만 해도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향후 정부쪽에서는 확실한 2인자 그룹에 들어갔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원 장관은 대선 경선에서 윤 대통령과 맞붙었지만 경선 이후 둘은 확실한 ‘깐부’가 됐다. 게다가 정책 주목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국토부 업무까지 맡으면서 정부 쪽 2인자로 키워지는 것 아니냐는 해설이 따라붙었다.
그러나 2차 내각 인선 발표 후 다른 해설이 나오기 시작했다. 한동훈 장관의 조기 급부상 때문이었다. 한 장관은 정권 출범 전까지만 하더라도 검찰총장은커녕 서울중앙지검장 자리도 차지하기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한 장관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윤 대통령의 검찰 내부 최측근이라는 점에서 그가 핵심 요직을 차지한다면 야당의 반발이 불 보듯 빤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정면 돌파를 택했고, 한 장관은 검찰총장도 아닌 법무부 장관으로 직행했다. 윤 대통령은 한 장관에 대한 국회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았지만 임명을 강행했다. 더불어민주당도 한 장관에 대해 ‘소통령’이라는 표현을 써가면서 명실상부한 2인자 프레임을 씌우는 모습이다. 윤 대통령과의 친밀도는 물론, 검찰 인사를 좌지우지하는 법무부 장관이라는 위치를 놓고 볼 때 예전에 볼 수 없는 2인자의 조기 등장이라는 해석을 야당 스스로 내놓고 있다.
한동훈 장관은 넥타이 등 옷차림이나 그가 들고 다니는 가방이 화제가 되는 등 팬덤까지 만들어내고 있다. 한 장관은 청문회에서 거침없고 당당한 태도를 보이면서 야당 의원들이 무기력했다는 평가를 받아냈고, 최근 검찰 간부 인사에서도 화합형 인사가 아닌 측근들을 중용하는 공격적 인사를 함으로써 명확한 색깔을 드러냈다. 그가 장관을 마친 뒤 2024년 총선에 출마하고, 이후에는 차기 대선까지 노릴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나오는 이유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한 장관은 윤석열 정부 내각에서 가장 젊은 40대 장관이어서 상징성이 있고, 할 말을 하는 데다 불의에 대해 좌시하지 않는 정의로운 이미지가 있다”며 “이로 인해 ‘한동훈 현상’이라는 것도 나타나고 있는데 이런 징후로 볼 때 한 장관은 본인 및 주변 관리만 잘한다면 충분히 차기 주자로 올라설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세·측근 그룹은 뒀지만…
1987년 직선제 이후 역대 대통령들은 실세 측근 그룹은 뒀지만 뚜렷한 2인자 그룹은 두지 않았다. 하늘에 태양이 2개 뜰 수 없다는 논리였다. 때문에 윤 대통령 취임 초반부터 2인자 그룹이 형성되는 것은 낯선 장면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여소야대 극복을 위해 억지춘향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YS)을 끌어들여 2인자로 삼았지만 YS는 강력한 견제 대상이기도 했다. 이후 정권을 보면 YS는 차남인 김현철 씨와 상도동계, 김대중 전 대통령(DJ)은 동교동계를 실세 그룹으로 뒀지만 적극적으로 2인자 그룹은 만들지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86그룹이나 문재인 당시 비서실장을 주축으로 한 부산 그룹이 측근이었지만 2인자 그룹을 형성시키지는 않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MB)은 친형인 이상득 전 국회 부의장 등의 측근 그룹이 있었지만 당시 강력한 당내 세력인 박근혜 의원 때문에 2인자 그룹은 만들어지지 못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통치방식을 본받아 2인자 그룹 형성은 엄두도 못 내게 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호남의 적자로 불리던 이낙연 전 전남도지사를 국무총리에 기용, 2인자 그룹을 만드는 형식은 나타냈지만 내용상으로 적극적 후원 의지를 드러내지 않았다는 평가다.
윤석열 정부에서 최근 나타난 2인자 그룹의 조기 형성을 두고 국정 혼란이 나타날 것이라는 우려가 일단 나온다. 당과 정부에서, 실력자들이 대통령과 상이한 의견을 낼 경우 정책 혼선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심할 경우 잘한 것은 2인자 그룹이 과실을 거둬가고, 못한 것에 대해서는 대통령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움으로써 격렬한 집안싸움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명박 정부 당시 여당 내 야당으로 불린 박근혜 의원과 MB와의 신경전을 기억하는 여권 정치인들은 이 모델을 우려한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2인자 그룹을 강력한 조언 세력으로 두면서 국정 난맥상이 나타날 때마다 이들을 원군으로 활용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정치 신인’으로서 여의도 지지세가 약하다는 한계를 갖고 있는 윤 대통령이 2인자 그룹을 적극적으로 움직여 국정을 운영해 나갈 것이란 의미다.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