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 아닌 단역이라도 언제든지 나설 것” 칸 남우주연상 영예 후에도 여전한 천생 배우
데뷔 32년 만에 ‘한국인 최초’ 기록을 새로 세웠다. 5월 28일 폐막한 제75회 칸 영화제에서 배우 송강호(55)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 ‘브로커’로 한국 배우 최초의 남우주연상 트로피를 손에 들었다. 한국 배우가 칸 영화제에서 연기상을 받은 것은 ‘밀양’(2007) 전도연의 여우주연상 이후 두 번째이며, 아시아 배우의 남우주연상은 '화양연화'(2000)의 량차오웨이(양조위), '아무도 모른다'(2007)로 최연소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야기라 유야에 이어 세 번째 기록이다.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시상식 무대에 자신의 이름이 호명될 때까지 어안이 벙벙한 상태였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약간 부담이 좀 있었던 게, 차라리 한국 감독님이었으면 살짝 편할 수도 있었겠다는 거(웃음). 워낙 고레에다 감독님이 일본에서도, 세계적으로도 거장이시다 보니 일본 영화 팬들의 주목도가 높은 작품이고 한국 관객 분들도 굉장히 예의주시하고 있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고레에다 감독님의 작품세계에 폐가 되는 건 아닐까, 한국 배우들과의 작품이 그렇게 되면 안 되지 않을까, 고레에다 감독님의 세계가 훼손되지 않는 정도는 돼야 하지 않을까 하는 부담감이 살짝 있었죠. ‘폐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라는(웃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브로커'에서 송강호는 버려진 아기를 키울 적임자를 찾아주려는 자칭 '선의의 브로커' 상현 역으로 분했다. 브로커 일을 돕는 동수(강동원 분)와 자신이 버린 아이를 다시 찾아온 어린 엄마 소영(이지은 분)과 함께 하는 상현은 아이의 입양처를 찾는 여정 속 갑작스럽게 꾸려진 이 ‘유사가족’에서 아버지 역할을 맡는다. 이야기의 포커스 자체는 소영에게 맞춰져 있지만 상현은 고레에다 감독이 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 그 자체를 상징하고 있는 인물로 보이는 비중보다 더 중요한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상현이란 캐릭터가 사실 어떻게 보면 좀 애매모호한 면이 있죠. 전사를 추측할 수 있을 뿐이고 이 사람이 살아온 궤적이 정확히 묘사되는 게 없어요. 영화가 끝날 때도 어떻게 살고 있는지가 안 나오는데 그런 지점이 저는 오히려 좋았어요. 상현의 그런 알 수 없는 마음 같은 것들이 고레에다 감독이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하는 매개체로서 그렇게 비춰졌으면 좋겠다 생각했거든요. 도덕적으로 완벽한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반인륜적인 환경을 가진 사람도 아닌, 그런 애매하고 알 수 없는 상현의 지점들이 참 좋았어요.”
고레에다 감독은 송강호의 얼굴에서 선과 악이 교차하며 보이는 지점을 포착해 ‘브로커’ 속 상현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2007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송강호를 만난 그는 9년 뒤인 2016년 똑같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정식으로 미팅을 가지고 ‘브로커’ 이야기를 꺼냈다. 한국 배우들과 맞추는 첫 합을 기대하고 있었다는 고레에다 감독은 현장에서 늘 배우들의 연기를 신선해 하고 만족해 했다는 후문이다.
“아역인 해진이가 봉고차에 몰래 숨어있다가 바닷가에서 튀어나와 소변을 보는 장면을 여러 테이크로 찍었는데 좀 더 신선하고 라이브한 느낌을 여러 번 시도한 게 생각나요. 사실 굉장히 웃기고 재미있는 테이크가 있었는데 좀 길어서 편집됐거든요. 그게 진짜 웃긴데, DVD 판에는 수록하지 않을까요(웃음)? 사실 그 장면뿐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항상 생동감 있는 연기를 위해 노력하고 시도한 건 모든 배우들이 마찬가지였는데 특히 그 장면을 고레에다 감독님이 그렇게 좋아하시더라고요. 일본 배우들과 다른 연기를 보여줘서 그런가? 사실 그 부분에 대해 대화를 나눠보진 않았지만요(웃음).”
송강호는 이번 작품에서 첫 호흡을 맞춘 이지은(아이유)에게 “훨씬 옛날 전부터 팬”이라고 밝혀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그것도 가수 아이유의 팬이 아니라 배우 이지은의 오랜 팬이고 드라마를 자주 보지 않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출연한 작품들을 대부분 챙겨봤다고 한다. 정작 이지은의 또 다른 본체인 아이유는 잘 알지 못해 “노래를 정말 몰라서 예능프로그램에서 아이유 씨의 노래 제목도 못 맞히는 불상사가 일어나기도 했죠”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 프로그램에서 그런 일이 있어서 저를 보는 아이유 씨 표정이 별로 안 좋아요(웃음). 노래는 잘 모르지만 제가 배우 이지은 씨의 팬입니다. ‘최고다 이순신’(2013)부터 좋아했어요. 그 드라마를 보면서 출연진인 조정석 씨한테 ‘아니 가수가 연기까지 잘하면 어떡해!’ 그랬는데 ‘나의 아저씨’에서도 놀라운 연기를 보여주더라고요. 그런 친구가 우리 작품을 한다고 했을 때 제가 처음 만나서 그랬어요. ‘저는 정말 오래 전부터 팬이었다’고. 함께 연기한다고 했을 때 진짜 감탄했죠.”
배우가 얻을 수 있는 최고 영예를 얻고도 송강호는 시종일관 겸손한 자세였다. 그와 함께 한 인터뷰에서 대부분의 내용은 후배들에 대한 칭찬과 한국 영화의 후발주자들에 대한 응원이 차지했다. 이번 작품에서도 그는 ‘브로커’라는 거대한 구조 속 하나의 톱니바퀴로 작용한 것이 뿌듯하다고 강조했다. 어떤 비중을 갖느냐보다 어떤 앙상블을 만들어 내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송강호는 천생 배우였다.
“제가 ‘기생충’ 때도 봉준호 감독님한테 ‘이렇게 같이 하니까 너무 재미있는데 한편으로는 어깨에 짊어진 짐을 나눠지는 것 같아 너무 좋다’고 그랬어요. ‘브로커’도 마찬가지예요. 뛰어난 후배들과 같이 하다 보니 제 어깨도 약간 가벼워졌고 그러다 보니 원 톱, 투 톱의 부담감 같은 데서 해방돼 자유로워진 느낌도 들었죠. 저는 언제든지, 내일 당장이라도 좋은 작품이 있다면 조연 아니고 단역이라도 참여할 거예요. 제가 (배우로서) 언제까지 갈 진 모르겠지만 그 마음은 항상 자유롭게 열려 있어요. 그게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해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