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양가 4세 곳곳 편법 증여 의혹, 부영 이중근 88억 현금 매입…현정은 근저당, 신창재·김기병 가압류, 현재현 경매
북악산 숙정문에서 내려다본 성북동 330번지 일대는 고즈넉한 분위기다. 일요신문은 6월 10일 고급주택과 대사관저들이 둥지 틀고 있는 성북동 330번지 일대를 둘러봤다. 등산로처럼 경사가 가파른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반복됐다. 오가는 사람은 없었다. 평소에도 걸어 다니는 사람이 없는지 차도 옆 인도는 따로 없었다. 주택가 골목인데도 차들은 쌩쌩 달렸다. 자동차 엔진음 말고 들리는 소리는 없었다. 저택 대문을 열고 나오는 사람은 간혹 있었다. 쓰레기봉투를 내놓거나 차를 타기 위해서였다. 잠시 열린 대문 틈 사이로 집 안에 있는 거대한 미술품, 높게 자란 대나무 등이 얼핏 보였다.
일요신문은 부동산등기부를 통해 이 성북동 330번지 일대에 있는 653개 필지의 소유권 현황을 들여다봤다. 그 결과, 대저택들 소유권에 작지 않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확인했다. 호화주택을 잇달아 사들이며 영토를 확장하고 있는 재벌가들이 있다. 반면 금융기관에 담보로 저당잡힌 고급주택들도 있다. 가압류·경매 등으로 소유권이 제3자에게 넘어갈 위기에 처한 집도 여럿이다. 재벌 회장인데 전세살이 하는 경우도 눈에 띄었다. 도대체 성북동 330번지 일대에 사는 재벌들의 대저택 담장 안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삼양가 4세, 단독주택 3채 소유
삼양그룹 오너일가는 김연수 창업주 때부터 성북동과 인연을 이어왔다. 현재도 오너일가 4세들이 성북동 330번지에만 단독주택 3채를 갖고 있다. 이들은 1980~1990년대에 태어난 이른바 MZ세대다. 단독주택 3채 건물과 부지 가치를 합산한 개별주택 공시가격은 총 163억 9500만 원. 공시가격은 부동산 관련 세금의 기준으로 활용된다. 보통 시세보다는 낮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단독주택 시세 대비 공시가격 비율은 57.9%다. 따라서 삼양가 4세들이 소유한 단독주택 3채 시세는 대략 283억 원으로 추정된다.
삼양가 4세 김건호 휴비스 사장은 성북동 330-2XX 단독주택을 11억 5769만 9820원에 지난 1월 매입했다. 거래상대는 아버지 김윤 삼양홀딩스 회장이었다. 이 단독주택은 2019년 12월 18일 완공된 뒤 2년이 지난 올해 1월에서야 등기가 이뤄졌다. 김 사장의 거주 여부 또한 미스터리다. 김 사장이 대표이사로 있는 주식회사 우리 법인등기부에 따르면 김 사장은 이 단독주택에 2020년 1월 30일 이사했다. 완공 후 한 달여 만이다. 그런데 2021년 12월 30일 서울 용산구 유엔빌리지 고급빌라 상월대로 이사했다. 단독주택 등기 직전이다. 김 사장은 미등기 주택에 살다가 등기를 앞두고 다른 곳으로 이사한 셈이다.
김 사장이 성북동 330-2XX 단독주택을 취득한 과정은 다소 복잡하다. 김윤 회장은 330-2XX 지하 1층, 지상 1층 단독주택과 부지를 장남 김 사장과 차남 김남호 씨에게 2005년 5월 물려줬다. 당시 김 사장은 21세, 김남호 씨는 19세였다. 김 회장은 2018년 두 아들에게 물려준 땅에 기존 건물을 허물고 지하 1층, 지상 2층 단독주택을 새로 지었다. 공사가 진행 중이던 2019년 3월 김 사장은 동생 김남호 씨 토지 지분을 17억 9660만 2500원에 사들였다. 뒤이어 김 사장은 자신의 땅 위에 지어진 아버지 소유 새 단독주택도 매입했다. 거래가격이 건축비에도 미치지 못해 편법 증여 의혹이 제기됐다.
성북동 330-2XX는 김 사장의 할아버지 김상홍 삼양그룹 명예회장이 살았던 곳이다. 단독주택과 부지는 김상홍 명예회장이 아닌 장남 김윤 회장이 계속 소유했다. 김윤 회장은 1984년 3월 성북동 330-2XX 토지를 매입했다. 당시 나이는 31세. 이 땅에 김윤 회장은 1988년 10월 단독주택을 지었다. 2018년 허문 그 단독주택이다. 명의만 김윤 회장이었을 뿐 실소유주는 김상홍 명예회장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1999년 발간된 김상홍 명예회장 자서전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에도 이를 암시하는 대목이 있다.
자서전에서 김상홍 명예회장은 "내가 꼭 그렇게 하자고 한 게 아니고 상하(김상하 명예회장) 자신이 스스로 땅을 함께 사고 집도 순서대로 나란히 짓고 살아왔다"며 "내가 2층집을 지으면 이미 들어서 있던 뒷집의 일조권을 침범할 것 같아 단층으로 지었던 것이다"고 밝혔다. 김상하 명예회장은 김상홍 명예회장의 동생으로 성북동 330-2XX 바로 옆인 성북동 330-5XX에 살았다. 자서전에서 김상홍 명예회장은 "담장 하나 사이에 쪽문을 해놓고 수시로 오갈 수 있는, 요즘 말로 핫라인 아닌 핫 채널을 해놓고 산다"고 말했다.
김상하 명예회장이 살았던 성북동 330-5XX 단독주택 역시 김상하 명예회장이 아닌 장남 김원 삼양홀딩스 부회장 소유였다. 단독주택이 완공된 1989년부터 소유주가 김원 부회장이었다. 김원 부회장은 2005년 세 딸에게 단독주택을 물려줬다. 지분은 장녀 김남희 씨 20%, 차녀 김주희 씨 40%, 삼녀 김율희 씨 20%였다. 당시 나이는 각각 15세, 12세, 8세였다. 2021년 1월 김남희 씨는 동생 김주희 씨 지분 40%를 21억 1440만 원에 매입했다. 자매는 시세보다 낮은 가격으로 거래한 것으로 보인다. 거래가는 단독주택 전체 가격을 52억 8600만 원으로 평가한 셈이다. 2021년 성북동 330-5XX 개별주택 공시가격 56억 2500만 원보다 3억 3900만 원 낮다. 보통 시세가 공시가격보다 높은 점까지 감안하면 시세와의 차이는 더 클 것으로 보인다.
김윤 삼양홀딩스 회장 차남 김남호 씨는 성북동 330-2XX 단독주택을 소유 중이다. 형 김건호 사장 소유 단독주택에서 약 300m 떨어진 곳이다. 김남호 씨는 아버지 김윤 회장과 함께 2012년 9월 58억 원에 단독주택을 매입했다. 김남호 씨는 아버지 지분 50%도 2021년 12월 31억 2926만 720원에 샀다. 해당 거래 또한 헐값 매매 의혹이 짙다. 성북동 330-2XX 개별주택 공시지가는 2012년 17억 9000만 원에서 2021년 39억 1500만 원으로 118% 상승했다. 이에 비해 2021년 김윤 회장 부자가 평가한 단독주택 가치는 62억 5928만 1440원으로 같은 기간 8% 상승하는 데 그쳤다.
부동산 부자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도 성북동에 진출했다. 이 회장은 2021년 12월 성북동 330-3XX 단독주택과 부지를 88억 원에 매입했다. 792㎡(239평) 토지 위에 지하 1층, 지상 2층 연건평 757.86㎡(229평) 규모로 지어진 단독주택이다.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자택 바로 옆집이다. 부동산에 근저당권 등이 설정되지 않은 것을 보면 전액 현금 매입한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서울의 또 다른 부촌인 용산구 한남동에도 단독주택 3채를 갖고 있었다. 이 중 한 채는 2021년 4월 허물었다. 같은 자리에 신축 공사 허가는 아직 받지 않았다.
성북동 330번지에 전세를 사는 재벌도 있다. 임성욱 세원그룹 회장이다. 임 회장은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의 동생으로 재계에선 은둔의 경영자로 불린다. 임 회장은 삼양가 4세 김남호 씨 소유 성북동 330-2XX에 2013년 10월 근저당권을 설정했다가 2018년 9월 해지했다. 전세권 대신 근저당권을 설정한 것으로 보인다. 임 회장은 성북동 330-4XX 단독주택을 2017년 9월 65억 5000만 원에 매입했다. 이때 주소가 성북동 330-2XX로 적혀 있다. 임 회장은 성북동 330-2OO에 전세권, 성북동 330-2△△에 근저당권을 설정한 이력도 있다. 두 건의 근저당권과 한 건의 전세권에서 겹치는 기간은 없다. 위치도 모두 임 회장이 매입한 단독주택에서 도보로 3분 내 거리다. 또 다른 근저당권 역시 전세를 살면서 설정한 것으로 보인다.
임 회장이 성북동 단독주택을 사들인 뒤에도 다른 단독주택에 전세를 산 이유는 파악되지 않았다.
#풍파에 시달리는 성북동 재벌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집엔 60억 원에 육박하는 근저당권이 설정돼 있다. 현 회장의 저택은 성북동 330-1XX 등 세 필지(2041㎡·619평)에 있는 지하2층, 지상2층 규모 단독주택이다. 연건평은 2364㎡(716평)이다. 이 저택엔 정주영 현대가가 유서가 깊게 배어 있다. 이 저택의 세 필지 가운데 한 필지는 1977년 8월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이 매입했다. 나머지 두 필지는 같은 해 12월 정몽헌 회장 부모인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부인 변중석 씨가 각각 매입했다.
정몽헌 회장 필지(810㎡·246평)는 2003년 8월 그가 대북 송금 사건과 관련해 조사를 받던 중 사망한 후 부인 현정은 회장에게, 정주영 명예회장 필지(698㎡·212평)는 2001년 정몽헌 회장에게 상속됐다가 2003년 8월 현 회장에게 넘어갔다. 변중석 씨 필지(533㎡·162평)는 변 씨 사망 후인 2007년 8월 정영선 현대투자파트너스 이사에게 상속됐다. 정 이사는 정몽헌-현정은 부부의 2녀1남 중 장남이다.
부동산등기부에 따르면 하나은행 계동지점은 지난해 9월 현 회장에게 49억 9200만 원, 장남 정영선 이사에겐 9억 4900만 원 근저당권을 추가 설정했다. 두 사람에게 설정된 근저당 합계는 59억 4100만 원. 이에 대해 현대그룹 관계자는 "현정은 회장님의 성북동 부동산은 회사 자산이 아닌 개인 소유이기 때문에 회사 차원에서 대출 사유와 용처를 확인할 수 없다"고만 밝혔다.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의 성북동 저택(330-3XX)은 소송에 휘말려 가압류 당하는 수난을 겪고 있다. 신 회장은 2011년 6월 영국인이 소유한 지하 1층, 지상 2층 단독주택을 58억 원에 매입했다. 토지는 752㎡(228평), 연건평 624㎡(189평).
법원은 지난 1월 신 회장과 '풋옵션(조기상환청구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재무적 투자자(FI)인 어피너티(Affinity) 컨소시엄의 신청을 받아들여 신 회장의 성북동 자택을 가압류 결정했다. 어피너티 컨소시엄이 청구한 금액은 50억 원. 어피너티 컨소시엄은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 IMM PE, 베어링 PE, 싱가포르투자청 등으로 구성됐다. 2012년 대우인터내셔널이 교보생명 지분 24%를 매각할 때 신 회장이 우호지분으로 참여시킨 투자자다.
법원의 가압류 결정에 대해 어피너티 측은 "장래 채권에 대한 집행을 확보하기 위해 공탁된 배당금에 대해 가압류를 신청했으나 신창재 회장 측이 배당금을 인출해버려 가압류 절차가 진행되지 못해 부득이 부동산에 대해 신규 가압류를 신청했다"고 밝혔다. 어피너티 측은 신 회장이 풋옵션을 이행할 때까지 가압류를 해지하지 않을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교보생명 측은 "어피너티의 무리한 가압류는 국제상업회의소(ICC) 중재에서 사실상 완패하고 이후 국내 법원에서조차 그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별다른 대안이 없어지자 여론전에 활용하기 위한 흠집내기"라며 "가압류 신청 금액(50억 원)이 FI(어피너티) 측이 주장한 채권금액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고 실효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가압류를 반복하는 것은 교보생명의 기업공개(IPO)를 방해할 목적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
김기병 롯데관광개발 회장과 부인 신정희 동화면세점 사장이 소유한 성북동 저택(330-5XX)도 호텔신라에 2017년부터 가압류 당한 상태다. 이 집 토지(1184㎡·359평)는 고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 동생인 신정희 사장이 1989년 매입했다. 이듬해 1990년 남편 김기병 회장에게 지분 절반을 증여했다.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 단독주택(연건평 489㎡·148평)도 김기병-신정희 부부가 1993년부터 공동소유하고 있다.
이 고급주택 역사도 상처투성이다. 그동안 세무서에 압류 당하거나 금융사와 개인들에게 여러 차례 가압류 당했다. 2017년 3월부턴 호텔신라에 가압류 당한 처지다. 가압류 청구 금액은 25억 원. 부동산등기부에 따르면 2020년 1월 롯데관광개발은 서울보증보험으로부터 이 부동산과 다른 공동 담보물 등으로 800억 원을 빌렸다. 롯데관광개발은 1982년 롯데그룹에서 계열 분리한 기업. 계열사로 동화면세점을 두고 있다.
호텔신라가 김 회장 부부 집을 가압류한 건 법적 다툼에서 비롯됐다. 동화면세점 최대주주였던 김 회장은 2013년 롯데관광개발의 용산역 개발사업이 실패로 돌아가자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이에 동화면세점 지분 19.9%를 호텔신라에 600억 원에 넘겼다. 당시 호텔신라는 3년이 지나면 지분을 되팔 수 있는 권리를 확보했다. 또한 김 회장은 채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지분 30.2%를 추가로 호텔신라에 넘기겠다고 했다.
하지만 김 회장은 3년 뒤 600억 원을 갚지 못했다. 과도한 경쟁으로 면세시장 수익성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에 호텔신라는 김 회장에게 지분을 되사가라고 했다. 그런데 김 회장은 되레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하며 지분 30.2%를 넘기겠다고 했다. 호텔신라는 이를 거부했다. 그러면서 2017년 4월부터 지루한 소송전이 벌어졌다. 대법원은 지난 3월 소송 5년 만에 호텔신라 손을 들어줬다. 김 회장은 호텔신라에 동화면세점 지분이 아닌 현금으로 빚을 갚아야 한다. 업계에선 호텔신라가 김 회장에게 빌려준 600억 원에 이자 등을 합해 800억 원 정도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현 전 동양그룹 회장 집은 경매에서 낙찰돼 새 주인을 맞게 됐다. 현재현 전 동양그룹 회장 저택(330-3XX)은 토지 1478㎡(448평)에 연건평 1453㎡(440평) 지하 2층, 지상 3층 고급주택. 토지는 현 전 회장이 1995년 7월 매입했고 주택은 현 전 회장과 부인 이혜경 전 부회장이 공동명의로 지분 절반씩을 갖고 있었다.
이 집의 시련은 2013년 시작됐다. 당시 동양그룹은 부도 위험성을 숨기고 동양증권을 내세워 1조 3000억 원대의 기업어음(CP)과 회사채를 발행했다. 이게 화근이 돼 일반 투자자 4만여 명이 피해를 본 동양그룹 사태가 터졌다. 그러면서 성북동 저택도 직격탄을 맞았다. 그해 10월 서울동부지방법원은 이 집을 가압류했다. 채권자인 수협중앙회가 44억 원을 청구했기 때문이다. 일시적으로 가압류가 해제되긴 했지만 이후에도 NH농협은행, 대한주택보증, 동양파이낸셜대부, 동양시멘트 등이 잇따라 가압류를 신청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이 주택에 걸린 압류와 가압류 등으로 등기부상 채권총액은 2821억 원에 달했다.
급기야 법원은 2016년 9월 동양그룹 채권자들이 낸 개인파산 신청을 받아들여 현 전 회장에게 파산을 선고했다. 성북동 집은 지난해 4월 법원 경매에 넘어가고 말았다. 지난 5월 3일 서울북부지법은 이 집에 대한 경매를 진행했다. 최초 감정가는 126억 8709만 7200원에 책정됐다. 2차 매각기일은 6월 7일로 잡혔고 입찰 최저가는 최초 감정가보다 20% 낮아진 101억 4967만 8000원이었다. 대법원에 따르면 6월 7일 이 집은 최 아무개 씨에게 105억 3200만 원에 최종 낙찰됐다.
집주인 운명도 쇠락의 길을 걸었다. 현 전 회장은 2015년 대법원에서 징역 7년이 확정돼 지난해 1월 만기 출소했다. 대법원은 동양그룹 사태 후 법원 강제집행을 피하려고 미술품을 빼돌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혜경 전 부회장에 대해 지난해 9월 말 징역 2년을 확정했다. 현 전 회장은 현재 지인의 집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지영 기자 young@ilyo.co.kr
남경식 기자 ng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