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자 결제’ 선택권 부여? 사실상 수수료 비슷하거나 더 비싸…OTT·웹툰 등 줄줄이 가격 인상
‘인앱(in-app)결제’란 앱 내에서 결제한다는 뜻으로 구글 등에서 자체 개발한 내부결제 시스템이다. 대표적인 앱 마켓인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인앱결제’를 강제하는 것이 갑질이라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인앱결제강제방지법(구글갑질방지법)’이 제정됐다. 그러나 구글은 이에 굴하지 않고 인앱결제 정책을 강행했다. 게임 개발사들만 상대로 인앱결제를 시행하다가 그 범위를 웹툰, 음악 등 모든 개발사로 확대했다. 더불어 구글이 정한 결제정책을 따르지 않는 앱들은 업데이트를 금지를 하고, 앱 마켓에서 삭제하겠다고 밝혔다.
구글갑질방지법이라는 법이 있는데도 구글이 당당하게 결제정책을 강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구글이 제시한 결제 방식은 ‘인앱 결제’와 ‘제3자 결제방식’이다. 특정 결제방식이 아닌 앱 내에서 ‘제3자 결제’라는 선택권을 줬기 때문에 법을 위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구글의 주장이다.
이러한 구글의 태도에 앱 개발사와 콘텐츠 제작자 등은 법이 있어도 소용이 없다며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인앱결제로 빠져나가는 수수료다. 인앱결제 시 앱 개발사들은 앱 마켓에 수수료를 지불해야 해 콘텐츠 이용료 인상이 불가피하다. 인앱결제로 개발사들이 지불해야 하는 결제 수수료는 30%다. 제3자 결제를 택할 경우 나가는 수수료가 약 26%로 상대적으로 저렴한 수수료를 지불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앱 개발사들이 제3결제를 이용할 경우 보통 결제 대행사를 통해 결제 시스템을 마련하기 때문에 결제 대행 수수료가 나갈 수밖에 없다. 일반적인 결제 대행 수수료는 5% 안팎으로 결국 지불해야 하는 총 수수료는 인앱결제할 때와 비슷하거나 더 비싸다. 한 OTT 업계 관계자는 “제3자 결제 시스템을 이용해도 수수료가 더 비싸다 보니 제3자 결제는 포기할 수밖에 없다”며 “인앱결제만 선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러한 구글의 꼼수로 인해 피해를 보는 것은 앱 개발사들과 소비자들이다. 앱 개발사들은 구글의 인앱결제 강제에 잇따라 콘텐츠 이용료를 인상했다. 국내 OTT 플랫폼 웨이브, 티빙 등은 이용권 가격을 15% 올렸고, 국내 음원플랫폼인 플로와 바이브는 스트리밍 서비스 가격을 각각 14%, 16%씩 인상했다. 국내 음원플랫폼 ‘멜론’도 29일부터 서비스 이용권 가격을 약 10% 인상한다. 웹툰과 웹소설을 유료로 구매할 때 필요한 네이버웹툰의 ‘쿠키’와 카카오웹툰·카카오페이지의 ‘캐시’도 20% 올랐다.
구글의 인앱결제 강제로 인한 콘텐츠 이용료 인상은 소비자들에게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 OTT 서비스를 매월 정기결제하고 있는 정 아무개 씨는 “이용료가 생각보다 많이 올라 부담된다”며 “앱에서는 오른 가격으로 결제해야 해서 PC로 접속해 결제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PC나 모바일 웹을 통해 결제하면 기존 가격 그대로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어 웹에서 결제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지만 이를 모르는 경우도 있어 인상된 가격을 이용하는 소비자들도 여전히 많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양정숙 의원에 따르면 인앱결제로 인해 소비자가 추가로 부담해야 할 금액은 한해 2300억 원에 이른다.
소비자들의 이용료 부담이 커지면 장기적으로 콘텐츠 이용률이 줄어들 것이고, 이는 결국 콘텐츠 업계의 수익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기존 고객들은 서비스를 계속 이용하겠지만 인앱결제 정책으로 인한 가격인상이 신규 고객을 끌어들이기 어려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콘텐츠에 대한 소비자 이용이 줄어들면 콘텐츠를 만드는 창작자들의 수익 감소로도 이어진다. 사단법인 웹툰협회는 “인앱결제 강제로 인한 콘텐츠 이용료 상승은 소비자에게 그 부담이 전가될 것이며 이는 창작자들의 수익 감소로 이어질 게 뻔하다”고 밝힌 바 있다.
구글갑질방지법이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데는 주무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의 안일한 대응도 한몫한다. 지난 4월 구글이 인앱결제 의무화 정책을 발표했지만 방통위는 한 달이 지나서야 위법 소지에 대한 실태점검에 들어갔다. 이미 플랫폼 업계에서는 구글의 결제 정책이 나온 후 요금 인상에 들어갔는데 너무 늦게 실태점검에 나선 것이다. 또한 방통위는 구글이 정한 결제 방식이 아닌 다른 결제 방식을 이용하는 앱이 삭제 당하는 등의 피해 사례가 있어야 실질적인 제재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앱 개발사들이 지난해 앱 마켓 시장점유율 약 75%를 차지하는 구글에 반기를 들기란 쉽지 않다.
실제로 방통위가 지난 4월 개설한 앱 마켓 부당행위 피해사례 신고센터에 접수된 피해사례는 대한출판문화협회의 신고 건 단 1건에 불과하다. 앱 마켓에 등록돼있는 콘텐츠 앱 개발사의 신고 건수가 단 1건도 없는 것으로 보아 신고센터 또한 별 효과가 없는 듯 보인다. 방통위는 구글갑질방지법 자체가 사후규제 법이라 위반 사항을 입증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방통위 관계자는 “앱 개발사들이 방통위에 신고하기 어렵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어 앱 개발사들과 면담을 통해 내용을 알아보고 있다”며 “사후 규제법이기 때문에 법 위반 사항에 대한 입증이 꼭 필요해 인지를 한 부분에 대해서는 입증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결제방식을 사용하는 앱의 삭제 등 구체적 피해가 발생하기 전에 앱 마켓사의 정책만으로 금지행위 규정 적용이 가능한지 여부에 대해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콘텐츠 플랫폼 업계 관계자들은 방통위가 구글에 보다 적극적인 제재를 해줄 것을 바라고 있다. 한 음원 플랫폼 관계자는 “인앱결제강제방지법이 제대로 시행될 수 있도록 피해가 발생하기 전에 방통위 측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앞선 OTT 업계 관계자는 “앱 개발사 측에서는 어떤 불이익을 받게 될지 모르니까 구글을 상대로 신고하기가 쉽지 않다”며 “피해 사례를 발견하는 것보다 구글의 정책 자체가 불합리한 부분이 있으니까 이런 부분을 포괄할 수 있도록 법을 좀 더 개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방통위 관계자는 “구글이 2개의 결제 방식을 제공했다고 해도 개발자 관점에서 충분한 선택권이 보장되지 않았다면 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본다”며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
이민주 기자 lij907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