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매출 적지만 성장성 확실…기존 사업 연계로 부가 수익 창출 가능해
현재 전기차 충전시장은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한다. 진입장벽이 낮은 만큼 사업을 영위 중인 업체들이 많아서다. 올해 상반기에 정부의 보조금을 받고 전기차 완속충전시설을 설치하는 기업만 25곳에 달한다. 선정되지 못한 기업까지 더하면 시장 참여자는 더 늘어난다. 그만큼 시장의 매출을 여러 기업이 나눠 갖고 있다. 현재 충전기 2000대가량을 보급한 한 전기차 충전기 제조업체의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부터 올해 1분기까지 3년 3개월 동안 전기차 충전사업으로 거둬들인 매출은 168억 원이다.
모빌리티업계 한 관계자는 “전기차 충전사업이 당장 큰 매출을 보장하는 사업은 아니다. 충전기 설치와 충전료가 주 수익모델인데 현재는 설치가 대부분 매출을 차지할 뿐 충전료로 돈을 벌기는 힘든 단계다. 충전기가 전기차 이용자들이 불편함을 느끼지 못할 만큼 보급됐을 때 충전료가 어느 정도 안정적인 수입원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돈이 얼마 되지 않는데도 대기업들마저 지난해부터 앞다퉈 전기차 충전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현재 전기차 충전시장에 진입한 중견·대기업은 SK, GS, LG전자, CJ, 카카오, 현대차, 롯데, 휴맥스, 한화 등이다. 대부분 기존 전기차 충전사업을 해오던 업체 지분을 인수하는 방식을 택했다.
대기업 참전 이유로는 가장 먼저 시장의 성장성이 꼽힌다. 전기차 충전 인프라 시장은 세계적으로 성장세가 가파르다. 시장조사기관인 프리시던스리서치가 지난해 11월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충전 사업 시장 규모는 2021년 70억 1000만 달러(약 9조 1480억 원)에서 2030년까지 646억 7000만 달러(84조 3943억 원) 규모로 9배 이상 뛸 것으로 예상된다. 2022~2030년 연평균 28% 성장할 것으로 점쳐진다.
해당 조사기관은 “전 세계 전기차 충전기 시장은 전기차 판매 급증, 전기차 채택을 육성하기 위한 정부 정책 확대 등으로 인해 향후 몇 년 동안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전기자동차 및 충전 인프라의 기술 발전, 초고속 충전기, 휴대용 충전소, 스마트 충전을 통한 부하 관리, 충전용 자동 결제 시스템, 양방향 충전 등은 전기차 충전기 시장의 성장을 촉진시킬 것”이라고 기대했다.
우리나라도 정부 지원에 힘입어 전기차 충전시설이 확충되고 되고 있다. 정부는 올해 전기차 충전시설 확대를 위해 605억 원을 예산으로 확보했다. 지난해 240억 원보다 2배 이상 많은 예산이다. 일요신문i가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환경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4월 30일 기준 전기차 충전기는 12만 5115대로 나타났다. 2016년까지 1603대에 불과했던 전기차 충전기는 2017년부터 6년 사이에 12만 대가 공급됐다. 정부는 2025년까지 전기차 113만 대를 보급하고 전기차 충전시설은 급속 1만 2000개소와 완속 충전기 50만기 구축을 목표로 삼고 있다.
전기차 충전시장이 당장 큰 매출을 보장하지는 않아 기업들은 자사와 계열사의 서비스와 전기차 충전 서비스를 연계해 시너지 효과를 내는 방안에 고심하고 있다. 모빌리티 서비스 기업들은 MaaS(Mobility as a Service) 실현을 위해 전기차 충전사업에 진출하고 있다. 본격적인 성장기에 들어서기 전에 전기차 충전사업자를 인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하는 셈이다. 카카오모빌리티는 급속충전기 공공시장 점유율 70%에 달하는 대영채비에 70억 원을 투자했고, 소프트베리로부터 API를 받아 전기차 충전기 정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LG전자는 기존의 △VS사업본부(인포테인먼트) △ZKW(램프) △LG마그나 이파워트레인(전기차 파워트레인) 등의 전장 사업과 계열사의 배터리 사업 등을 포함해 애플망고 인수로 전기차 시대를 위한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있다. 롯데는 모빌리티 계열사인 롯데렌탈과 지분 인수에 성공한 쏘카를 활용해 전기차 충전 결합 주차 서비스 외에도 자율주행 등 모빌리티 사업 생태계 조성을 공동 추진할 계획이다.
휴맥스도 올해 전기차 충전기 개발업체 제주전기자동차서비스 경영권을 확보했다. 앞서 대영채비, 이지차저(유지보수·제어센터), 피에스엔(개발), 차지인(시스템) 등에 이미 지분 투자 및 인수를 단행한 바 있다. 휴맥스는 2019년부터 다수의 충전사업 관련 업체를 인수하며 충전기 완제품 제조·생산부터 서비스 운영·관리시스템, 서비스망, 공사업까지 갖추고 있다. 충전사업과 함께 주차장, 카셰어링, 마이크로 모빌리티, 차량 관리 등 모빌리티 사업과 시너지 효과를 낸다는 전략이다.
기업들은 전기차 충전사업을 통해 이용자를 록인(lock-in)하는 방법도 고민 중이다. 전기차 충전의 최대 단점은 충전 시간이 길다는 점이다. 급속으로 차량을 충전해도 최소 15~30분은 기다려야 한다. 전기차 충전사업자들이 계속해서 충전 시간을 단축하려는 이유다.
기업들이 기존 사업과 연계해 충전시간을 활용한다면 단점을 장점으로 바꿀 수도 있다. 롯데의 경우 앞서 언급된 현대차, KB자산운용과의 협약으로 계열사의 백화점, 대형마트, 쇼핑몰 등 주요 유통시설을 초고속 전기차 충전기 설치 용지로 제공할 예정이다. 전기차를 충전하는 동안 이용자들은 롯데 계열사의 유통시설에서 쇼핑을 즐길 수 있어 부가 수익 창출에 도움이 되는 셈이다. 롯데는 2025년까지 전국에 초고속 충전기를 5000대 이상을 설치할 예정이다.
GS칼텍스는 주유소를 에너지 복합 스테이션으로 탈바꿈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2020년 ‘에너지 플러스’ 브랜드를 론칭하고 미래형 주유소 ‘에너지플러스 허브’를 공개한 바 있다. 기존 주유소에 있던 주유, 세차, 정비 외에도 전기·수소차 충전과 카셰어링, 마이크로 모빌리티 서비스, 드론 배송 등을 연계해 해당 공간을 모빌리티·물류 거점으로 만들고, 편의점과 F&B(Food & Beverage) 등 라이프 서비스 콘텐츠도 결합한다는 계획이다.
기존 멤버십 서비스에 전기차 충전 서비스를 포함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기업들의 멤버십 포인트는 이용자들이 사용하지 않을 경우 국제회계법상 기업 부채로 분류된다. 기업 입장에서는 이용자들이 포인트를 너무 안 쓰는 것도 문제기에 활용 방안을 계속해서 고심해야 한다.
운전자들이 내연기관차 대신 전기차를 선택하는 이유 중 하나는 연료비다.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에 따르면 전기차 연료비는 내연기관차 대비 30%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대기업들의 기존 멤버십에 전기차 충전 서비스를 포함하고, PLCC(Private Label Credit Card, 상업자 표시 신용카드) 발급 등으로 연료비 할인 혜택을 강화하면, 이용자 록인과 재무구조 개선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앞의 관계자는 “정부 차원에서 전기차 보급을 늘려가는 입장에서 전기차 충전시장의 성장은 필연적이다. 전기차 충전시장이 춘추전국시대인 상황에서 자본력 있는 기업들이 주요 거점에 얼마나 많은 충전시설을 확보해나가는지 지켜볼 대목이다. 그러면서 기업들이 기존 사업과 전기차 충전사업을 연계해 전기차 이용자들로 부가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지도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박찬웅 기자 roone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