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DB는 DB하이텍을 매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DB는 어떤 방법으로 DB하이텍을 떨쳐내지 않고서도 지주사 전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어떤 식으로든 DB가 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소액주주들의 피해를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곧 우리 지주회사 제도의 문제점이기도 하다.
지주회사로 전환되는 조건은 지주회사의 종속회사 주식가액이 대차대조표상 자산의 50% 이상이다. DB는 종속회사인 DB하이텍의 주식가액이 급등해 2021년 말 기준으로 DB의 대차대조표 자산에서 자회사 주식가액이 50%를 넘었다.
이때 생각할 수 있는 방식이 DB하이텍의 주식가액 평가 방식을 바꿔 DB하이텍 주식 평가액을 낮추는 것이다. DB가 DB하이텍을 관계회사로 편입하고 평가법을 원가법으로 변경하는 방법이 있다. 현재 DB는 DB하이텍 지분을 단순투자목적으로 분류하고 ‘기타포괄손익-공정가치측정금융자산’으로 계상해 시가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는 관계회사로 편입하기 위해서는 단순투자목적에서 유의적 영향력이 있다고 인정받아야 하는데 공정위가 이를 수용할지 미지수다. 둘째는 관계사 전환에 따른 취득일 기준 공정가치액으로 취득가·원가가 잡히기 때문에 지주사에서 해제될 만큼 DB하이텍 주식 가치가 축소되려면 주가가 현재 수준에서 6.4%가량 하락해야 한다. 문제는 해당 방법으로 지주사를 해제하기 위해 DB하이텍의 주가 하락을 유도한다면 이는 기업가치와 주주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배임의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DB가 차입을 통해 분모를 확장하는 방법도 있다. 가장 유력한 방식이지만 차입에는 한계가 있다. 또 DB하이텍 주가가 계속 오를 경우 대응도 어렵다. 설사 가능하다 해도 이 또한 주주가치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 단지 지주회사에서 해제되기 위해 차입을 늘리거나 대규모 유상증자를 단행한다면 기업가치와 주주가치를 훼손하게 되므로 배임의 의심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게 이른바 ‘인적분할의 마법’을 통해 DB하이텍의 지분을 30%까지 늘려 요건을 충족하는 것이다. 과거 이 방법으로 지주회사의 지분율을 확대하는 거래들이 있었다. 하지만 ‘인적분할의 마법’ 역시 소액주주 권리 침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인적분할의 마법은 세 단계의 거래구조를 거친다. 먼저 DB하이텍을 인적 분할하면 지주회사의 디스카운트 현상을 회피하는 시장 참여자들은 중간지주회사를 외면하기 때문에 중간지주회사 주가는 폭락하고 사업회사의 주가는 폭등한다.
다음으로 이 상태에서 중간지주회사가 유상증자를 하는데 거의 대부분 대주주만 참여하게 되고, 대주주는 주가가 폭등한 사업회사 주식을 현물출자하면 중간지주회사의 사업회사에 대한 지분율이 대폭 증가한다.
이후 DB가 주가가 폭락한 중간지주회사를 합병하면 DB의 DB하이텍 지분율이 대폭 증가한다. 얼마나 증가할지는 인적 분할, 유상증자 시 얼마나 주가가 벌어지는지에 달려 있다. 그러나 이 방법도 중간지주회사의 기업가치, 주주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하게 되므로 배임 의심을 산다.
DB가 이번 지주사 지정에 따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예상 시나리오는 DB와 DB하이텍 주주들의 권리를 침해할 가능성이 상존한다. 최근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합병비율 기준을 공정가치로 평가하게 하고, 이사의 주주에 대한 신인의무를 도입하는 개정입법안을 발의했는데 반드시 통과돼 주주권리 침해 위험이 원천 차단되길 희망한다.
김규식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기업 지배구조 분야의 통찰력을 바탕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김 회장은 1992년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사법연수원 36기(2005~2006년)로 수료한 변호사다. 금융감독원(2014~2015년), 트리니티자산운용(2016년), 스카이자산운용(2017년) 등에서 고문을 역임했다. 이후 수림자산운용(2018년), KSA법무법인(2019~2020년)을 거쳐 현재 싱가포르 헤지펀드 터너리자산운용의 포트폴리오 매니저로도 활동하고 있다.
김규식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