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대선 이어 다시 반명 연합군 태동…‘20만 개딸’ 차기 당권 최대 변수 부상
그야말로 사생결단 싸움이다. 주도권을 실기하는 쪽은 퇴로가 없다. 최악 땐 분당 국면으로 치닫는다. 야권발 차기 당권 투쟁에 참전한 친명(친이재명)계와 친문(친문재인)계 얘기다. 6·1 지방선거 패배로 당내 갈등은 임계점에 도달했다. 특히 친명에 맞선 계파 전쟁엔 친문 직계는 물론, NY(이낙연)계, SK(정세균)계 인사들까지 뛰어들었다. 지난 3·9 대선에 이은 두 번째 ‘반명(반이재명) 연합군’이 태동한 셈이다. 그 중심엔 NY가 있다. 야권 계파 전쟁이 명낙 대리전으로 불리는 이유다. 이들 승부의 첫 가늠자는 전당대회를 둘러싼 ‘룰의 전쟁’이 될 전망이다.
‘선 넘은 극한 대치….’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야권의 현주소다. 반명 연합군은 연일 ‘이재명 책임론’을 제기한다. 친명계는 대대적인 반격에 나선다. 이를 중재할 당내 구심점은 없다.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사는 극한의 대결이다. 양측 갈등의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것은 NY계의 ‘이재명 죽이기’다.
지난 대선 당시에도 당 안팎에선 NY계가 대장동 개발특혜 의혹 제기의 배후가 아니냐는 음모론이 흘러나왔다. 대장동 의혹은 이재명 사법 리스크의 핵심이다. 민주당 신구 권력암투가 이명박(MB) 전 대통령 측과 박근혜 전 대통령 측이 치고받은 ‘최태민·최순실 의혹’과 ‘BBK·다스’ 의혹을 연상케 한다는 분석까지 제기됐다. 향후 갈등 확전 여부에 따라 친명계와 친문계가 루비콘 강을 건널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선방은 벌떼 공격을 불사한 반명 연합군이 날렸다. 미국으로 출국한 이낙연 전 대표를 비롯한 친문계와 SK계 인사들은 연일 친명계를 저격했다. 이낙연 전 대표는 지방선거 직후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이재명(인천 계양을 보궐선거)·송영길(서울시장 후보)의 기이한 출마가 대선 패배의 연장전을 만들었다”고 직격했다. 공천 나눠먹기를 한 이재명·송영길 연대가 지방선거 패배의 단초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이어 이 전 대표는 “민주당은 패배를 인정하는 대신에 ‘졌지만 잘 싸웠다’고 자찬하며 패인 평가를 밀쳐두었다”며 “민주당은 그 짓을 계속했다. 그러니 국민의 인내가 한계를 넘게 됐다”고 했다. 이 전 대표는 당 안팎에서 제기된 조기 등판론을 뒤로하고 6월 7일 출국길에 올랐다. 다만 당 내홍에 따라 친문 간판격인 이 전 대표가 조기 귀국을 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도발 수위를 높인 것은 이 전 대표뿐만이 아니다. 차기 당권 주자이자, 친문계 핵심인 홍영표 민주당 의원은 6월 8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 이재명 의원을 향해 “당이 원해서 희생하기 위해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에) 나왔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때렸다. 친문계 인사들에 따르면 민주당 인천시당 소속 10명 의원 가운데 ‘이재명 출마’를 원한 인사는 과반도 안 됐다. 이재명 의원 보궐선거 출마 성명서엔 4명만 참여했다. 적어도 이재명 출마와 관련해선 ‘6 대 4’로 반대가 많았다는 얘기다.
친문계 인사들은 당 산하 전략공천위에서 컷오프(경선 탈락)된 ‘송영길 서울시장 공천’이 하룻저녁 사이 뒤집힌 과정을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영길 서울시장 공천에 ‘보이지 않는 검은 손’이 작동했다는 의미다. 친문계 인사들은 “이재명 의원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았겠냐”고 했다. 박지현 카드 논란도 공론화됐다. SK계 핵심인 이원욱 의원은 ‘박지현 카드’를 거론, “(그를)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맡긴 사람은 이재명 의원님(당시 상임고문)이셨습니다”라고 쓴소리를 던졌다.
관전 포인트는 야권발 계파 갈등이 미치는 파장이다. 친명·친문 갈등이 감정싸움으로 격화되자, “출구가 없다”는 비관론이 당 안팎을 감쌌다. 최악 땐 보수진영의 ‘친이(친이명박) vs 친박(친박근혜)’ 갈등에 버금가는 치킨게임으로 흐를 것이란 우려마저 나왔다. ‘계파 갈등 확전→공천 살생부 등장→분당·탈당’ 등의 악순환이다. 2016년 총선을 앞두고 단행된 야권발 정계개편 종착지도 분당이었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은 친문계의 민주당과 호남계의 국민의당으로 분파됐다.
과거 친이·친박 갈등도 이 악순환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명박(MB) 정부 출범 직후인 2008년 총선 당시 정치권은 ‘친박계 공천 살생부’로 몸살을 앓았다. 이 명단에 들어간 김기춘 이경재 이규택 한선교 등을 비롯한 35명의 친박계 가운데 29명이 공천에서 탈락했다. ‘선거의 여왕’으로 불렸던 박근혜 전 대통령(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고 한 것도 이때다. 당시 낙천된 친박 인사들은 친박연대와 친박무소속연대를 만들어 자객 공천을 스스로 단행했다.
친이계의 ‘친박계 죽이기’는 4년 뒤인 2012년 총선 직전 공수만 교대한 채, 친박계의 ‘비박(비박근혜)계 죽이기’로 이어졌다. MB 정부 말기인 2012년 총선 땐 비박계 38명의 실명을 담은 ‘살생부 지라시’가 여의도를 덮쳤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사이가 틀어진 김무성 전 의원을 비롯해 강승규 신지호 안경률 진수희 전 의원 등이 살생부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살생부 명단자 중 23명이 낙천됐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과 친박계 이한구 의원 등 소수만 공천 심사 막판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보수진영 한 관계자는 “계파 갈등 이면에 깔린 핵심은 공천권 문제”라며 “이 생리는 보수든 진보든 크게 다르지 않다”고 했다. 민주당 내부 권력투쟁이 오는 2024년 총선 공천권을 둘러싼 갈등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친명 vs 친문’의 극한 대치는 필연적이라는 뜻이다.
친문계에 연일 직격 당한 친명계는 부글부글 끓었다. 검찰개혁 강경파가 주축이 된 ‘처럼회’ 소속 김남국 의원은 지방선거 참패 이틀 뒤인 6월 3일에 열린 당무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 직후 "잘 짜인 드라마의 각본을 본 것 같았다"며 '이재명 죽이기 기획설'을 꺼냈다. 친명계인 현근택 전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도 친문계를 향해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하는 말과 같은 말을 하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하나"라며 '수박(겉과 속이 다른 지지층 혹은 정치인)' 논쟁을 일으켰다.
친명·친문 간 감정싸움은 팬덤정치로 불똥이 튀었다. 이재명 의원의 2030 여성 지지층을 뜻하는 이른바 ‘개딸(개혁의 딸)’의 표적 놀이가 대표적이다. 개딸들은 이재명 책임론을 공개적으로 거론한 친문계 홍영표·전해철 의원 등을 타깃으로 삼았다. 홍 의원 지역 사무실엔 “치매냐”라는 대자보를 붙였다. 전해철 의원을 비롯한 친문계 의원실 보좌진들은 “항의성 전화로 업무를 볼 수 없을 정도”라고 했다. 친명계 일각에선 친문계의 이재명 죽이기가 노골화될 경우 서울 여의도에 ‘개딸 10만 집회’를 여는 방안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개딸의 총공세는 민주당 전당대회 룰 갈등으로 확전됐다. 친명계의 요구사항은 ‘권리당원 비율 확대’와 ‘3·9 대선 후 입당’한 당원들에 대한 투표권 부여다. 민주당 현행 전당대회 룰은 ‘대의원 45%, 권리당원 40%, 일반국민 여론조사 10%와 일반당원 5%’인데, 이 중 대의원은 20%로 하향 조정하고 권리당원은 45% 상향 조정하는 게 핵심이다. 전당대회 투표권 부여 기준도 절반(현행 6개월 이상 당비 납부)으로 깎자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대선 전후 민주당에 신규 입당한 이들 수는 20만 명에 달한다. 이 중 상당수가 개딸인 것으로 추정된다. 20만 명의 개딸이 민주당 차기 당권의 최대 변수로 부상한 셈이다.
이쯤 되면 ‘7년 전 데자뷔’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새정치민주연합 당권에 도전한 2015년 전후 친문 성향 지지층들은 ‘문재인 지킴이’를 자임, 당에 대거 합류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온라인 당원 가입 제도에 힘입어 10만 명 정도의 당원이 이때 입당했다”고 했다. 민주당의 친문 색채가 짙어진 것도 이쯤이다. 10만 명의 문파는 그 이후 7년간 민주당 전당대회 판세를 좌지우지했다. 문파 눈 밖에 나면 어김없이 당내 경선에서 탈락했다. 일각에선 친노·친문이 스스로 만든 ‘온라인 당원 입당’에 발목을 잡혔다는 분석도 나온다.
야권발 계파 갈등의 최대 화약고는 이재명 의원 등판 여부가 될 것으로 보인다. 6월 7일 국회에 처음 출근한 이 의원은 차기 전당대회 출마 여부에 대해 “시간이 많이 남아 있어서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확답을 피했다. 겉으론 신중 모드지만, 이 의원이 출마 여지를 남겨놓음에 따라 사실상 등판을 위한 명분 쌓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이 의원이 당내 갈등에 대해 “결국 국민들이 정치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며 “국민과 당원의 뜻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당 복수의 관계자들은 “이 의원이 출마 의지를 가진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그러자 친문계 인사들은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와 배우자 법인카드 유용 의혹 등 ‘이재명 사법 리스크’를 거론, “이재명호가 출범하면 당 혁신은 물 건너갈 것”이라며 이재명 불가론을 설파하고 있다. 친명계 한 인사는 “이재명 사법 리스크는 출마 자체를 봉쇄하려는 일종의 ‘블러핑(상대를 기권하게 할 목적으로 하는 베팅)’에 불과하다”고 평가 절하했다. 7년 전 진보진영을 두 동강 낸 ‘데자뷔’는 다시 민주당 쪽으로 다가서기 시작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