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정권 입김 끝 한일·상업은행 합병해 출범…과점주주 매각 방식 도입 공적자금 97% 회수
#123년 역사를 지닌 우리은행
우리은행은 ‘대한천일은행’과 ‘한일은행’을 모태로 한다. 1876년 강화도 조약 체결 이후 조선 상인들은 일본 자본에 맞서 경제권을 지키고자 은행 설립을 주도했다. 상인들은 고종황제를 통해 황실 자금인 ‘내탕금’을 자본금으로 지원받아 1899년 ‘대한천일은행’을 설립했다. 하지만 1910년 대한제국 국권이 강제로 빼앗긴 뒤 1911년 ‘조선상업은행’으로 변경됐다.
조선상업은행은 해방 후인 1950년 한국상업은행으로 상호를 변경했다. 1956년에는 대한증권거래소(현 한국거래소)가 개장하면서 기업공개(상장·IPO)에 나섰다. 정부는 금융기관 경영합리화를 위해 시중은행을 점진적으로 민영화하기로 하고 1973년 2월 한국상업은행 정부 보유 지분을 매각했다. 시중은행으로서는 최초로 민영화된 셈이지만, 대주주가 정부에서 한국무역협회로 바뀌었을 뿐 관치·정치 금융에선 벗어날 수 없었다.
한일은행 전신은 ‘조선신탁주식회사’와 ‘조선중앙무진주식회사’다. 1932년 설립된 ‘조선신탁주식회사’는 부동산, 유가증권, 금전 신탁자금 운영전문 금융회사로서 기업 금융을 담당했다. 1936년 설립된 ‘조선중앙무진주식회사’는 서민금융, 소기업금융 등을 주로 담당했다. 이 두 회사는 1954년 은행법이 시행되면서 ‘한국흥업은행’이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됐다.
이승만 정부는 1950년대 중반 ‘금융의 민주화’ 명목으로 은행을 모두 기업인에게 넘겼다. 이 과정에서 ‘재벌 특혜’ 논란이 일기도 했다. 당시 이병철 삼성물산 사장이 1958년 한국흥업은행을 인수한 것을 비롯해 △조흥은행(민덕기 조선맥주 사장) △상업은행(이한원 대한제분 사장) △한국저축은행(정재호 삼호방직 사장) 등이 민영화됐다. 1960년 한국흥업은행은 ‘한일은행’으로 상호를 변경했다.
한일은행은 1960년 4·19 혁명과 1961년 5·16 군사 쿠데타 등을 거치며 다시 정부 소유가 됐다. 4·19 혁명 뒤 한일그룹 대주주인 삼성그룹은 탈세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그해 7월 이병철 삼성물산 사장은 태어나 처음으로 검찰에 출두해 조사를 받았다. 이듬해 5·16 쿠데타가 터지면서 이 사장은 제1호 부정축재자로 지명됐다. 이후 이 사장은 공장을 지어주고 주식을 정부에 헌납해 감옥행을 면했다. 그가 ‘기업가는 정치와 직접 인연을 맺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철벽의 금기’로 삼은 것도 이때부터로 알려졌다.
1980~1983년간 전두환 정부는 박정희 정부 정책을 이어받아 제2차 민영화를 실시한다. 한일은행을 포함해 대한재보험공사, 대한석유공사, 대한준설공사, 제일은행, 서울신탁은행, 조흥은행 등 7곳이 정부 보유 지분 매각을 통한 민영화 대상이었다. 민영화된 이후에도 한일은행은 △임원에 대한 인사권 △보수 △주식배당률 △대출정책 등을 정부에서 결정했다. 당시 재벌들은 은행들을 통해 대출을 손쉽게 받으면서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가 만연했다. 실제 1980년대 시중은행들은 산업합리화 정책금융을 지원하기 위해 연 3% 저리의 특별융자를 제공했다. 1980년 초 대출금리(17%)보다 5배 이상 낮았다.
#공적자금 23년 만에 회수 완료
1997년 한일은행과 한국상업은행은 IMF 외환위기 사태로 인해 대대적인 변화를 맞는다. 두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린 재벌 대기업들이 줄도산하면서 은행 손실도 눈덩이처럼 커졌고, 결국 매각·퇴출이 대대적으로 이뤄지게 됐다. 1998년 정부는 1차 금융구조조정을 단행한다. 당시 금융감독위원회는 경기, 대동, 동남, 동화, 충청 등 5개 은행을 시장에서 퇴출한다고 발표했다. 상업과 한일 등 7개 은행은 ‘조건부 승인’ 판정을 받고 기사회생하게 된다.
1999년 1월 한일은행과 상업은행이 정부 주도하에 대등 합병해 한빛은행으로 출범한다. 이를 위해 예금보험공사 등 정부 기관이 투입한 공적자금은 3조 2000억 원에 달한다. 하지만 한빛은행은 출범 2년 만에 공적자금을 거덜 내고 다시 위기에 내몰리게 된다. 2000년 11월 예금보험공사가 한빛은행의 자산과 부채를 실사한 결과, 그해 9월 15일 공시에서 2조 2452억 원이라고 발표했던 한빛은행 순자산은 마이너스(-) 1조 5000억 원이었다. 대우그룹 사태가 적자 배경으로 꼽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당시 아크월드 불법 대출 사건까지 터지면서 한빛은행 신뢰도는 추락했다.
결국 2000년 11월 정부는 한빛은행에 4조 5000억 원의 2차 공적자금을 투입한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평화은행(5700억 원) △광주은행(3742억 원) △경남은행(3500억 원) 등에 공적자금을 지원했다. 2001년 3월 공적자금을 지원받은 한빛, 경남, 광주, 평화 등 4개 은행과 우리종금을 자회사로 둔 국내 최초의 금융지주회사인 우리금융지주가 출범했다. 예금보험공사는 우리금융지주 지분 100%를 보유했다. 한빛은행 출범을 시작으로 우리금융지주를 정상화하는 데 들어간 공적자금은 총 12조 8000억 원에 달한다.
예금보험공사는 2003년 말까지 우리금융지주 지분을 50% 미만으로 축소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원매자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이에 블록세일 등을 통해 보유 지분을 조금씩 축소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2009~2010년 지분 7%(8660억 원), 지분 9%(1조 1606억 원)를 블록세일 방식으로 매각했다. 이 기간 예금보험공사 보유 지분은 처음으로 50%대로 줄어들었다. 2010~2012년 공적자금관리위원회는 우리금융지주 경영권 일괄매각을 재추진했지만 실패했다. 2013년 우리금융지주의 자회사 14개를 지방은행계열, 증권계열, 우리은행계열의 3개 그룹으로 나누어 분리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광주은행은 JB금융지주에, 경남은행은 BS금융지주에 매각됐다. 증권계열사인 우리파이낸셜은 KB금융지주에, 우리자산운용은 키움증권에, 우리F&I는 대신증권에 넘겼다. 농협금융지주는 우리투자증권·우리아비바생명·우리금융저축은행을 인수했다. 다만 우리은행 경영권 지분 매각은 여전히 막대한 매각 규모와 은행업에 대한 투자자들의 부정적 전망 등으로 인해 인수 주체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에 2015년 경영권 매각을 포기하고 이른바 ‘과점주주’ 매각 방식을 도입해 지분을 쪼개 팔았다.
2019년 정부는 우리금융지주 매각 로드맵을 마련해 2022년까지 예금보험공사 지분을 모두 매각한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11월 정부는 예금보험공사 지분(9.3%)을 팔면서 전체 공적자금(12조 8000억 원) 중 97%(12조 3000억 원)를 회수했다. 이에 따라 기존 최대주주인 예금보험공사는 지분이 5.8%로 축소돼 최대주주 지위를 상실했고, 우리사주조합(9.8%)과 국민연금(9.42%)에 이어 3대 주주로 내려앉았다.
#2022년까지 예보 지분 모두 매각
1998년 한빛은행 합병을 추진한 이헌재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이 “파벌 조성은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 만일 파벌싸움의 행위가 발생하면 금감위가 행정력을 동원해 직접 개입, 당사자를 조직에서 몰아내버리겠다”고 말했다. 이런 우려를 우리은행 내 최대 파벌인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은 행장과 부행장 자리를 번갈아가면서 맡는 일종의 ‘불문율’을 만들어서 갈등을 봉합해왔다. 그런데 2011년 상업은행 출신인 이순우 우리은행장과 한일은행 출신인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충돌하면서 불문율이 깨지기 시작했다.
2013년 우리금융지주 회장으로 취임한 이순우 전 회장은 2014년 상업은행 출신 이광구 우리은행장을 임명했다. 이 때문에 균형 인사에 대한 내부 목소리가 커졌다. 결국 2017년 11월 이광구 행장은 신입행원 채용 비리 문제로 사임했다. 이는 내부불만이 원인이 되어 불거진 것 아니냐는 추측도 제기되었다.
이광구 전 행장은 2015~2017년 고위 공직자나 주요 거래처 및 은행 임직원 등의 채용 청탁을 받고 청탁자들의 자녀 명단을 따로 만들어 부정하게 합격시킨 혐의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서류전형 또는 1차 면접에서 불합격권이었던 지원자 37명이 합격했다. 2020년 3월 대법원은 채용 비리 사건으로 기소된 이 전 행장에게 업무방해 혐의를 적용해 징역 8월 실형을 확정했다.
2018년 한일은행 출신인 손태승 글로벌부문장이 차기 우리은행장으로 선임됐다. 손 은행장은 2019년부터 우리은행장과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겸임했고, 2020년 3월 이후부터 현재까지는 우리금융지주 회장만 맡고 있다. 올해 한일은행 출신인 이원덕 우리은행장이 취임했다. 회장과 행장이 같이 모두 한일은행 출신인 것은 2008년 이팔성 회장·이종휘 행장 체제 이후 14년 만이다.
이런 가운데 올해 5월 우리은행 직원이 614억 원을 횡령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회적 파장이 일었다. 우리은행 본점 기업개선부에서 근무하던 한 직원은 2012년부터 2018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횡령했다. 은행 내부가 채용 비리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던 때 횡령이 이뤄졌고, 회사는 이 같은 사실을 10년이나 지나서야 알게 된 셈이다. 지난 7월 12일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은 우리은행의 지배구조부문 등급을 기존 B에서 C로 하향 조정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