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단계부터 교수 낙점, 베를린 탐났는데…한국형 히어로물 도전 위해 몸 열심히 만들 것”
“이미 교수 역할로 내정돼 있어서 제 선택권이 없었죠(웃음). 저한테 교수 역이 너무 잘 어울린다고, 기획 단계부터 설정된 상태에서 대본을 받았어요. 사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제 주변 사람들이 ‘너랑 교수는 이미지가 잘 어울린다’고 말해주더라고요. 마침 (이전과는) 다른 캐릭터를 도전해서 인생 캐릭터를 한 번 만들어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서 출연을 결정하게 됐죠. 그런데 저와 교수가 정말 많이 닮긴 했나 봐요. MBTI 검사를 해봤는데 제 결과가 INTJ(용의주도한 전략가)로 나오더라고요. 교수도 INTJ래요(웃음).”
교수는 각기 다른 개성과 능력을 지닌 강도들을 모아 남북 공동경제구역 조폐국을 상대로 단일 강도 역사상 최고액인 ‘4조 원’을 목표로 한 인질 강도극을 계획한 인물이다. 몇 수 앞을 내다보는 예측력을 토대로 한 치밀한 전략으로 모든 변수에 대비하는 그는 강도단의 컨트롤 타워로서 극을 이끈다. 단순히 캐릭터의 외적인 면모에서 나오는 유사성뿐 아니라 ‘교수’ 그 자체가 돼야 했던 유지태는 설정상 강도단과 떨어져서 촬영해야 하는 때에도 작품 전체의 흐름을 파악하며 연기에 임했다고 했다.
“연기를 할 땐 교수라는 캐릭터만을 보지 않았어요. 저는 장르에 맞춰서 연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배우라서, 케이퍼 장르(범죄자들이 모여 무언가를 훔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하는 장르)에 맞는 연기가 무엇일까를 고민했거든요. 전체 구성에서 어떤 요소로서 연기를 해야 하고 또 책임져야 할지를 생각했죠. 아마 스페인 원작 드라마인 ‘종이의 집’에 출연했다면 또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겠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빠른 호흡과 빠른 전개에 맞춰 전달하는 게 제게 가장 중요한 임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것에 포커스를 맞춰서 연습을 했던 기억이 나요.”
그를 둘러싼 모든 이들이 ‘교수’를 추천했고, 유지태 본인도 역할에 만족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욕심이 나는 배역을 꼽으라면 역시 ‘베를린’이었다. 원작에서 조폐국 침투조의 리더로 등장하며 강렬한 카리스마를 뽐내던 이 캐릭터는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에서는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서 25년간 감금됐다가 탈출한 탈주범 송중호로 리메이크됐다. 강도단 내 가장 이질적이면서도 완벽한 존재감을 자랑하는 그는 작품 공개 이후 시청자들의 많은 호평이 쏟아진 빌런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저도 박해수 씨가 맡은 ‘베를린’ 역이 탐나죠(웃음). 촬영 들어가기 전에 ‘내가 베를린 한다고 할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하긴 했었어요(웃음). 하지만 제가 굳이 말씀드리지 않아도, 박해수 배우가 너무 잘해주신 걸 다들 알고 계실 거예요. 그게 너무 좋고 기쁘더라고요. 베를린은 원작에서도 참 매력 있는 캐릭터고, 박해수 씨도 매력적인 배우니까요.”
강도단 외에 교수와 깊이 연관된 캐릭터를 꼽으라면 그들과 협상을 시도하는 경기경찰청 위기협상팀장 선우진 경감(김윤진 분)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두 캐릭터의 멜로적인 관계성으로 뜨거운 반응을 불러 일으켰던 유지태는 그의 전매특허인 섬세한 감정 연기로 한 번, 그리고 농밀한 베드신으로 두 번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멜로 신을 찍을 때 김윤진 선배가 연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새록새록 느낄 수 있었어요. 한 감정, 한 신을 채우기 위해 수많은 고민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자극을 받았고요. 함께한 베드신에서 저를 보고 왜 상의 탈의를 안 하냐는 말을 들었는데요, 아시다시피 제가 몸이 큰 편이라 좀 불룩불룩하게 나온 게 있어서 좀…(웃음). 섹시미는 김지훈 씨(덴버 역)가 하시는 게 전체적인 밸런스가 맞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강도단’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다 보니 모든 배우들을 아우르는 현장 분위기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과묵해 보이는 인상과 달리 유지태는 이런 ‘분위기’를 이끄는 데에 누구보다 도가 텄다고 했다. 이번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에서도 유지태는 판을 이끄는 연장자 중 한 명이었다.
“보통 작품을 하게 되면 주도적으로 판을 까는 편이에요, 술판도 깔고(웃음). 그렇다고 앞에 나가서 막 마이크를 잡는 건 아니고요, 그냥 판만 깔아 놓고 뒤에 가서 계산만 슬쩍 하는 식이죠. 그런데 이번 작품에선 이원종 형님이 계시고 박해수란 훌륭한 배우도 있다 보니 한 발짝 떨어져 있어도 그게 바람직해 보일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해수한테 따로 ‘내가 못 가더라도 현장을 잘 부탁한다’고 말해줬었죠(웃음). 코로나만 아니었어도 좀 더 분위기를 띄우는 자리를 많이 만들었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게 아쉬워요.”
이번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은 유지태의 첫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진출 작품으로도 눈길을 끌었다. 주로 스크린에서 활약해 온 그는 2014년부터 드라마 무대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보였고, 2023년에는 각각 티빙과 디즈니 플러스(+)에서 ‘빌런즈’와 ‘비질란테’라는 오리지널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빠르게 변하고 또 넓혀지고 있는 배우들의 무대에 굉장히 빨리 적응하는 배우 중 한 명이 유지태였다. 각 OTT 별로 서비스되는 작품들을 하나씩 다 섭렵하는 것이 목표라는 그는 최근엔 히어로 장르에 꽂혔다고 했다.
“저는 한국형 히어로 물을 한 번 해보고 싶어요. 너무 상업적으로 보실 수도 있는데(웃음), ‘베놈’이나 ‘엑스맨’ 같은 히어로물을 한국만이 할 수 있는 것으로 각색한 걸 해보고 싶거든요. 그러려면 열심히 몸을 만들어야겠죠(웃음). 원래 제가 ‘엑스맨’의 엄청난 팬이에요. 요즘 히어로물은 또 철학과 신념을 담은 히어로들을 많이 다루잖아요. 저도 가치관을 담은 한국형 히어로물을 해보고는 싶은데 아무래도 제가 다소 진지하고 무거운 분위기가 있다 보니 맡을 수 있는 역할이 없을 것 같아요(웃음).”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