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대통령실 요직에 검찰 출신 ‘윤 사단’ 줄줄이…비판론에도 “필요하면 또 해야” 민심 이반 우려
#소통 점수 다 까먹나
청와대를 나와 용산 국방부 청사로 옮겨온 윤 대통령은 출근길에 ‘도어스테핑(약식 회견)’이라 불리는 일문일답을 출입기자들과 시작하면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외부 일정이 없는 날은 거의 매일 하고 있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대통령 얼굴 보기가 어려웠던 과거 정권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면서 소통 대통령 이미지를 심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최근 윤 대통령 인사 방식은 소통 과정에서 쌓아놓은 점수를 다 까먹고 있다는 지적이다. 잘한 것은 모두 덮이고 있고, ‘검찰만 기용하고 있다’는 격렬한 비난 여론에 휩싸이고 있는 것이다.
정부 쪽을 보면 권영세 통일부 장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이 검찰 출신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이완규 법제처장, 박성근 국무총리실 비서실장, 이노공 법무부 차관, 조상준 국가정보원 기조실장이 있다. 이복현 서울북부지검 형사2부장을 금융감독원장에 발탁한 게 하이라이트다. 그는 검찰 출신으로서 처음 금감원장에 임명됐다.
대통령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법률비서관에 주진우 전 검사, 공직기강비서관에는 이시원 전 검사, 대통령실 살림살이를 총괄하는 총무비서관은 윤재순 전 대검 운영지원과장이 맡았다. 부속실장은 강의구 전 검찰총장 비서관, 인사기획관은 복두규 전 대검 사무국장, 인사비서관은 이원모 전 검사다. 청와대 핵심 포스트에 검찰 출신들이 배치된 셈이다.
당 내분으로 수세에 몰렸던 거대 야당 민주당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대대적 공세를 펴고 있다. 박홍근 민주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6월 9일 국회 정책조정회의에서 윤 대통령을 겨냥, “검찰 출신 측근만이 능력이 있다는 윤 대통령의 인식은 오만과 아집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정치권에서는 “검찰 출신이 능력이 있다면 써도 좋지만 윤 대통령과의 개인적 인연, 이른바 ‘윤석열 사단’이라는 이유로 인선되는 것은 문제가 아니냐”는 견해가 주를 이룬다. 한동훈 장관, 이복현 금감원장, 주진우 비서관 등은 대표적인 ‘윤석열 사단’으로 꼽힌다. 이노공 차관과 공정거래위원장으로 거론되는 강수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윤 대통령과 함께 성남지청 근무 당시 카풀을 한 멤버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조상준 국정원 기조실장은 윤 대통령의 검찰라인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사람인데 그가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 사건’ 관련 수사를 받는 김건희 여사 변호인으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걱정을 낳았다. 검찰 출신의 전직 국민의힘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윤 대통령이 검찰 재직 시절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을 할 만큼 중립적 수사를 했지만 윤 대통령도 사람인 이상 특수부 출신 등 특정 후배들을 인사에서 잘 챙겼다는 말은 있었다. 검찰 조직과 국가 조직은 규모나 운영 방식이 완전히 다른데 인사 방식을 검찰 때와 유사하게 한다면 정치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검찰 쏠림 인사를 놓고 국민의힘 내부에서의 공개 비판이 나오는 상황이다. 하태경 의원은 6월 6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 “모든 대통령이 다 그렇다. 철저하게 강하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중심에 쓸 수밖에 없는 심리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좀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즉각적 해명도 여론을 더욱 나쁘게 만들었다. 윤 대통령은 6월 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의 인재풀이 너무 좁은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다’는 질문을 받자 “과거에 민변 출신들이 아주 도배를 하지 않았나”라고 답했다. 이 발언이 알려지자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지 못하는 권위주의적 태도라는 비판이 언론에서 꼬리를 물었다. 정가에선 “문재인 정부와 비교하려면 뭣 하러 정권교체를 한 것이냐”라는 말도 뒤를 이었다.
#좋은걸 어떡하나
인사를 보면 윤석열 대통령 스타일을 정확하게 알 수 있다는 분석이 정치권에서 나온다.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면 숨기거나 머뭇거리지 말고 바로 진행해야 하고, 좋은 사람이라면 무리한 인사라는 비판이 나오더라도 눈치 보지 않고 적재적소에 써야 한다는 게 ‘윤석열식 인사’라는 것이다.
이런 연장선에서 정치권은 6월 7일의 대통령실 이벤트를 주목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서울 종로의 한 식당에서 대통령실 참모진과 피자로 ‘번개 오찬’을 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이 종로에서 목격됐다는데 무슨 일이냐고 여기저기서 기자들 질문이 들어와서 알아보니 점심 때 종로에 있는 피자 가게에서 식사를 했다”며 “오늘이 최상목 경제수석 생일이었다”고 말했다. 이날 식사에는 생일을 맞아 오찬의 주인공이 된 최 수석, 그리고 김대기 비서실장, 김용현 경호처장이 함께했다.
대통령실 출입기자들 사이에서는 “밖으로 알려질 것을 알고 대통령실이 준비한 사실상의 공개 이벤트”라는 말이 나왔다. 이날 행보가 소통 대통령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해석도 있었지만 현 정부에서 최 수석 위치를 보여준 것이라는 보다 내밀한 말도 나왔다. 윤 대통령이 생일을 챙겨줄 만큼 최 수석에 대한 윤 대통령의 신임이 몹시 두텁다는 것이다.
최 수석은 윤 대통령과 같은 서울 출신으로 서울대 법대 직계 후배다. 최 수석은 1982년 입학했고 윤 대통령은 1979년에 대학에 들어갔다. 최 수석은 서울대 재학 중이던 1985년 제29회 행정고시에 합격했고, 경제관료로 탄탄대로를 달려 기획재정부 핵심 요직을 거쳤다. 그러나 그는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으로서 재직한 경력이 낙인이 돼 문재인 정부에서 사실상 야인 생활을 했다. 그러다가 윤석열 대통령직 인수위의 경제1분과 간사로서 부활한 뒤 윤 대통령 핵심 참모가 됐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지금 경제가 비상 상황이라 노고를 치하하는 차원에서 대통령실 경제수석의 생일을 챙겨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대통령이 향후 모든 대통령실 참모들의 생일을 챙겨주지는 못할 것”이라며 “이것만 봐도 윤 대통령은 마음에 들고, 성과를 내면 누가 뭐라고 하건 밖으로 표시를 내는 스타일이다. 피자 오찬을 보든, 대통령의 인사를 보든 윤 대통령의 그런 스타일이 느껴진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한미정상회담에서 미국이 반도체 등 우리 경제력을 높이 평가, 이를 동맹에서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고 이 과정에서 최 수석 등 우리 측 경제 라인의 공을 높이 산 것으로 알려졌다.
#직진만 하다간…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검찰 쏠림 인사와 관련, 윤 대통령을 향해 원격 제동장치를 적극 가동하는 분위기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6월 9일 아침부터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가 “윤석열 대통령이 아마 당분간은, 다음 인사 때까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더 이상 검사 출신을 기용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날 인터뷰에서 “어제 제가 (윤 대통령과) 통화해서 ‘더 이상 검사 출신을 쓸 자원이 있느냐’고 하니 (윤 대통령이) ‘없다’고 말했다”며 이같이 통화 내용을 소개했다.
권 원내대표는 인터뷰에서 정부 요직에 검찰 출신 인사들이 지나치게 많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충분히 그런 비판이 가능하다”고도 인정했다. 이처럼 권 원내대표가 적극 진화에 나섰지만 이내 판이 뒤집어졌다. 윤 대통령이 권 원내대표 발언과 결이 완전히 다른 상반된 얘기를 하면서다.
윤 대통령은 6월 9일 대통령실 청사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에게 검찰 출신을 더 기용하지 않겠다고 했느냐’는 질문에 “글쎄 뭐, 필요하면 또 해야죠”라고 언급, 검찰 쏠림 인사 비판에 대해 정면 돌파 입장을 분명히 했다. 검찰 출신이라는 이유로 일부러 배제하지는 않겠다는 의미다.
윤 대통령은 추가적 작심 발언도 했다. 그는 “다 법률가들이 가야 하는 자리이고, 과거 정권에서도 전례에 따라 법률가들이 갈 만한 자리에 대해서만 (검사 출신을) 배치했고 필요하면 (추가 발탁을) 해야죠”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인사 비판에 대해 강하게 반박하기도 했다. 그는 “그런데 무슨 권영세(통일부 장관), 원희룡(국토부 장관), 박민식(국가보훈처장)같이 검사 그만둔 지 20년이 다 되고 국회의원 3선, 4선하고 도지사까지 하신 분들을 검사 출신이라고 얘기하는 건 좀 어폐가 있지 않나”라고 발언, 비판 자체가 과도하다는 인식도 드러냈다.
‘검찰 편중 인사’ 논란이 이어지고 대통령과 여당 원내대표와의 온도차까지 드러나면서 여론이 악화하자 대통령실 관계자들은 연일 해명하느라 진땀을 빼는 모습이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여론이나 야당 반응을 살펴 정무적으로 대응해야 하는데 윤 대통령에겐 이런 부분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비판이 높다. 소통 행보를 위해 만들어놓은 약식 회견 역시 나쁜 여론의 경로를 더욱 강화시키는 기폭제가 되고 있다는 걱정도 대통령실은 물론, 여당 안팎을 휘감고 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