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NL 8연패로 예상보다 더 큰 부진…기대주들 ‘확실한 카드’로 성장할지 물음표
#연패에 랭킹 하락까지
대표팀의 성장통은 예견돼 있었다. 대표팀은 불과 1년 전 열렸던 2020 도쿄 올림픽 4강 진출이라는 성공을 거두었다. 3년간 동행했던 스테파노 라바리니 감독과 각자의 길을 가게 됐지만 라바리니 체제에서 수석코치를 맡았던 세자르 에르난데스 감독이 새롭게 지휘봉을 잡아 연속성을 이어갔다.
선수단에서는 큰 폭의 변화가 있었다. 많은 숫자가 이탈한 것은 아니지만 핵심적인 인물들이 대표팀 유니폼을 벗었다. 팀 전력의 절반 이상이라는 평가를 받던 김연경에 이어 오랜 기간 손발을 맞춰 온 양효진, 김수지 등이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이들이 빠졌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대표팀 부진은 꽤 심각하다. VNL 2주 차까지 8경기를 치르며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다. 일본, 독일, 폴란드, 캐나다, 도미니카 공화국, 세르비아, 네덜란드, 튀르키예를 차례로 만나 모두 패했다. 특히 일본, 도미니카, 튀르키예를 상대로는 1년 전 올림픽 무대에서 승리를 거둔 바 있었기에 아쉬움을 더했다.
캐나다전 패배는 더욱 뼈아팠다. 2주 차까지 일정에서 대표팀이 가장 해볼 만한 팀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실제 대한민국 대표팀의 세계 랭킹이 캐나다보다 높았고 2021 VNL에서도 승리를 거둔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대표팀은 캐나다에도 0-3 셧아웃 패배를 당했다.
이어지는 패배에 대회 개막 시점 14위에서 시작한 세계랭킹은 19위까지 하락했다. 2024 파리 올림픽은 기존 예선 체계를 변경했다. 세계랭킹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된 방식에서 대표팀은 올림픽 본선 진출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메우지 못한 베테랑 공백
핵심 전력이던 김연경, 김수지, 양효진은 더 이상 대표팀에 선발되지 않는다. 리베로 포함 7명이 스타팅 멤버로 나서는 배구 종목에서 3명의 베테랑이 빠져 나가자 그 공백이 여실히 드러났다.
박정아와 짝을 이루던 김연경의 레프트 자리에는 대부분 강소휘가 선발로 나서는 가운데 고예림, 이한비, 황민경 등이 자리를 이어가고 있다. 모두 V리그 내 중견급 이상의 경력을 자랑하는 선수들이다. 하지만 국제대회 경험은 많지 않다. 장기간 국가대표 레프트 자리는 김연경과 박정아의 차지했고 대표팀은 주전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팀이었다.
강소휘는 8경기를 치르는 동안 58점(대회 53위)을 따내며 팀 내 가장 높은 득점을 기록했다. 고비마다 득점을 올리며 팀의 공격을 이끌고 있지만 불안정한 토스까지 해결하는 능력은 부족하다는 평을 받는다.
김연경이 세계 최고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데는 탁월한 수비 능력도 한몫했다. 자연스레 김연경의 공백은 수비 부문에서도 느껴졌다. 경기마다 들쭉날쭉했던 대표팀의 수비는 경기 전 부문에 영향을 미쳤다. 리시브가 원활히 이뤄지는 시점마다 세터 염혜선의 토스가 더욱 날카로워지는 모습이 포착됐다.
양효진, 김수지가 버티던 센터 포지션에서도 공백이 느껴지고 있다. 이번 대표팀은 이들의 자리에 이다현, 이주아, 정호영 등 리그 내 상위권 센터들을 선발했다. 하지만 이들 역시 때때로 상대 공격을 무기력하게 허용하는 등 기복 있는 모습을 보였다.
첫 선을 보인 세자르 감독에 대해서도 아쉬움의 목소리가 나온다. 경기 중 분위기를 반전시켜야 할 타이밍에 적절한 선수교체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반면 이번 대회 세자르 감독의 선수 기용은 선수들의 성장을 내다보는 동시에 적절한 조합을 찾기 위한 것이라는 옹호도 있다.
#성장 절실한 유망주들
반복되는 패배에 대회 중계를 맡은 한 해설진은 "패배에 익숙해져선 안된다"는 쓴소리를 남겼다. 1년 전에 비해 한층 젊어진 대표팀은 향후 수년간 현재의 라인업에서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의 젊은 자원들이 국제무대의 어려움을 견뎌내야 한다는 의미다.
배구계 한 관계자는 "이번 대표팀 성적으로 그간 '호황'을 누려왔던 V리그도 주춤할까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V리그 여자부는 2010년대 이후 성장을 거듭해왔다. 그 배경에는 김연경을 주축으로 한 대표팀의 선전이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대표팀이 전성기에서 내려오면서 V리그 흥행도 시들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것이다.
결국 대표팀과 V리그 모두 젊은 선수들의 성장이 절실한 상황이다. 2018년과 2019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선발된 2000년, 2001년 사이 태어난 몇몇 선수들은 프로 입단 전부터 고교생 신분으로 국가대표에 발탁되는 등 각광받던 유망주들이었다. 이주아, 박은진, 박혜민, 정지윤, 정호영, 이다현 등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김연경 세대에 이어 또 다른 '황금세대'로 불리기도 했다. 유망한 자원들이 많아 이 시기 프로 7구단 창단 필요성이 활발히 대두될 정도였다.
4~5년 차에 접어든 이들은 각자 소속팀에서 무게감 있는 선수로 자리를 잡았다. 저마다 포지션에서 리그 수위급 선수가 됐다. 김연경은 함께 대표팀 생활을 했던 정지윤에 대해 특별히 이름을 언급하며 "앞으로 기대된다"는 말을 남겼다. 다만 이번 대표팀에는 부상으로 합류하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하지만 대표팀에서 확실한 카드로 성장했는가라는 물음에는 선뜻 답을 내리기 어렵다. 이들 중 다수가 센터로 성장했지만 그간 대표팀 붙박이로 활약하던 양효진의 아성을 아직은 넘어서지는 못하고 있다.
이번 대회로 대표팀의 모든 것을 판단하기는 이르다. 기대주였던 이들이 대표팀의 전면에 나선 것은 이번 대회가 사실상 처음이다. 시련을 겪고 있는 대표팀이 다시 올라설 수 있을지 팬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