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시디 허친슨 “트럼프, 의사당 점거 시위대 합류 시도”…트럼프 위기 돌파 위해 조기 출마 선언 가능성
미국 의회의사당 난입 조사특위 공개 청문회에서 충격적인 증언들이 쏟아지면서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입장이 난처해진 사람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76)이다. 최측근이었던 참모들 가운데 몇몇이 청문회에 출석해서 그에게 불리한 증언을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쟁점은 지난해 1월 6일 시위대가 의사당에 난입해 폭동을 벌이는 과정에서 트럼프가 어떤 입장을 취했는지, 그리고 폭동을 부추기거나 혹은 방조했는지에 있었다.
만일 트럼프가 그날 선거 결과 인증을 막기 위해 혼란을 일으켰다고 법무부가 결론을 내린다면 형사상 범죄 행위로 인정돼 기소될 수도 있다. 지금까지 퇴임 후 기소된 미국 대통령은 한 명도 없었다. 한편에서는 2024년 대선 출마를 고심하고 있는 트럼프가 계획보다 빨리 출마를 발표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불리해진 입장을 뒤집고 지지층을 결집해 자신의 목소리를 다시 내겠다는 복안이다.
사상 초유의 의회 난입 사건에 대한 공개 청문회가 열렸던 지난 6월 28일. 마크 매도스 전 백악관 비서실장의 핵심 참모였던 캐시디 허친슨(26)이 입을 열자 국회의사당 안은 이내 술렁였다. 트럼프 지지자들이 의회의사당을 점거했던 바로 그날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트럼프의 놀라운 행각이 속속 드러났기 때문이다.
허친슨의 증언이 더욱 주목을 받은 이유는 그가 청문회 증언대에 처음 선 백악관 핵심 참모였다는 데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주장이 신빙성이 있다는 점도 무게를 더했다. 인턴을 거쳐 젊은 나이에 백악관에서 근무하는 행운을 거머쥔 허친슨은 트럼프 집무실과 가까운 곳에서 근무했으며, 이에 따라 자연히 많은 것을 보고 들을 수 있었다.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20대였지만 입법 의제를 감독했고, 엄청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관록 있는 상원의원들과도 수시로 만났다. 이에 대해 폴 D. 라이언 전 하원의장의 보좌관이었던 브렌던 벅은 “허친슨은 매도스의 곁에 항상 있었다. 고위급 인사들이나 그보다 낮은 직급의 인물들과 회의가 있을 때마다 매도스는 항상 그녀가 동석하도록 조치했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러니 허친슨을 가리켜 일부 동료 백악관 직원들 사이에서는 ‘대장 캐시디’라는 비아냥거림이 오가기도 했었다.
한때 열렬한 트럼프 지지자였던 허친슨은 트럼프의 재선 캠페인에서도 활발히 활동했으며,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트럼프의 당선을 위해 뛰어다녔다. 하지만 그의 희망은 깨진 접시처럼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청문회에 출석해 의회 난입 사건 당시 트럼프의 행적을 폭로한 허친슨은 “그날 그(트럼프)의 행동은 애국적이지도 미국적이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허친슨이 증언했던 내용 가운데 논란이 되는 부분은 트럼프가 지지자들이 무장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묵과했으며, 심지어 의사당으로 가서 시위대에 합류할 생각도 했다는 점이었다. 또한 폭력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참모들의 사전 경고도 무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허친슨에 따르면, 트럼프는 백악관 앞에 모인 자신의 지지자들이 폭력 사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는 보고를 받았으며, 이 가운데 몇몇이 중무장을 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를 저지하기는커녕 자신을 보기 위해 모여든 군중의 규모에만 더 신경을 썼다.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의 소지품을 검사하고 있는 비밀경호국 직원들을 향해서는 “나는 그들이 무기를 가지고 있는지는 전혀 관심이 없다”고 말하면서 “그들은 나를 해치러 온 게 아니다. 빌어먹을 저 금속탐지기를 치워라. 내 사람들을 들여보내라. 그들은 여기서 의회의사당까지 행진할 수 있다”고 명령했다.
매도스 비서실장 또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허친슨은 주장했다. 허친슨의 주장에 따르면, 그 또한 폭력 사태 위험에 대한 보고를 받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으며, 일부 집회 참석자들이 무기를 소지했다는 보고를 듣고도 휴대폰만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허친슨의 주장은 지금까지 트럼프 측이 줄곧 주장해왔던 바와는 배치된다는 점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트럼프 측은 지금까지 1·6 폭동에 대해서 “그들은 평화로운 시위대였다”고 주장하면서 애초에 폭력을 저지를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주장해왔다.
트럼프가 시위대를 비난하기는커녕 오히려 두둔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폭동 당일, 시위대는 상하원 합동 의회를 주재했던 당연직 상원의장인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교수형에 처해야 한다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트럼프는 그 소식을 듣고 “펜스는 그런 일을 당해도 싸다”고 말하면서 “시위대는 잘못이 없다”고 두둔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허친슨은 심지어 트럼프가 시위대에 합류해 의회의사당으로 행진할 생각도 했다고 폭로했다. 실제 매도스 비서실장을 비롯한 백악관 핵심 참모들은 트럼프가 행여 지지자들과 함께 의사당으로 향할까봐 조마조마해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팻 시폴론 당시 백악관 법률 고문은 “만일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우리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범죄 혐의로 기소될 것”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청문회에서 공개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와 비밀경호국(SS) 간의 통신 기록도 그날의 상황이 얼마나 긴박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당시 한 비밀경호국 요원은 “‘거물’(대통령 코드명)이 의회로 향하고 있다” “걸어가고 싶어 한다. 경호원들이 이를 말리고 있다” “이건 지금 벌어지는 실제 상황이다”라고 연달아 보고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트럼프가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대통령 전용 리무진 안에서 경호원들과 신체적 접촉까지 불사했다는 점이다. 허친슨은 “나는 토니 오나토 백악관 부비서실장과 당일 경호를 맡았던 비밀경호국 소속의 로버트 엥겔로부터 여러 차례 그날의 상황을 전해 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내가 빌어먹을 대통령이다. 당장 의사당으로 향해라’라고 고함을 질렀다”면서 “심지어 운전대를 잡은 경호원을 밀치고 운전대를 빼앗으려고 시도했다”는 충격적인 발언도 했다. 다른 한 손으로는 이를 저지하려는 엥겔을 공격했다.
그런가 하면 2020년 12월에는 빌 바 전 법무장관이 AP통신과 가진 인터뷰를 보던 도중 흥분한 나머지 접시를 내던졌다는 사실도 폭로됐다. 이와 관련해서 허친슨은 “트럼프 대통령은 그 인터뷰를 보고 불같이 화를 냈다. 점심을 먹던 도중 접시를 벽에다 던졌다. 내가 식당에 도착했을 때 직원은 테이블보를 교체하고 있었고, 벽에는 케첩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바닥에는 깨진 접시 조각들이 흩어져 있었다. 나는 수건으로 벽에 묻은 케첩을 닦기 시작했다”고 구체적인 당시 정황을 설명했다.
이런 허친슨의 주장에 트럼프는 즉각 반박하고 나섰다. 자신이 설립한 SNS인 ‘트루스 소셜’ 계정을 통해 트럼프는 “나는 캐시디 허친슨이라는 사람이 누군지 모른다”라면서 “내가 의사당으로 가기 위해 리무진 운전대를 빼앗으려 했다는 거짓말은 역겨운 사기다”라고 맞받아쳤다. 또한 접시를 벽에 던졌다는 증언 역시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청문회가 진행되면서 자신한테 불리한 증언들이 쏟아지자 초조해진 트럼프가 계획보다 빨리 대선 출마 발표를 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추락한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해, 그리고 현재의 불리한 사태를 만회하기 위해서다. 당초 11월 중간선거 전후로 출마 선언을 할 계획이었지만, 측근들에게 빠르면 7월 안에 할 수도 있다는 의사를 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에 대해 워싱턴의 한 관계자는 “매일 말이 달라지고 있다. 내일이라도 당장 발표할 듯 굴다가도 오후가 되면 또 말이 달라진다”면서 워낙 변덕이 심하기 때문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고 전했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청문회를 통해 트럼프의 입지가 확연히 좁아졌다는 점이다. 과거 트럼프와 함께 일했던 참모들은 물론이요, 공화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트럼프에게 등을 돌리는 사람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데일리비스트’는 “트럼프 참모들은 그가 다시는 백악관 근처에 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보도했다.
사실 트럼프에게 등을 돌린 참모와 고문은 지난 수년간 증가해왔다. 충성파(마이클 코언, 오마로사 매니골트, 스테파니 그리셤 등)에서부터 각계 전문인사로 영입했던 인사(바 법무장관,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존 볼튼 전 국가안보보좌관 등)들까지 다양한 인물들이 ‘탈트럼프’를 선언했었다.
애리조나주 하원의장인 러스티 바워즈, 하원의원인 앤디 빅스 등 청문회에 나온 공화당 소속 인사들의 충격적인 증언을 접한 골수 공화당원들마저 한때 트럼프와 일했던 인물들에게 “트럼프의 대통령직이 얼마나 변덕스럽고 범죄적이었는지 묘사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을 지경이다. 이에 대해 ‘데일리비스트’는 “측근들(이너서클) 사이에서 그렇게 충성을 받지 못한 대통령은 여태껏 없었다”고 비꼬았다. 또한 CNBC는 “특히 1월 6일 행각이 청문회에서 구체적으로 폭로된 후부터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을 지지하는 공화당원들의 기부금이 줄어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뿐만 아니라 폭력 사태를 방조했던 공화당의 입지 역시 축소되고 있긴 마찬가지다. ‘데일리비스트’는 허친슨의 청문회 증언에 대해 “폭력, 위협, 불법을 사용하여 과격한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운동에 힘을 실으려는 실패한 권위주의자(트럼프)의 욕망에 전체 우파들이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합세했다는 사실을 폭로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실제 ‘빅라이(Big Lie·2020년 대선이 사기극이라는 주장)’를 두둔하는 공화당원들이 여전히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현재 공화당 유권자 대다수 역시 이 ‘빅라이’를 믿고 있으며, 지난 5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진행된 예비선거에서 승리한 100명 이상의 공화당원들 역시 이를 지지하고 있다. 정치전문사이트 ‘파이브서티에잇’의 분석에 따르면, 트럼프가 지지를 선언한 주지사, 연방정부, 법무장관, 국무장관 후보 111명 가운데 70% 이상이 2020년 대선이 사기라고 믿고 있다.
이와 관련, ‘뉴욕타임스’는 “공화당원들은 유권자들에게 백인 기독교인들이 미국에서 억압받는 진정한 희생자라는 믿음을 확신시키면서 지역구민들의 분노를 부추기기 위해 갱단처럼 일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허친슨의 증언은 현재 공화당 안팎으로 커다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그의 증언을 들은 공화당 측의 반응도 각양각색이다. 그를 가리켜 배신자라고 비난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용기 있는 영웅이라고 치켜세우는 사람도 있다. 노름 아이젠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허친슨이 차기 존 딘이 될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딘은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을 고발한 전 백악관 법률고문으로 닉슨의 오른팔이었다.
만일 트럼프가 출마에 실패한다고 해도 여전히 불씨는 남아있다. ‘데일리비스트’는 “혹시 트럼프가 청문회 증언의 여파로 출마에 실패하고, 론 드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로 후보가 교체된다고 하더라도 민주주의와 권리에 대한 위협은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왜냐하면 굳건하게 남아있는 ‘트럼프주의’가 공화당을 완전히 감염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실제 허친슨의 충격적인 증언이 알려진 후 공화당 하원 법사위원회 트위터 계정에는 트럼프에 대한 분노와 충격을 표현하는 글 대신 허친슨을 조롱하고 비난하는 글이 더 많이 올라왔다.
이에 대해 ‘데일리비스트’는 “만약 공화당이 지금처럼 과격하고 중무장한 방향으로 계속 간다면, 미국의 민주주의는 깨진 도자기 접시 옆에 넝마처럼 너덜너덜해지고, 벽에는 케첩과 함께 피가 흘러내릴 것”이라고 충고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