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0억 대출했다더니…” vs “당시 PF 성사 분명한 사실”
최근 카자흐스탄(카자흐) 및 러시아 현지 열병합 발전소 건설사업을 둘러싼 투자자들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현지에서 발전소 건설사업을 수주한 인물은 W 사의 이 아무개 대표(58)다. 그는 지난 2007년 카자흐 현지 수주사업을 인수한 뒤 외국회사로부터 사업에 필요한 PF(프로젝트 자금)를 받는 데 성공했다며 많은 사람들을 끌어 모았다. 여기에는 국내 대기업도 포함되어 있어 더욱 눈길을 끈다. 그런데 수주사업이 시작된 지 몇 해가 흘렀건만 지금까지 사업은 아무것도 진척된 것이 없다. 아직까지 건설부지는 허허벌판으로 남아있는 상태다. 적게는 몇 억에서 많게는 수십억의 돈을 댄 사람들은 최근 이 대표에 대해 법적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카자흐스탄 현지 발전소사업을 둘러싼 W 사의 논란을 집중적으로 파헤쳐봤다.
카자흐에서 건설업을 하고 있는 W사 이 대표는 현지 교민사회에서 신화적 인물로 알려졌다. 지난 2004년께 카자흐의 경제수도 알마티에 들어온 이 대표는 지난 2006년, 카자흐 세메이 열 병합발전소 건설사업권을 인수했다. 이후 이 대표는 카자흐 딸띠꼬르깐 발전소와 러시아 오렌부르그 발전소 건설사업을 추가로 수주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이 대표는 창업한 지 얼마 안 된 중소기업임에도 불구하고 대기업도 어렵다는 카자흐 및 러시아 현지의 발전소건설 사업권 여러 개를 따낸 성공가도 덕에 교민사회에서 신화적인 존재로 부상했다. 지난 2007년 카자흐 현지의 교포매체 <한인일보>는 ‘카자흐에서 쓰는 한국의 건설신화’라는 내용으로 이 대표의 성과를 대대적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당시 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 대표는 “대기업의 경우 사업에 관해 신속한 의사결정이 불가능하지만 우리와 같은 중소기업은 효율적인 사업진행이 가능하다”며 자신의 성공비결을 밝히기도 했다. 2007년 7월 세메이 발전소 사업설명회 당시에는 나자르바예프 카자흐 대통령이 직접 참석하기도 했다.
사업권을 따낸 이 대표는 지난해 5월께 미국의 P 사와 홍콩의 I 사로부터 세메이 발전소 건설사업에 필요한 PF(프로젝트 자금) 6억 5000만 달러를 지원받는 데 성공했다며 국내외에서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지난해 6월 그는 카자흐 카림 마시모프 국무총리와 만나며 현지 유력 언론사들을 상대로 사업설명회를 겸한 인터뷰를 갖기도 했다.
<일요신문>은 마시모프 국무총리가 동석한 당시 인터뷰 영상을 확보했다. 본지가 확보한 인터뷰 영상에서 이 대표는 “60㏊ 규모의 세메이 발전소사업에 필요한 PF 6억 5000만 달러를 미국의 P 사와 홍콩의 I 사로부터 확보했다. 또한 이 사업에는 카자흐 대통령이 많은 관심을 표명했다. 2010년 8월 기공식을 갖고 A 사가 곧 현장에 투입될 것이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당시 인터뷰를 통해 카자흐 대통령의 관심과 더불어 국내 대형 플랜트 및 인프라 엔지니어링 기업인 A 사와 공사 계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인터뷰 중에 마시모프 국무총리가 직접 이 대표에게 질의를 하기도 했다.
2007년 7월 사업설명회 당시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직접 참관했다는 점과 지난해 인터뷰 당시 마시모프 국무총리가 동석했다는 점, 그리고 A 사와 같은 굴지의 기업이 참여한다는 점 등 겉으로 드러난 화려한 이면만 본다면 W 사와 이 대표의 발전소건설사업은 누가 봐도 신뢰할 수 있는 대형 SOC사업이었다.
하지만 카자흐 현지의 발전소사업은 어찌된 일인지 지금까지 아무런 진척이 없다. 거창한 각종 사업설명회와 현지 언론을 상대로 한 기자회견까지 진행했지만 W 사의 현지사업 진행은 ‘제로’에 가깝다. 최근에는 당시 사업만 보고 투자하거나 이 대표 사업에 돈을 투자한 사람들이 W 사와 이 대표의 현지사업을 의심하며 ‘국제사기’까지 운운하고 있다. 심지어는 W 사의 발전소사업에 참여한 A 사 역시 W 사에 속아 큰 피해를 봤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기자와 통화한 G 건설사 성 아무개 대표는 W 사와 이 대표의 얘기를 꺼내자 이내 흥분했다. 성 대표는 “지난 2007년 세메이 발전소 공사 사업초기 당시 지인의 소개로 이 대표를 만났다. 당시 이 대표는 건설 중장비를 세메이 현지에 가져오면 공사를 준다고 했다. 그 말만 믿고 포클레인, 덤프, 트레일러 등 중장비 40대를 세메이 현장에 가져갔다. 보낸 중장비만 자그마치 20억 원에 달했다. 여기에 운반비만 3억 원이 들었다. 그런데 사업은 아무것도 진행되지 않더라. 지나고 보니 이 대표는 내가 보낸 어마어마한 장비를 현지 정부와 투자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이용한 것이다. 나는 공사도 못하고 현지에서 중장비를 헐값에 팔 수밖에 없었다. 또 이 대표에게 사업자금으로 4억 원을 빌려줬는데 지금까지 받지 못하고 있다. 사기꾼에 불과하다. A 사도 이 대표에게 당하고 있는 거다. 되지도 않는 사업이다”며 울분을 토했다.
그러면서 그는 “나 말고도 피해자가 수두룩하더라. 반드시 이 대표를 법정 심판대에 세울 것이다. 현재 피해자들과 고소를 준비하고 있다”며 법적 대응을 시사했다.
기자가 만난 또 다른 피해자 P 컨설팅 장 아무개 대표는 더 심각했다. 그는 “지난해 이 대표를 처음 만났다. 이 대표는 당시 PF를 받아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나에게 호텔사업에 동참할 것을 종용했다. 당시 그는 자신이 어마어마한 비자금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사정상 현재는 그 비자금을 이용하지 못한다고 하면서 나에게 자금을 지원해달라고 하더라. 나는 그에 응했고 그 뒤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나에게 돈을 요구했다. 그렇게 가져간 금액만 지금까지 17억 원이다. 내가 이 대표에게 지원한 17억 원 중에는 개인자금도 있지만 빌린 돈도 많았다. 이 때문에 담보로 잡힌 100억대의 내 부동산이 다 날아가게 생겼다. 지금까지 돈을 못 받고 있다. 당시 난 사업에 참여한다는 조 아무개 대표 등 A 사 관계자들과 동석해 식사까지 했다. 당연히 믿을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대표는 카자흐에 들어가지 전, 한 여성에게 사기를 친 전력이 있더라.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당한 것 같다”라며 안타까워했다. 실제로 기자가 취재한 결과 이 대표는 지난 2003년 한 여성으로부터 2억 5000만 원을 편취한 혐의로 지난해 경찰에 체포된 전력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면서 그는 “이 대표는 당시 PF지원이 파기됐다고 했다. 사업에 필요한 자금 전부가 봉쇄됐다는 것 아닌가. 지금 생각해보면 그가 지원받기로 했다던 PF의 실체조차 의심스럽다. PF와 관련한 증명서류와 관계자들을 만나게 해줬지만 조작됐을 가능성도 있지 않겠나. A 사도 어찌 보면 피해자다. 아직까지 믿고 있는 것 같더라”고 말했다. 사업의 핵심인 PF가 아예 사실이 아닐 가능성을 개진한 것이다. 또한 그의 말대로라면 사업에 참여한 A 사 역시 구멍가게에 불과한 W 사와 이 대표에게 여러모로 농락당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기자와 통화한 A 사 관계자는 “세메이 발전소사업은 W사와 MOU만 체결한 상태였다. 또 다른 러시아 오렌부르그 발전소사업은 지난해 정식계약까지 갔지만 W 사가 계약 후 30%의 선지급금을 준다는 조항을 어기면서 계약이 파기됐다. 지금 W 사와는 관계가 끝났다. 물론 우리도 피해자라고 볼 수 있지만 금전적으로는 큰 피해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뭐라 할 말은 없다. 다만 이러한 얘기가 밖에 흘러나가면 기업 이미지상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알려지는 게 부담스럽다”고 입장을 피력했다. A 사 측은 W 사와의 관계를 인정하면서도 매우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분위기다.
기자는 지난 11월 3일 카자흐 현지에 있는 W 사 이 대표와 직접 통화를 했다. 그는 “나는 실제 현지 주정부로부터 사업을 수주 받았고 지금까지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4년간 내 사비 100억 원이 들어갔다. 다만 앞서 PF가 파기되면서 사업진행이 안 되고 있을 뿐이다. 당시 PF 성사는 분명한 사실이다. 증거자료까지 다 보여줄 수 있다. 지금 다른 회사와 PF를 논의 중이다”고 밝혔다.
이어 이 대표는 금전적 피해를 본 피해자들과 관련해서는 “물론 세메이 발전소사업에 필요한 자금 명목으로 몇몇 사람들에게 돈을 꾸기는 했다. 투자 명목으로 돈을 끌어들인 게 아니라 내가 필요한 사업자금으로 돈을 꾼 것이다. PF가 성사된다면 모두 변제할 계획이다”고 해명했다.
또한 A 사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지난해 러시아 오렌부르그 발전소사업 계약이 파기된 것은 맞다. 하지만 세메이 발전소사업의 경우 아직까지 관계가 유효하다. 지금도 A 사 직원이 현지로 나와 지질조사 등을 진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부분에 대해 A 사에선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이러한 이 대표의 주장과 달리 현재 일부 피해자들은 W 사와 이 대표에 대해 법적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개발도상국의 대형 SOC사업과 관련한 이해 당사자들 간의 진실게임이 법정 공방전으로 확전될 조짐이 일고 있다.
과연 카자흐에서 신화적 사업가로 유명세를 치른 이 대표와 사업 관계자, 여기에 일부 대기업까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이번 사건이 어떻게 결론날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한 피해자의 증언
유명 골프선수 부친도 연루?
기자와 만난 피해자들 중 P 컨설팅 장 아무개 대표는 기자에게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전달했다. 장 대표와 W사 이 대표를 연결해준 것은 자칭 M&A전문가 양 아무개 씨(여·46)와 사업가 유 아무개 씨(52)였다고 한다. 장 대표는 “양 씨와 유 씨는 나를 카자흐 알마티로 끌어들여 이 대표에게 연결시켜준 장본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계획적으로 나를 끌어들인 것 같다. 양 씨와 유 씨 일당은 이 대표를 연결해줘 피해를 입힌 것 말고도 나에게 동업을 제안하면서 여러모로 금전적 피해를 입힌 사람들이다”고 주장했다.이 대표를 연결해 준 양 씨는 자신을 가구업체 B 사와 S 건설 등 유명기업을 M&A한 경험이 있는 사업가로 한 홍콩회사의 대표로 있다고 소개했다고 한다. 이와 함께 유 씨는 자신의 인맥을 과시하기도 했다고 한다. 장 대표는 “한 번은 유 씨가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아는 유명 여성 골프선수와 그의 아버지를 내게 소개시켜줬다. 유 씨는 지난해 8월께 강원도 평창에 있는 리조트에 나와 이 선수 가족을 초대했다. 유 씨와 이 선수의 아버지는 친분이 매우 두터워 보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 선수의 부친이 그 일당들의 작업에 연루됐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그로 인해 내가 그 일당들을 믿게 된 것은 사실이다. 워낙 유명인사이기 때문에 양 씨와 유 씨의 인맥에 혹한 것은 맞다”고 말했다.
기자는 장 대표로부터 당시 만난 골프선수와 리조트에서 찍은 한 장의 사진을 입수했다. 아직까지 골프선수 부친과 이들의 관계는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이들이 작업에 이 선수의 부친을 인맥과시용으로 활용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한]
유명 골프선수 부친도 연루?
그러면서 그는 “이 선수의 부친이 그 일당들의 작업에 연루됐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그로 인해 내가 그 일당들을 믿게 된 것은 사실이다. 워낙 유명인사이기 때문에 양 씨와 유 씨의 인맥에 혹한 것은 맞다”고 말했다.
기자는 장 대표로부터 당시 만난 골프선수와 리조트에서 찍은 한 장의 사진을 입수했다. 아직까지 골프선수 부친과 이들의 관계는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이들이 작업에 이 선수의 부친을 인맥과시용으로 활용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