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피보기 전에 M&A할까 ‘쑥덕’
▲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한국전력의 자회사로 출발한 파워콤은 한전이 가설한 관로(전력, 통신망이 설치된 통로)를 관리하며 이를 초고속인터넷 사업자에게 임대하는 일종의 도매업체였다. 그러던 파워콤이 소매사업에 진출한 계기는 파워콤의 민영화와 관련 있다.
파워콤은 한전이 민영화를 준비하면서 시범적으로 민영화를 먼저 실시한 일종의 파일럿 업체인 셈이다. 지지부진하던 민영화가 급물살을 탄 것은 파워콤에 대해 소매업을 허용하면서 부터. 2002년 11월 파워콤은 치열한 경쟁끝에 데이콤이 인수(지분 45%)를 하고 하나로텔레콤은 근소한 차이로 떨어졌다.
대부분의 회선을 파워콤으로부터 임대해 쓰던 하나로텔레콤으로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이때부터 하나로는 자체망을 깔기 시작해 현재 파워콤 임대망의 비율을 30%로 줄였다. 그러나 아직 파워콤 임대망이 남아 있어 이 때문에 파워콤과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하나로텔레콤과 파워콤이 같은 지역을 대상으로 가입자 유치에 나서다 보니 하나로텔레콤으로서는 자사에게 임대하는 망이 파워콤이 직접 소비자에게 공급하는 것에 비해 품질이 떨어지지 않을까 고심하고 있다. 파워콤은 그럴 리 없다는 반응이지만, 가입자 유치전이 치열해질 경우 소비자에게 공급되는 망이 더 저렴해지고 속도를 높이는 데 치중하게 되다 보면 임대망은 상대적으로 소홀해진다는 것이 하나로텔레콤의 말이다.
한편 파워콤의 업계진출을 통해 통신업계의 판도변화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는 것이라고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100%에 가까운 자체망을 사용하는 KT 이외에 KTF, SK텔레콤, SK네크웍스, LG텔레콤, SO들은 파워콤 임대망을 사용하고 있었으나 파워콤이 민영화되면서 자체망을 깔기 시작했다.
현재 통신업계는 KT-KTF, SK텔레콤-SK네크웍스-텔링크, LG텔레콤-데이콤-파워콤으로 블록화되는 추세다. 특히 2010년 BcN(Broadband Convergence Network: 광대역 통합망)시대가 개막되면 유무선 통합환경이 되면서 초고속인터넷이 그 기반이 될 것으로 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LG로서는 상대적으로 약한 초고속통신망사업을 강화해야 할 필요성이 파워콤 인수의 배경이 되고 있다.
이런 구도 때문에 무선통신사업군이 없는 하나로텔레콤과 유선통신사업군이 없는 SK텔레콤의 합병설이 나오고 있다. 파워콤이 본격적으로 초고속인터넷시장의 점유율을 높여가면 업계간 M&A 논의도 점차 가속화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점치고 있다.
업체간 치열한 경쟁과 제살파먹기식의 영업으로 인해 업체들이 상반기 실적이 지난해에 비해 크게 떨어진 점도 업계간 구조조정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이유다. 파워콤 진출을 앞두고 올해 초부터 초고속 통신 서비스 회사들이 가입자 유치를 위해 출혈경쟁을 감내하고 있다.
KT는 전년도에 비해 올 상반기에 마케팅비용으로 30%를 더 썼고 하나로텔레콤은 1분기 5백82억원이었던 마케팅 비용이 2분기 7백19억원로 늘었다. 1분기 순이익 1백52억원은 2분기 34억원 적자로 돌아섰다. 실적발표를 앞두고 하나로텔레콤의 대주주인 뉴브리지캐피탈과 윤창번 대표와의 갈등으로 윤 대표가 전격 퇴임하는 내홍을 겪기도 했다.
파워콤의 진출로 하반기에는 더 많은 출혈경쟁이 예상된다. 파워콤은 이미 기존 초고속인터넷 사업자들보다 최고 20%까지 싼 값으로 가입자를 끌어모을 계획이다. 데이콤도 KT, 하나로텔레콤보다 최고 10% 싼 가격으로 승부를 걸고 있다. 지난 7월까지 시장점유율은 KT가 51.7%(6백19만명), 하나로텔레콤이 23.3%(2백78만명), 두루넷이 7.9%(94만명), 온세통신·드림라인·데이콤 등이 6.4%, SO가 8.7%(1백3만명)다. 파워콤은 점유율 30%를 자신하고 있다.
한편 지난 8월24일 우리투자증권은 보고서를 통해 하나로텔레콤과 데이콤의 합병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하나로텔레콤-두루넷-데이콤-파워콤이 합쳐지는 그림을 그릴 경우 하나로텔레콤의 가입자당 기업가치가 최소 2배는 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하나로텔레콤과 데이콤이 합병할 경우 KT에 맞서는 거대 통신사업군이 생기게 된다. 그럴 경우 유선과 무선을 KT와 나눠갖던 SK텔레콤은 통신시장의 미아가 될 가능성이 커진다. SK텔레콤이 인수전에 공격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는 것. 방치했다가는 삐삐회사의 운명과 궤를 같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나로텔레콤 인수를 둘러싸고 추후 통신사업 구도재편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