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를 통해 낭보를 접했다. 유튜브를 통해 그의 연주를 보게 됐다. 클래식에 문외한인 나에게도 그의 연주는 보는 내내 ‘찌릿찌릿’한 전율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의 폭발적인 연주실력에 이번 대회 심사위원장을 비롯해 결선무대서 포트워스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마린 알솝의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광경을 목격했다.
시상식장에서 각종 상을 휩쓴, 약관도 안 된 18세 연주자는 수상소감으로 “난 그냥 산에 들어가서 좋아하는 피아노만 치고 싶어요. 그런데 그래선 수입이 없어 살 수가 없어서”라는 속마음을 드러냈다. 세계적 콩쿠르에서 대상과 청중상, 신작 최고 연주상을 모두 수상한 천재 피아니스트의 수상소감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20여 년 전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신인감독을 만난 적이 있다. 시상식이 끝난 뒤 축하 리셉션장에서 이런 질문을 했다.
“감독, 상 받은 느낌이 어때? 이제 당신에게 수많은 프로듀서와 투자자가 관심을 가질 텐데…. 다음엔 무슨 작품 하고 싶어?”
그 감독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와인잔만 내려다보며 이렇게 답했다.
“전 사실 아무 일도 안하고 그냥 매일 영화만 보고 싶어요. 그런데 그래선 살 수가 없을 테니 시나리오도 쓰고 영화도 만들고 그래야겠지요…. 그런데 전 정말 하루 종일 영화만 보고 살면 행복할 것 같아요.”
모든 사람에게 축하를 받고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천재 예술가들도 마냥 행복하고 하늘 위 구름을 걷고 있지는 않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동경하고 찬탄해마지 않는 천재들도 현실의 삶에선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웅변해주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50대 후반으로 들어선 나는 오랜만에 만난 동창들과의 모임에서 한결같이 친구들의 푸념어린 말들을 들어야만 한다. 소위 잘나간다는 전문직을 가진 친구들 중 그 누구도 항상 행복하고 항상 만족하며 살고 있지는 않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직업을 가진 친구들 중엔 “난 사실 그림이 그리고 싶었어”라든가 “야, 난 조그만 식당 하는 게 소원이다. 그냥 내가 살아갈 만큼만 벌면 내 맘대로 가게 문 닫아버리는 그런 좀 건방진(?) 식당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전문직 친구들도 있었다.
그런 친구들의 푸념을 들으면, 얼마 전 퇴직한 친구들은 이렇게 말한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지금 일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이 자식들아, 너희들은 현재 일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거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엔데믹으로 접어들고 있는 요즘, 뉴스는 연일 인플레이션에 고금리 경기침체가 이제 거의 확정된 것처럼 보도하고 있다.
해마다 여름은 무더워진다. 이젠 에어컨 없이는 한시도 살 수 없는 상황이 돼버린 듯하다. 그런데 한국전력의 적자는 더 이상 자체적으로 감내할 수 없기에 전기료를 인상해야 한다는 것 또한 기정사실화돼 있다. 더불어 가스요금도 동반인상하게 될 것이라 예상되고 있다. 물가는 이제 6%에서 잡으면 선방하는 것이고, 어쩌면 미증유의 고물가시대에 살게 될지도 모른다고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고물가도 고물가이지만 고금리는 불안감·열패감·공포감에 소위 말하는 영혼까지 끌어 모아 대출을 받아 주택을 장만한 서민들에겐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서민들은 이제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다. 모든 사람들은 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 좋아하는 일이 다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에게 다가오는 현실은 서민들에게는 그저 생존에 관련한 일만 할 수 있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듯하다.
정부와 정치권이 작금의 상황을 심각하게 인식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에어컨은 좀 덜 쐬고, 식비는 좀 줄이고, 여가생활은 조금 자제할 수 있지만 은행이자는 피하려 해도 피할 방도가 없다. 국민들은 다가오는 퍼펙트 스톰을 어쩌면 맨몸으로 맞이해야 할지도 모른다.
2022년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두렵다. 정부와 정치권 그리고 국민들이 모두 합심해서 이 위기를 헤쳐 나가고 국민들이 하고픈 일을 하며 살 수 있는 그런 시간이 빨리 오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정부와 정치권이 들었으면 하는 영화 대사가 생각난다.
“뭣이 중헌디….”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원동연 영화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