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 창업회장 지배력 강화 여부 촉각…DB그룹 “대주주 책임경영 일환”
김주원 그룹 부회장 겸 그룹 해외담당 부회장은 서울예고와 연세대학교를 졸업했다. 2021년부터 DB하이텍 사장으로 선임돼 그룹 경영에 참여했다. 이번 부회장 승진으로 미국에 한정됐던 김 부회장의 영향력이 국내까지 확장된 모양새다. 김주원 부회장의 승진으로 DB그룹에 묘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김남호 회장과 김준기 창업회장 사이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재계에서는 DB그룹이 이미 김남호 회장 체제 들어섰지만 김준기 창업회장이 그룹 경영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보고하는 DB그룹의 동일인(총수)은 김남호 회장이 아닌 여전히 김준기 창업회장이다.
그도 그럴 것이 DB그룹 지분구조상 김남호 회장이 비록 지주사 (주)DB 지분 16.83%를 보유한 최대주주지만 지분이 그리 많지 않다. 김준기 창업회장의 지주사 지분율은 11.61%로 김남호 회장보다 불과 5%포인트가량 낮다. 부회장으로 승진한 김주원 부회장의 DB 지분도 9.87%나 된다. 김준기 창업회장과 김주원 부회장이 연합하면 김남호 회장 지분보다 5%포인트가량 더 많아진다.
공교롭게도 지난해 묘한 장면이 연출됐다. 지난해 김남호 회장의 어머니인 김정희 여사가 별세할 당시 김남호 회장은 김정희 여사의 DB 지분(1.1%) 상속에서 배제됐다. 반면 남편인 김준기 창업회장과 장녀 김주원 부회장은 김 여사의 지분을 상속받으면서 지분율을 각각 0.41%포인트, 0.68%포인트 끌어올렸다. 통상 그룹 경영권 승계자가 정해지면 승계자 중심으로 지분이 쏠리는 현상과 구별되는 지점이다.
앞서 DB그룹 경영권 승계는 김남호 회장으로 갑작스럽게 추진된 측면이 있었다는 것이 적지 않은 재계 관계자들의 생각이다. 김준기 창업회장은 2016~2017년 가사도우미, 비서와 잇달아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돼 재판에 넘겨져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이 사건 이후 김준기 창업회장은 회장자리를 김남호 회장에게 넘기면서 경영에서 손을 뗐고, 김남호 회장이 그룹을 이끌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난해 관련 소송이 마무리되자 김준기 창업회장은 그룹 경영에 다시 시동을 거는 모습을 보였다. 김준기 창업회장은 현재 DB와 DB하이텍 미등기임원 명단에 이름이 올라 있는 상태다.
DB그룹은 이번에 김주원 부회장을 승진과 관련해 경영자로서 그의 성과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그룹 측은 공식적으로 김주원 부회장의 승진 배경으로 ‘대주주 책임경영’의 일환이라는 설명에 그쳤다. 이 때문에 경영 능력이 입증되지 않은 오너 일가의 일원이 그룹 내 영향력을 높이는 것을 두고도 뒷말이 나온다.
김규식 한국거버넌스포럼 회장은 김주원 부회장 선임과 관련해 “회사가 경영인을 선임할 때 경력 능력 검증은 필수다. 회사 측은 주주에게 성실하게 설명해야 할 의무가 있다”며 “특히 지배주주 일가의 경영 참여에는 더욱 엄격한 잣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DB그룹 측은 “김주원 부회장 선임은 대주주 책임경영의 일환이며, 그룹 해외사업을 강화하기 위한 인사”라고 설명했다.
박호민 기자 donky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