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전현충원에 ‘반민족행위자’ 12명 안장…전문가 “독립운동가 위상 높여야”
1945년 8월 15일 조선은 일본제국주의(일제)의 탄압에서 벗어나 광복을 맞았다. 이후 일제에 나라를 팔고 우리 동족을 핍박한 친일파에 대한 척결 작업이 시작됐다. 그 일환으로 1948년 ‘반민족행위처벌법’이 공포됐다. 반민족행위처벌법에는 친일파의 부정축재를 단죄하기 위해 사형·징역형, 재산몰수형 등의 처벌이 담겨 있다.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도 구성됐다. 하지만 알려져 있다시피 반민특위 활동은 좌절됐다.
1950년 6·25 전쟁 발발 이후 반민족행위처벌법의 모든 조치를 무효화하는 법률이 공포된다. 반민족행위처벌법으로 재산이 몰수된 자들은 재산을 다시 받았고, 실형이 선고된 이들은 모두 석방됐다. 친일파 청산은 이뤄지지 못했다. 친일파는 오히려 6·25 전쟁에 참전해 ‘전쟁영웅’으로 떠올랐다. 이들은 사후 국립현충원에 안장됐다. 현충원은 전사 또는 순직한 군인 및 군무원 안장을 목적으로 1955년 설립됐다. 과거 친일파로 일본인의 앞잡이 역할을 하며 우리 동족을 괴롭혔던 이들이 6·25 전쟁에서 공적을 세운 군인으로 현충원에 묻힌 것이다.
일요신문i가 국가보훈처에 요청해 받은 친일파 국립묘지 안장자 현황을 보면 현재 총 12명의 친일파가 국립서울현충원과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돼 있다. 이들은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의거해 2009년 대통령 소속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친일파다. △김홍준 △김백일 △김석범 △송석하 △신응균 △신태영 △신현준 △백선엽 △백홍석 △이응준 △이종찬 △백낙준 등이다. 이 중에서 △김홍준 △김백일 △신응균 △신태영 △이응준 △이종찬 △백낙준 7명은 국립서울현충원에, △김석범 △송석하 △신현준 △백선엽 △백홍석 5명은 국립대전현충원에 묻혀 있다.
심지어 이들 중 일부는 독립유공자 묘역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 묘역 인근에 안장돼 있다. 대표적으로 국립서울현충원 내 대표적인 명당자리로 꼽히는 장군2묘역은 독립유공자 묘역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 묘역 바로 옆이자 위에 위치해 있다. 독립유공자 묘역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 묘역을 내려다보는 위치인 이곳에 친일파 신태영과 이응준이 묻혀 있다.
신태영은 일본 장교 출신으로 일본육군사관학교를 나와 시베리아전쟁과 태평양전쟁에 참전해 일제에 부역한 인물이다. 그는 일제강점기 당시 “야스쿠니신사(안장)가 내 목표”라고 말하기도 했다. 신태영은 광복 후 3대 육군참모총장을 거쳐 4대 국방부 장관을 역임했다.
이응준은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일본군 육군 대좌(대령) 출신이다. 그는 일본군 장교로 장기간 복무한 공적을 인정받아 일본 정부로부터 2회에 걸쳐 훈장을 받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이응준은 “조선의 청년들이 일본 군인이 돼 전쟁터로 나가 목숨을 바쳐 천황에게 충성을 다해야 한다”고 발언한 인물로 유명하다. 이응준은 광복 후 대한민국 초대 육군참모총장이 됐다. 역사 전문가들은 특히 이응준이 총장자리에 올라 우리 군에 친일 인사가 대거 유입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
이들이 묻혀 있는 장군2묘역 설명 기둥에는 이들의 친일 행적이 적혀 있지 않다. 다만 ‘초대 육군참모총장을 역임한 이응준 육군 중장, 6·25 전쟁 중인 1952년 국방부 장관을 역임한 신태영 육군 중장이 모셔져 있다’고 명시돼 있다.
이들의 묘비에도 마찬가지다. 신태영 묘비에는 ‘개화의 선구자로 호국의 간성이시었고 강직과 청렴으로 시대의 등불이시었으며 덕과 지용으로 국군을 세워 기르셨으니 뜻의 굳으심이 눈바람에 푸르른 청송이시오 덕의 높으심이 뭇 봉우리 우뚝한 태산이시라. 높은 뜻 해와 함께 이 땅 위에 머무르시고 빛난 공 달과 함께 어둠 속의 등불되시어 조국을 길이길이 비치오소서 비치오소서’라고 새겨져 있다.
이응준 묘비에는 ‘님은 힘을 믿으셨기에 겨레를 위하여 힘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님은 힘의 노예가 되지 않으시고 관용과 사랑을 택하셨습니다. 완숙한 열매에서 새 씨앗이 생겨나듯이 님은 가시면서 구원의 삶을 남기셨습니다. 영원한 아침이 내리는 아름다운 화환을 받으소서. 군의 아버지시여’라고 적혀 있다.
국립대전현충원 상황도 비슷하다. 친일파 백선엽이 묻혀 있는 국립대전현충원 장군제2묘역 옆은 독립유공자제4묘역이고 위는 독립유공자제7묘역이다.
백선엽은 1943~1945년 간도특설대에서 장교로 복무했다. 역사전문가 등에 따르면 간도특설대는 일제가 항일무장세력을 전멸시키기 위해 세운 특수부대다. 백선엽은 생전 “간도특설대에 몸담았던 시절 독립군과 싸운 적이 없다”고 해왔지만, 간도특설대 자체가 ‘조선인 독립군은 조선인으로 잡아야 한다’는 일제 방침에 따라 조직된 것으로 전해진다.
광복 후 5년 뒤 6·25 전쟁이 발발했다. 백선엽은 6·25 전쟁 당시 최대 격전지였던 경북 칠곡 다부동 전투에서 전세를 역전시켰다고 알려져 있다. 이 공로로 백선엽은 독립유공자 묘역 사이인 국립대전현충원 장군제2묘역에 묻혔다. 국립대전현충원에서 만난 한 시민은 “역사를 알고 묘역을 보니 안타깝다는 말만 나온다”며 “전쟁 영웅이어서 현충원에 안장된 건 그렇다 치지만 친일 행위를 했던 사람이 독립유공자 묘역 인근에 있는 건 좀…”이라고 말했다.
현재로선 친일 행위를 한 전쟁 영웅의 묘를 강제 이전할 방법은 없다. 국립묘지법이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 소위원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친일반민족행위자(친일파)지만 6·25 전쟁에 참전해 공을 세워 현충원에 안장된 것”이라며 “안장 자격이 취소되지 않는 이상 파묘할 근거는 없다”고 설명했다.
국립묘지법 제5조에 따르면 대통령·국회의장·대법원장 또는 헌법재판소장의 직에 있었던 사람을 포함해 ‘독립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 제4조에 따른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로서 사망한 사람, 현역군인으로 숨지거나 무공훈장을 받은 사람으로서 숨진 경우, 장성급 장교 또는 20년 이상 군에 복무한 사람 중 전역·퇴역 또는 면역된 후 숨진 사람 등이 현충원 안장 대상자다.
앞서 2020년 5월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1명은 ‘국립묘지 설치 및 운영법 일부 개정안’을 통해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없는 사람으로 친일파를 추가했다. 반면 국민의힘(당시 미래통합당)은 “과실이 있다 하더라도 무덤을 파내고 모욕을 주는 보복의 정치는 반인륜적”이라며 비난했다. 결국 이 개정안은 당시 여야의 첨예한 갈등을 일으킨 채 가라앉았다.
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 관계자는 “(친일파 묘역의) 위치를 옮기거나 파묘는 국립묘지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거론조차 되고 있지 않아 쉽지 않다”며 “역사가 정치적 이해관계에 묶여 (정치인들조차)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보지 않고 ‘6·25 전쟁에서 공산주의자들과 맞서 싸운 인물인데 왜 (안장을) 반대하느냐. 좌파냐?’라는 식으로 목소리를 높이니 제대로 역사를 보지 못한다”고 호소했다.
전문가들은 전쟁 영웅이 된 친일파를 지적하고 나서기보다 독립운동가의 위상을 재정립하는 데 힘쓰는 게 낫다고 주장한다. 국내 한 역사교육 전문가는 “우리나라가 광복 후 미군정 통치 시기를 지나 6·25 전쟁이 발발할 때까지 시간이 짧았다”며 “전쟁이 일어나자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군·일본 경찰에 속해 있던 인물들이 군에 합류해 공을 세우면서 친일파가 전쟁 영웅으로 떠오르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러나 이 문제는 자칫 역사 문제가 아닌 이념 문제로 변질될 우려가 짙다”며 “대부분 공감할 수 있는 독립운동가의 위상을 높이는 일들을 더 추진하는 게 나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