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갈등 때마다 ‘싸가지론’, 박지현 “팽당해도 버틸 것”…“청년 참여 체계적 보장 시스템 구축 필요”
#위기에 몰린 여야 청년 정치인들
7월 8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성상납 및 증거인멸 교사’ 의혹으로 당원권 6개월 정지라는 중징계 처분을 받았다. 당 대표로 선출된 지 1년여 만에 벼랑 끝에 몰린 셈이다. 이 대표의 핵심 지지층으로 꼽히는 2030 젊은 세대들은 “(의혹을 폭로한) 유튜브만 믿고 경찰 조사도 받지 않은 이 대표를 징계하나” 등의 비판을 쏟아냈다. 국민의힘 윤리위원회가 ‘KT 채용 청탁’ 혐의의 김성태 전 의원, ‘강원랜드 채용비리’ 사건의 염동열 전 의원 등에 대해서는 대법원 유죄 확정 판결이 나올 때까지 수년간 징계를 내리지 않았다는 지적도 뒤를 이었다.
2011년 정치에 입문한 이준석 대표는 청년 정치인의 대표 격이다. 2021년 6월 이 대표는 전당대회에서 ‘신드롬’을 일으키며 헌정사상 최초로 ‘30대·0선’의 제1야당 당수로 올라섰다. 2030 세대는 그동안 민주당 지지 성향을 보였다. 하지만 이 대표를 계기로 국민의힘 지지세가 크게 늘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른바 MZ세대(1980년생~2004년생)의 지지는 국민의힘이 올해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들 중 하나로 꼽힌다. 이 과정에서 이 대표가 일등공신임엔 이견이 없어 보인다.
당 안팎에선 이준석 대표와 ‘윤핵관(윤석열 핵심관계자)’ 간 갈등이 징계 배경이 아니냐는 얘기가 끊이지 않는다. 그 중심엔 이른바 ‘싸가지론’이 거론된다. 6월 12일 이 대표는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서 당내 인사들과 잇따라 겪어온 갈등에 대해서 “당 대표가 된 뒤로 저는 무수히 지적을 받으면서 여기까지 왔다. 그 지적이라는 게 보통 태도와 ‘싸가지론’에 관한 게 많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앞서 6월 초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은 SNS에 자신을 ‘다선 의원이자 정치 선배’라는 걸 강조하며 이 대표를 비판했고, 이 대표는 “가만히 있으면 더 흔들고, 흔들고 반응하면 싸가지 없다고 그러고”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임승호 전 국민의힘 대변인은 “(기존 정치인들이) 청년 정치인과 논쟁하다 보면 반박, 재반박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싸가지 없다’고 일축한다”며 “(싸가지론이) 현실정치에서 먹히면서 유용하게 쓰이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백지원 전 국민의힘 선대본부 상근부대변인도 “한국에선 연령주의가 있다 보니까 나보다 어린 사람이 나를 뛰어넘고 말하려고 하면 ‘싸가지 없다’고 얘기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예의를 지키고 고분고분하면 우습게 아는 경우가 있다”며 “동등한 지위를 갖고 있는데, 나이 차이가 있으면 싸가지론이 강해진다. 이준석 대표는 ‘싸가지론’ 시비에 자주 걸렸고, 계속 그 프레임에 가둬진 거 같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에 이준석 대표가 있다면 민주당엔 박지현 전 비대위원장이 있다. 박지현 전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으로부터 당 대표 출마를 불허를 통보받았다. 그럼에도 박 전 위원장은 ‘출마’ 결심을 굽히지 않고 있다. 박 전 위원장은 1월 27일 민주당 선대위 여성위 디지털성범죄근절특위 위원장으로 영입되면서 정치권에 입문했다. 이후 대선에 패한 민주당은 3월 13일 그를 공동비대위원장으로 임명했고, 6·1 지방선거 패배에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7월 12일 박지현 전 위원장은 YTN에 출연해 “저는 대선 때 2030 여성들의 지지를 받고 정치권에 들어온 사람인데 이런 이력을 가진 청년 정치인들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런 저마저 이렇게 당내에서 토사구팽을 당한다면 앞으로의 청년 정치는 너무 암담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서 온갖 욕을 먹으면서도 버텨봐야겠다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청년 정치 시스템 구축 필요
이준석 대표와 박 전 위원장 사태가 ‘청년 정치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7월 8일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KBS ‘최경영의 최강시사’에서 “앞으로 행여나 ‘젊은 사람이 앞장서면 안돼’라는 인식의 확산으로 가지 않을까 걱정스럽다”며 “이준석으로 대표된 청년 정치의 대두와 일정한 희망, 이런 것들이 다 없어지고 이준석 개인의 도덕적 문제를 놓고 논쟁이 벌어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박지현 전 위원장에 대해선 “본인이 본인 입으로 ‘토사구팽 됐다’, ‘내가 계륵이냐’고 하는 말을 듣고 가슴이 아팠다. 실제로 민주당을 비롯한 한국 정치가 청년 정치인을 이렇게 소비하고 말아버린다”고 덧붙였다.
20대 국회에서 2030 정치인은 정은혜(더불어민주당) 신보라(자유한국당) 김수민(바른미래당) 전 의원, 3명이었다. 이들 모두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지만, 21대 국회에 진출하는 데 실패했다. 정은혜·신보라 전 의원은 21대 총선 공천에서 떨어졌다. 김수민 전 의원은 지역구 출마했으나 낙선했고, 이후 별다른 주목을 못 받고 있다. 19대 국회 때 민주당 청년비례대표로 당선된 김광진·장하나 전 의원도 20대 총선 공천에서 제외됐다.
정치권에선 청년 정치인의 정당 활동과 정치훈련 제도화를 위한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용철 부산대 교수는 “SNS 등을 통한 청년 정치 참여가 활발해지고 있지만, 유럽처럼 체계적인 청년 정치 시스템이 부재하다. 우리나라 정당 정치 발전을 위해서 청년 정치 참여를 활성화시킬 중장기적인 로드맵을 그릴 필요가 있다”며 “교육부터 정당 가입, 출마 및 당선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정당 차원에서 뒷받침해주는 육성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고 말했다.
여야 모두 청년 정치 시스템 구축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긴 하다. 7월 10일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위원장은 기자간담회를 열고 당내 인재육성 기구를 설치해 청년 인재 육성을 여당과 함께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우 위원장은 “그동안 보면 선거할 때만 되면 외부에서 전문가들을 많이 영입해 공천을 한다. 물론 안착하고 성공하신 인재들이 많이 있지만, 당에서 오래 활동하면서 박탈감을 호소하는 인재들이 꽤 있었다”며 “당이 젊은 청년과 여성들, 인재들과 전문가들을 계속 발굴·육성하는 시스템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도 지난해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 당시 “청년의 참여를 체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청년 청와대, 청년 정부를 제도화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