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부문 물적분할 후 매각 방식, 지주사 체제 전환 신호탄 분석도…한화 “시너지와 집중, 지주사 검토 안해”
(주)한화는 방산부문을 물적분할해 한화방산을 설립한 후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매각한다고 지난 7월 29일 공시했다. 오는 9월 28일 임시 주주총회에서 해당 안건이 통과되면, 11월 2일 한화방산이 설립된다. 한화방산은 (주)한화가 지분 100%를 소유한다. 11월 30일 (주)한화는 한화방산 주식 전량인 200만 주를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넘길 계획이다. (주)한화가 한화방산을 처분하면서 얻는 금액은 약 7860억 원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현재 지분 100%를 보유한 한화디펜스도 합병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화디펜스는 모두 방위산업을 영위하고 있다.
이번 분할과 합병의 명분은 글로벌 경쟁력 강화다. 이번 사업 개편으로 한화그룹의 방산 사업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 회사로 통합됐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인수합병 등을 통해 2030년까지 ‘글로벌 디펜스 톱10’으로 성장하겠다는 목표다. (주)한화 방산부문은 탄약과 레이저 대공무기 기술, 우주 발사체 연료 기술 등을 보유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항공우주와 엔진, 한화디펜스는 K9 자주포와 원격사격통제체계 등 화력‧기동‧대공‧무인화체계에 주력하고 있어 시너지 효과가 날 것이라는 것이 회사의 입장이다.
방산 부문을 넘기는 (주)한화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자회사인 한화정밀기계를 인수하고, (주)한화의 100% 자회사인 한화건설과도 합병한다고도 밝혔다. (주)한화는 오는 1월 3일 한화정밀기계 60만 주 전량을 5250억 원에 취득할 예정이다. 현재 (주)한화의 사업 부문은 크게 글로벌‧방산‧모멘텀(기계사업부문)으로 나뉘었는데, 앞으로는 글로벌‧모멘텀‧건설 부문으로 재편된다. 한화정밀기계는 태양광, 2차전지 등 공정장비와 반도체 디스플레이 장비 사업을 벌이는 모멘텀 부문과 결합한다. 한화정밀기계는 반도체 후공정 패키지 장비 사업을 벌여왔다.
#물적분할 규제 의식했나
이번 (주)한화의 움직임을 두고 물적분할 규제를 의식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김규식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물적분할 시 문제되는 경우는 물적분할 이후 상장하거나, 다른 회사와 합병하는 경우다. 이 상황에서는 분할되는 사업부의 현금을 주식으로 바꾸는 것이기에 디스카운트가 발생한다. 그러나 물적분할 후 매각하는 것은, 현금을 현금으로 바꾸는 것이기에 적정가치로만 잘 팔면 디스카운트가 발생하지 않는다. 매출 순이익에는 영향이 있겠지만 확보한 현금으로 좋은 사업에 투자하면 된다. 물적분할 후 매각 방식은 한화가 처음인 듯하다”고 말했다.
앞서 (주)한화가 방산부문을 물적분할한 후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합병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시장에서는 예상 밖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물적분할 규제를 강화하는 분위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는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한국거래소·금융투자협회·자본시장연구원·한국기업지배구조원으로 구성된 태스크포스(TF) 팀을 꾸려 기업의 물적분할로 인한 모회사 주주 보호 방안을 논의 중이다. 법무부는 올해 하반기 안으로 기업이 물적분할할 경우 소액주주 보호 의무 규정을 담은 법 개정을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소액주주 측은 일단은 시장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한화 소액주주모임 대표는 “이번 개편은 (주)한화의 방산 부문과 한화정밀기계를 맞바꾼 것이다. 방산을 주고 한화정밀기계를 받으면서 2600억 원 정도를 받은 셈인데, 그게 충분한 것인지를 따져봐야 할 것 같다”며 “일단 시장 반응은 나쁘지 않은 듯하지만 한화건설의 경우 부채비율이 높은 점은 긍정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주)한화에 따르면, 지난해 (주)한화 방산부문 매출은 1조 6000억 원 정도다. 한화정밀기계의 지난해 매출은 약 5592억 원이다.
#지주사 전환 움직임, 3세 승계 본격화할까
(주)한화가 지주사 체제 전환으로의 신호탄을 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기존 한화그룹 지배구조를 보면 ‘(주)한화→한화건설→한화생명’이 한 줄기를 차지하고 있었다. (주)한화와 한화건설은 한화생명 지분을 각각 25.09%, 18.15% 보유하고 있다. (주)한화와 한화건설 합병으로 (주)한화는 한화생명 지분 43.24%를 갖게 된다. 한화생명이 (주)한화의 손자회사에서 자회사로 편입되면 지주비율이 높아진다.
현재 (주)한화의 지주비율은 지주회사 전환 요건인 50%에 채 못 미친다. 현행 ‘독점거래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자산총액이 5000억 원 이상이면서 자회사 주식가액 합계액이 자산총액의 50% 이상(지주비율 50% 요건)인 회사는 지주회사로 전환된다. 이 경우 2년 안에 전환을 완료해야 한다.
지주사 체제 전환 움직임은 장기적으로 오너 3세 승계를 위한 발판으로도 볼 수 있다. 지주사로 전환할 시 최대주주의 그룹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어서다. 현재 (주)한화의 최대주주는 지분 22.65%를 보유한 김승연 회장이다. 김승연 회장의 주식 가치는 지난 7월 28일 종가 기준 4337억 원 정도다.
다만 김승연 회장의 아들 삼형제는 (주)한화의 지분이 많지 않다. 김승연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한화솔루션 사장의 지분은 4.44%, 차남 김동원 한화생명 부사장과 삼남 김동선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상무의 지분은 각각 1.67%에 그친다.
3세 승계에는 한화에너지가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한화그룹의 지배구조에는 ‘삼형제→한화에너지→(주)한화’로 이뤄지는 축이 있다. 한화에너지는 (주)한화의 지분 9.70%를 들고 있고, 한화에너지의 지분은 김동관 사장(50%), 김동원 부사장(25%), 김동선 상무(25%) 삼형제가 100% 보유 중이다. 지난해 한화에너지는 한화에너지 지분 100%를 보유하던 모회사 에이치솔루션을 역흡수합병하면서, 에이치솔루션이 보유하던 (주)한화 지분 4.24%를 가져왔고 이후 (주)한화 지분을 계속 늘려왔다.
향후 장남인 김동관 한화솔루션 사장은 방산·우주·태양광 등 주력 사업을 맡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동관 사장은 한화그룹 태양광 사업을 전담하며 입지를 강화해왔다. 2020년부터는 (주)한화 전략부문장을 맡아 우주 사업 등 미래 사업을 이끌었다. 김동관 사장은 삼형제 중 유일하게 지난 3월 (주)한화 사내이사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차남 김동원 한화생명 부사장은 금융 부문을 담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남 김동선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상무는 레저‧설비‧건설 분야를 맡을 것으로 점쳐진다.
(주)한화 관계자는 “이번 사업 개편의 핵심은 방산 부문을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몰아 시너지를 내겠다는 것, (주)한화는 방산을 제외하는 대신 가치를 높이 평가받을 수 있는 에너지‧소재‧장비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라며 “지주사 검토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금리 인상으로 한화건설이 가진 한화생명 지분 가치가 많이 낮아지면서, 지주비율에 크게 영향이 있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김명선 기자 se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