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사기업 채용의 자유, 처벌할 법도 없어”…이광구 전 우리은행장은 ‘업무방해죄’ 실형
6월 30일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조용병 회장과 신한은행 임원들의 업무방해·남녀고용평등법 위반 등 혐의를 무죄로 판단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30일 “원심이 일부 지원자들의 부정합격과 관련된 업무방해 혐의와 성차별적 채용으로 인한 남녀고용평등법 등 위반을 무죄로 판단한 데에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
‘신한은행 채용비리 사건’은 조 회장과 윤 전 부행장을 비롯한 신한은행 인사부장들이 2013년 상반기부터 2016년 하반기까지 신한은행 신입사원 채용에서 일부 지원자들에게 특혜를 제공하거나 남녀 합격자 비율을 맞추려는 목적에서 점수를 임의로 조작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다. 이 과정에서 외부청탁 지원자와 신한은행 최고 임원·부서장 자녀 특별관리 명단이 만들어졌고, 남녀 합격자 성비를 맞추기 위해 154명의 서류 면접점수가 조작됐다. 서울동부지검 주진우 당시 부장검사는 조 회장 외 임원들이 면접위원의 공정하게 심사할 업무를 방해했다며 업무방해와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등 혐의를 적용했다.
#무죄 이유…‘사기업 채용의 자유’ ‘당시엔 공정 가치 이슈 되지 않아’
1심 재판부는 조 회장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조 회장이 신한은행장 재임 당시 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의 조카손자 등 특정 지원자 3명의 지원 사실과 인적 관계를 인사부에 알려 회사와 면접위원의 채용업무를 방해했다고 본 것이다. 다만, 남녀의 점수를 조작해 성비를 맞췄다는 혐의에 대해서는 증거부족으로 무죄가 선고됐다.
당시 법원이 인정한 사실과 검찰의 공소 요지를 살펴보면 이렇다. 조 회장은 2015년 4월 금감원 부원장보로부터 “아들 이 아무개가 신한은행 2015년 상반기 채용에 지원했다”는 말을 듣고 당시 인사부장에게 “이 씨의 전형별 합불 여부를 피드백해 달라”고 지시했다. 이에 이 씨는 ‘특이자’ 명단에 올라갔고 관리대상이 됐다. 그러나 그해 6월 있었던 실무면접에서 ‘면접 내내 산만하게 손을 모으고 움직이는 등 전반적으로 집중하지 못함, 말투, 자세 등이 은행원과 다소 거리감이 있어 10순위를 부여함, 매사 소극적인 자세,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 대고객 업무에는 적합하지 않은 인재로 판단됨’ 등의 이유로 탈락에 해당하는 DD등급을 받았다.
이미 탈락에 해당하는 점수였음에도 조 회장은 “다음 전형에서 잘 한번 살펴보라”고 지시했다. 이후 이 씨의 면접의견은 ‘큰 키의 호감형으로 창구적합도 양호, 입행준비 또한 양호한 점 고려, 외국어 역량, 금융권 준비사항 등을 고려하여 B로 평가하고자 함’으로 변경됐다. 결국 이 씨는 최종면접에 합격했다.
반면 2심은 조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부정통과자로 적시된 이들이 당초 불합격권에 있다가 사후 보정으로 합격된 사실이 인정되지만 사기업 채용의 자유가 보장되며, 부정통과자들의 기본 스펙도 나쁘지 않았을뿐더러 이러한 사후 보정을 조 회장 지시로 이뤄진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2심 재판부는 “비록 피고인이 특정 지원자의 서류전형 지원 사실을 당시 인사부장에게 전달했고, 채용팀으로서는 전형별 단계에서 ‘행장이 전달한 지원자’라는 사정을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 하더라도 조 회장의 의사표시를 ‘합격 지시’로 간주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또 “사건이 공론화되기 전에는 공정에 대한 시대적 가치가 채용절차에 반영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 않았다”는 점도 양형의 이유로 적시했다. 즉, 공정한 채용은 2017년 금융권 특혜채용 문제가 대대적으로 드러난 뒤에서야 이슈화된 것이고 그 이전까지 ‘채용과 인사’는 기업의 자율 영역으로 인식되곤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신한은행의 임직원 자녀 특별관리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도 재판 과정에서 드러났다. 피고인 A 씨는 법정에서 “(조 회장 이전) 은행장이 재직할 당시부터 특이자 및 임직원 자녀 등에 대한 전형별 합·불 결정을 O, X를 치는 방법으로 정확하게 결정하여 인사부장에게 이에 따른 이행을 지시하였고, 이러한 지시에 따라 인사부장은 수기로 기재된 특이자 및 임직원 자녀 명단과 함께 은행장의 결정 내용을 부행장에게 보고한 다음 위와 같은 은행장 결정 사항을 채용팀장 및 채용팀 과장 등과 공유하면서 합격자 사정 작업을 진행하였다”고 진술했다.
#‘채용비리처벌법’ 없다는데…우리은행 채용비리엔 ‘업무방해죄’ 적용
법조계와 시민단체의 비판을 받은 부분은 채용비리를 처벌할 수 있는 법이 없어 이를 범죄행위로 볼 수 없다는 법원의 논리였다. 2심 재판부는 “소수의 지원자들을 별도로 구분하여 취급한다는 것 자체가 일반 지원자들 입장에서는 특혜나 다름없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어 채용의 공정성에 심각한 불신을 초래할 수도 있는 부적절한 업무 관행”이라면서도 “위와 같은 명단의 작성·관리 그 자체를 금하거나 규제하는 별도의 입법이 없는 이상 위와 같은 명단 작성 및 관리행위 그 자체를 두고 위법행위라거나 범죄행위라고는 볼 수 없다”고 판시했고, 대법원도 “2심 법원이 법리를 오해하지 않았다”고 동의했다. 법원 논리대로라면 기본적 스펙을 갖춘 자라면 채용 청탁을 통해 부정하게 입사해도 현행법상 처벌이 불가능한 셈이다.
다만 앞선 판례들은 이와 유사한 구조의 채용비리 사건에서 업무방해 혐의를 적용해왔다. 대법원은 2020년 3월 채용비리 사건으로 기소된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에게는 업무방해 혐의를 적용해 징역 8개월의 실형을 확정한 바 있다.
이 전 행장은 2015~2017년 고위 공직자나 주요 거래처 및 은행 임직원 등의 채용청탁을 받고 우리은행 공개채용이 시작되자 청탁자들의 자녀 명단을 따로 만들어 부정하게 합격시킨 혐의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서류전형 또는 1차 면접에서 불합격권이었던 지원자 37명이 합격했다. 당시 검찰은 이 전 행장과 인사부 실무자들을 회사의 인사 업무를 방해했다며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했다.
당시 1심 재판부는 “채용 공정성이 기대됐지만, 사회 유력자나 고위 임직원을 배경으로 둔 것이 새로운 스펙이 됐다”며 “취준생들에게 좌절과 배신감을 주고, 우리 사회전반의 신뢰를 훼손했다”고 판시했고, 2심 재판부와 대법원도 하급심 판단이 옳다고 본 바 있다. 2019년 1월 법정구속된 이 전 행장은 재판 중 형기를 채우고 석방됐다. 한편 이날 조 회장과 함께 재판을 받은 직원들은 유죄를 선고받았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