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의존도 높아 글로벌 경기에 민감…배당 강화 등 주주친화 정책 통해 투자매력도 높여야
최근 한 달 사이 코스피는 9% 이상, 코스닥은 12% 이상 하락했다. 반면 중국 심천지수는 같은 기간 8.8% 올랐고, 대만은 –4.8%, 일본은 –2.2%로 한국에 비해 하락폭이 덜했다. 지난 22일 코스피지수는 전일 대비 66.12포인트(2.74%) 내린 2342.81에 장을 마감했다. 지난 20일(2391.03) 이후 코스피지수가 또 한 번 2400선 아래로 거래를 마치며 암울한 증시 상황을 실감하게 했다. 코스닥지수도 전날 대비 31.34포인트(4.03%) 급락해 746.96에 마감했다. 이는 2020년 7월 2일 종가 742.55 이후 가장 낮았다.
올해 초만 해도 최고 2989.24를 기록했던 코스피는 현재 연저점을 찍으며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21일 각국 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초와 비교해 20일 기준 홍콩 항셍은 -9.07%, 중국 상하이종합은 -8.72%, 일본 닛케이225는 -12.05%의 하락률을 보였다. 반면 올해 코스피의 하락률은 –20.00%, 코스닥 –25.05%로 아시아 주요 국가들과 비교해 2배 이상 떨어졌다.
상대적으로 우리나라 증시만 유독 하락폭이 큰 이유는 무엇일까. 업계 관계자들은 우리나라의 높은 무역 의존도로 인해 세계 경제 상황에 영향을 많이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광남 미래에셋증권 디지털리서치 팀장은 “우리나라는 무역 의존도가 굉장히 높은 국가로 특히 수출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국가라 변동성이 클 수밖에 없다”며 “경기가 호황으로 갈 때는 우리나라 증시가 아웃포펌(기준치 대비 주가 상승)할 가능성이 높고, 반대로 경기가 침체로 가는 경우 우리나라의 하락폭이 더 눈에 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1일부터 20일까지 수출액은 1년 전에 비해 3.4% 감소하고, 같은 기간 수입액은 21.1% 증가해 무역수지는 76억 4200만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지난 20일까지 누적 무역적자액은 154억 6900만 달러인 것으로 나타났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상반기 91억 5650만 달러였던 액수를 훨씬 넘어섰다. 이처럼 수출은 줄어들고 수입이 늘어나 무역적자가 이어지면서 최근 국내 증시 하락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된다. 서상영 미래에셋증권 미디어콘텐츠 본부장은 “수출 의존도가 높은 나라들은 글로벌 경기가 둔화되면 타격이 크다”며 “글로벌 경기가 침체되면 수출이 감소하고, 영업이익 추정치가 낮아져 주가가 떨어진다”고 전했다. 서 본부장은 “경기 회복될 때는 우리나라가 그래도 제일 많이 올라간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1980년대 중후반 저유가·저물가·저환율의 '3저(低) 경제 호황'이 겹치면서 주가가 폭등하기도 했고, 2002년 중국이 경기 부양할 시기에도 우리나라 증시는 시장수익률을 상회했다. 또 코로나19 여파로 코스피는 2020년 3월 1457.64까지 떨어졌다가 전 세계 경기 부양에 힘입어 오름세로 전환돼 지난해 7월 3305.21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박광남 미래에셋증권 디지털리서치 팀장은 “팬데믹 장세에서 초반에 유럽이나 중국보다 우리나라 증시가 더 좋았다”며 “글로벌 무역량이 늘어나고, 수출이 늘어나는 사이클에서는 국내 증시가 다른 나라 증시에 비해 훨씬 강하다”고 말했다.
한국 증시에서는 반도체‧자동차 등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 업계 상황에 따라 국내 증시가 크게 달라질 수도 있다. 이경민 대신증권 투자전략팀장은 “반도체 업황이나 글로벌 경기 등이 부진하면서 흔들릴 수밖에 없는 증시가 됐다”며 “그 와중에 수급도 취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낙폭이 커지는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국내 증시의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반도체 업황이 악화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대장주 중심으로 매도세를 보이고 있다. 반도체는 우리나라 수출의 20%를 차지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3분기 D램 가격이 직전 분기 대비 최대 8%, 낸드플래시 가격은 최대 5% 하락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경기침체로 제품 재고량은 늘고 있는 반면 모바일‧PC 수요가 부진하면서 가격이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한 것이다. 최유준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국내 증시에서 반도체의 국내 시가총액과 이익 모두 높은 편인데 최근 반도체 업황이 악화될 거라는 우려 때문에 반도체 경기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진 상태”라고 말했다.
국내 경제가 제조업 중심이다 보니 사람들의 소비 품목 변화가 증시 변동에 영향을 줬다는 분석도 있다. 최석원 SK 증권 지식서비스 부문장은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사람들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며 “전보다 돈을 안 쓴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여행 갈 돈으로 집에 있는 제품을 바꾸는 데 투자하는 사람도 많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최 부문장은 “한국은 제조업 중심 국가라 제품 수요가 늘어날 때 수혜를 많이 봤을 것”이라며 “2년쯤 지난 현재는 이미 제품 소비를 어느 정도 다 했기 때문에 제조업 측면에서 수혜가 없어지는 시기고, 코로나 상황이 점차 나아지면서 유럽 등 해외 국가들은 서비스업 중심으로 다시 활성화되고 있어 상대적으로 국내 증시에 비해 상황이 괜찮지 않을까 예상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증시가 크게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기업이 주주 친화적인 정책을 위해 노력하면서 투자 매력도를 높여야 한다고 말한다. 박광남 미래에셋증권 디지털리서치 팀장은 “경기에 민감한 전통주들이 배당 정책이나 자사주 매입을 더 실천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박 팀장은 “국내 전통적 기업들은 다른 국가들에 비해 아직까지 배당률이 낮은 편”이라며 “성장이 둔화된 상태고, 성숙 산업인데 배당조차 하지 않으면 현금을 쌓아 놓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그래서 돈을 벌 때만 투자를 하고 상승세가 꺾이면 빠져나가는 흐름이 계속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희찬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산업구조 자체를 단기간에 바꿀 수는 없기 때문에 경영주들이 주주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정책 등을 통해 투자 매력도를 높이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주주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크고, 유리한 정책을 내놓을수록 주주들은 투자 부담이 줄어들어 더 적극적으로 투자에 뛰어들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렇게 투자자들을 끌어모으면 한국의 부족한 수급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돼 국내 증시 상황을 좋은 방향으로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장기적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김후정 유안타 증권 연구원은 “남북관계를 비롯해 지정학적 요소 등과 같은 불안 요소들을 장기적으로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간접투자 활성화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김 연구원은 “개인투자자들이 직접투자는 많이 하고 있지만 간접투자는 많이 줄어든 상황”이라며 “간접 투자 시장이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민주 기자 lij907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