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키려는 자’ 이준석 ‘도전하는 자’ 이재명 각각 친윤·친문과 갈등…나란히 ‘과거’ 리스크 “그래도 이 의원엔 개딸이…”
집권여당 수장 이준석 대표는 지방선거가 끝난 직후 후 ‘혁신위원회’를 꾸렸다.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 감사원장 출신 최재형 의원이 맡았다. 최재형 위원장은 혁신위가 ‘시스템 공천’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했다. 2024년 치러질 총선을 대비해 기존 공천 룰을 손보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그러자 당의 주류 세력인 친윤 진영이 발끈하고 나섰다. 친윤계를 견제하려는 이 대표의 노림수가 담겨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선 윤석열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친윤 진영이 다음 총선 공천을 통해 당을 장악하려는 구상을 할 것으로 관측한다. 하지만 이 대표와 혁신위가 내세운 ‘시스템 공천’을 도입하면 외부 영향력이 개입될 여지는 크게 낮아진다.
친윤계 한 초선 의원은 “이 대표 임기는 1년 후면 끝난다. 총선과 이 대표는 무관하다. 새로운 대표 체제에서 공천 룰을 다뤄야 한다”면서 “본인(이 대표)이 공천을 못 받을까 두려워 혁신위를 만들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고 했다. 또 다른 친윤 의원도 “임기 초반 정부에 힘을 실어줘야 할 여당 대표가 왜 역린을 건드려 사달을 일으키는지 모르겠다”고 불평했다.
정가에선 이 대표의 혁신위 출범을 두고 존재감 과시 차원으로 해석한다. 친윤계가 조기 전대 시나리오를 흘리는 등 노골적으로 ‘이준석 흔들기’에 나서자 공천 룰 개정 카드를 꺼냈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이준석 대표 측 관계자는 “선거를 앞에 두고 공천 룰을 바꾸면 더 시끄럽다. 지금이 적기”라면서 “시스템 공천에 반대하는 것은, 그렇다면 밀실에서 하겠다는 뜻이냐”고 물었다.
6·1 재보궐 선거를 통해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한 이재명 의원도 민주당 주류인 친문계와의 일전에 뛰어 들었다. 친명계를 신주류로 보는 시각도 있긴 하지만 여전히 친문에 비해 수적으로 열세라는 게 중론이다. 대선에 출마했던 후보이자 당내 간판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의원의 8월 전당대회 출마를 두고 뜨거운 논란이 벌어지는 것도 이 지점에서 비롯된다.
친명 진영은 이 의원이 당권을 잡으면 향후 총선 공천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고 본다. 당의 지형을 바꾸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이 8월 전대인 셈이다. 친문계가 ‘반이재명 연대’까지 모색하며 이 의원 출마를 비판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현재 친문계는 당권 확보를 위해 용퇴론에 휩싸인 86그룹, 대안으로 떠오른 97그룹 등과 손을 잡는 시나리오를 그리는 것으로 전해진다.
친문계가 이 의원 전대 출마에 반대하는 명분은 ‘선거 패배 책임론’이다. 대선 후보로 나와 정권을 내줬고, 총괄선대위원장으로선 지방선거에 패했으니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2선 후퇴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 쇄신을 위해선 이 의원의 ‘강성 팬덤’과 거리를 둬야 한다는 목소리도 봇물을 이룬다. 이에 대해 이 의원 최측근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정권을 내주고, 당이 분란에 빠진 게 누구 때문인데…. 적반하장이다. 친문은 이제 더 이상 주류가 아니다. 친문은 이미 평가가 끝난 세력이다. 당원들과 국민이 왜 대선 후보로 친문이 아닌 이재명을 택했을까. 민주당도 변해야 한다는 메시지다. 이재명이 아니었다면 대선 때의 득표율, 경기지사 승리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재명이니까 그거라도 나온 것이다. 계양을 출마를 두고는 아쉬운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 의원이 원내에서 개혁의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선 긍정적이다.”
이처럼 이준석 대표와 이재명 의원은 당 주류와 대척점에 섰다. 여기엔 복잡한 정치 셈법이 작용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뿌리 깊은 ‘불신’이 원인으로 분석된다. 겉으론 당권을 둘러싼 충돌이지만 그 밑바탕엔 이 대표와 이 의원을 믿지 못하는 양당 주류 세력의 심리가 깔려있다는 뜻이다. 대선과 지방선거라는 큰 선거 때문에 전략적 동거에 응했던 당 주류가 2024년 총선 공천을 대비해 ‘본색’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이준석 대표는 대선 경선 때 유승민 전 의원 지지설에 휩싸인 적이 있다. 그는 ‘당무 보이콧’으로 윤석열 당시 후보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당시 친윤 진영에선 “이 대표를 손절하자”는 목소리가 팽배했었다. 실제 ‘이준석 패싱’ 논란은 대선 기간 내내 뜨거운 감자였다. 대선 후 지방선거 때도 공천 및 선거 유세 등을 놓고 이른바 ‘윤핵관’과 이 대표는 논쟁을 벌였다. 최근엔 ‘친윤’ 정진석 국회부의장과 이 대표 사이에 장외 설전이 오가기도 했다.
친문계가 이재명 의원을 ‘믿기 어려운 사람’으로 여긴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2017년 대선 경선, 2018년 경기지사 경선 때 이 의원은 친문의 핵심인 ‘문재인·전해철’과 맞붙었다. 지난 대선 기간 친문계는 이낙연 전 대표를 밀었다. 이 의원이 경선에서 이겼지만 “차라리 국민의힘을 밀겠다”는 친문 인사들이 적지 않았다. 지방선거 후 불거진 ‘이재명 책임론’을 이끄는 것도 NY(이낙연)계다. 그만큼 친문과 이 의원 간 앙금이 깊다는 얘기다.
이런 가운데 이 대표와 이 의원은 나란히 ‘과거’에 발목이 잡혔다. 이는 주류 세력과의 싸움에서 아킬레스건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 대표는 2013년 성상납을 받았다는 의혹과 함께 이런 의혹이 대선 기간 불거지자 증거를 인멸하려 했다는 내용으로 지난 4월 당 윤리위원회(위원장 이양수)에 회부됐다. 선거를 이유로 미뤄왔던 이 대표 징계 절차는 최근 급물살을 타는 모양새다.
친윤계는 혐의는 차치하고 ‘품위 손상’ 등으로 징계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실제 일부 친윤 관계자들이 징계 논의를 주도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이 당 안팎에서 파다하다. 또한 이 대표의 또 다른 비위들을 확보한 상태라는 얘기도 뒤를 잇는다. 이 대표와 비윤 진영에선 “선거를 승리로 이끈 당 대표를 확실한 증거 없이 징계하는 것은 안 된다”고 응수하는 상황이다.
이재명 의원도 곤혹스러운 상황인 것은 마찬가지다. 선거패배 책임론에 대응하기도 벅찬 상황에서 수사기관 칼날이 옥죄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의 대장동 수사, 경찰의 경기도 법인카드 유용 의혹 수사 등이다. 이 의원은 ‘정치보복’이라며 강하게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정작 친문계에선 온도차가 확연하다. 오히려 ‘원칙’을 내세우는 이들이 더 많아 보인다.
한 친문 재선 의원은 “이 의원이 재보선에 출마할 때부터 수사를 염두에 둔 ‘방탄용’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이게 부메랑이 될 수 있다. 이 의원은 수사를 적극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다. 차라리 2선으로 물러난 상태였다면 당 차원에서 대응을 할 수 있었을 텐데…”라면서 “이재명을 감싸다 민주당이 나락으로 갈 수 있다는 게 친문계 기류”라고 전했다. ‘이재명 지키기’를 놓고도 친문과 친명 간 싸움이 벌어질 수 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그렇다고 이 대표와 이 의원이 마냥 궁지에 몰린 것만은 아니다. 이 대표는 임기가 내년 6월까지다. 윤리위 징계는 경고, 당원권 정지, 탈당 권고, 제명 4단계다. 당원권 정지 이상일 경우 대표직을 유지할 수 없다. 정치권에선 징계가 이뤄지더라도 가장 낮은 수준의 경고가 유력하다는 관측이다. 물론 이 경우에도 도덕적 타격은 입겠지만 임기를 지키는 데는 무리가 없다. 이 대표로선 남은 임기 동안 얼마든지 재신임을 노려볼 수 있다.
더군다나 당 내에선 이 대표에 대한 동정론도 만만치 않다. 국민의힘에 등을 돌렸던 2030 지지층을 끌어 모으고, 호남지역 공략에 대한 공을 인정해야 한다는 여론도 높다. 윤 대통령 초반 국정평가가 과반을 밑도는 점, 현재 거론되는 차기 주자들이 모두 비윤 정치인이라는 점도 이 대표에겐 플러스 요소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조그만 흠결을 가지고 보수 진영의 소중한 자산인 이 대표를 몰아낸다면 큰 역풍이 불 수 있다. 젊은 지지층이 모두 떠날 것이다. 우리가 언제 젊은층의 팬덤을 가져봤느냐. 지금은 조기 전대 운운하며 싸울 때가 아니라 힘을 합칠 때”라고 경고했다. 앞서의 이 대표 측 관계자도 “박근혜 이후 전국단위 선거를 이렇게 연이어 승리로 이끈 지도자가 있었느냐. 이 대표를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이 대표보단 사정이 낫다. 대선 기간 형성된 당내 세력이 탄탄하고, ‘개딸(개혁의딸)’로 대표되는 팬덤 지지층이 두텁기 때문이다. 팬덤은 ‘양날의 검’이란 지적도 있지만 초선으로 당 대표에 도전하는 이 의원에게 든든한 우군임에 분명하다. 이재명계 한 의원은 “노사모, 박사모 등도 상대 진영이 봤을 땐 과격하고 맹목적이라며 비판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그들은 노무현 박근혜 정치 인생을 뒷받침하는 세력이었다. 팬덤이 없었다면 대통령이 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대선 때 윤석열 대통령과 접전을 벌이며 역대 민주당 후보 중 최다 득표를 했다는 것도 이 의원의 ‘무기’다. 이른바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에 대한 쓴소리도 많이 나오지만 현재 민주당에서 이 의원을 대신할 구심점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정치권 관계자들이 민주당 내홍에서 친명계 승리를 점치는 이유도 ‘이재명’이라는 확실한 차기 주자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친문계 비토, 검·경 수사 등 장애물을 뚫고 가기 위한 이재명 의원의 확실한 ‘명분’이기도 하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