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회의론’이라 할 수 있는 이 같은 경향을 두고 일각에서는 지난해 대선 기간 노 대통령이 겪었던 위기를 떠올리기도 한다.
노 대통령이 지난해 4월 국민경선을 통해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후 지지율이 10%대로 떨어졌다가 그해 11월 정몽준 국민통합 21 대표와의 후보단일화로 ‘기사회생’하기 전까지 여권 내외에서 광범위하게 형성됐던 ‘노무현 불가론’의 복사판이 아니냐는 시각이다.
비판의 소재는 다양하다. 일차적으로는 정권 출범 후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무기력한 대처와 교육행정정보화시스템(NEIS) 시행 여부를 둘러싼 혼선, 대북 정책 수정 움직임에 따른 전통적 지지층의 이탈 등 국정 전반의 난맥상이 꼽힌다.
여기에 “대통령직 못해 먹겠다는 위기감이 든다” “공산당이 허용될 때라야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가 될 수 있다”는 등 국정 최고지도자로서는 부적절한 발언 파문 등이 끊이지 않으면서 ‘자질론 시비’까지 더해지고 있다.
구주류측에서는 “혹시나 했지만 역시 노 대통령은 ‘대통령감’이 아니란 게 드러난 것 아니냐”고 비아냥대기까지 하는 상황이다.
당·정 관계에 대한 노 대통령의 태도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겉으로는 ‘당·정 분리’를 내세워 ‘불개입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만 이를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는 이들은 거의 없다.
구주류측은 “사실상 신당 작업을 총괄지휘하면서 ‘당에서 알아서 하라’고 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신주류 내에서도 ‘노심’(盧心)의 실체를 놓고 강경파와 온건파 간에 해석이 엇갈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를 두고 중도파로 분류되는 김상현 고문은 “과연 우리가 집권당이고 노 대통령이 민주당 소속 대통령이냐”고까지 한탄하고 있는 형편이다.
‘노무현 회의론’은 대상과 주체를 바꿔 바라보면 ‘노무현 위기론’에 다름 아니다. 국정과 당·정 관계가 삐거덕거리고 대통령의 국정철학과 리더십에 대한 비판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은 정권 담당자들 입장에서 보면 유·무형의 지지기반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얘기이기 때문. 문제는 이 같은 현상이 앞으로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감보다는 오히려 악화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는 점.
국정 시스템의 부재현상은 좀처럼 개선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민주당 내 신당 갈등은 이미 ‘분당’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노동계 등 이익집단의 집단행동도 6월에 피크를 이룰 것이며 앞으로 더 심화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노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비판행렬에 신·구주류가 따로 없다는 점. 구주류들이야 지난 대선 기간부터 노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워왔다는 점에서 이해가 되지만 ‘코드’를 같이한다고 평가받아온 신주류의 핵심을 이뤘던 인사들까지 서슴없이 노 대통령을 공격하고 있다는 점은 여권 내에 광범위하게 형성된 ‘노무현 회의론’의 반증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신주류 핵심그룹의 일원이며 민주당내 대표적인 ‘기획통’인 이강래 의원은 노 대통령의 지도력을 “감성적 리더십”이라고 혹평했다.
지난 김대중(DJ) 정권 시절 국정원 기조실장과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그는 “(노 대통령이) 권위주의를 포기하는 과정에서 권위마저도 버리려 하는 것이 문제”라며 ‘가벼운 언행’을 꼬집은 후 “감성적 리더십의 흠결은 이성적 정당화를 생략한다는 점이며, ‘코드’를 강조하며 비주류 정체성을 고수하는 저항성은 국정운영상 폐쇄성과 아마추어리즘에서 못 벗어나도록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의원은 또 “노 대통령이 한계를 꿰뚫어 보고 국정기조를 ‘우향우’했더라도 스무드하게 했다면 지금 같은 지지율 급락과 혼란을 피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현 정권이 인적 자원의 부족과 경험 미숙으로 보수적인 관료집단의 도움을 받아 개혁 프로그램을 만드는 등 보수세력과 타협할 수밖에 없는데 이를 이해하지 못해 실패를 자초했다는 것이다.
▲ <벌써 내리막길?> 지난 4월 노무현 대통령이 청남대에서 자전거를 타면서 여유를 즐기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특히 DJ가 6·15 3주년을 맞아 대북송금특검 수사에 대한 거부감과 남북관계 훼손에 대한 우려감을 직접적으로 표시하면서 노 대통령의 입장이 더욱 난처해졌다.
이협 최고위원 같은 이는 “지난 대선에서 호남에서 97% 이상이 노 대통령을 지지한 이유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당선되면 DJ는 감옥간다’는 것이었다는 유권자들이 많다”며 DJ를 겨냥해 나아가고 있는 특검 수사를 원색적으로 비난했고, 구주류의 정균환 원내총무도 “노 대통령 취임 1백일이 지난 지금 햇볕정책이 실종 위기에 처해 있으며 원칙이 훼손되고 성과마저 폄하되고 있다”며 노 대통령을 정면비판했다.
신주류와 중도파 의원들도 노 대통령의 특검 수용 결정이 결국 남북간의 화해협력 무드에 찬물을 끼얹었다며 비판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김근태 김영환 설훈 신계륜 의원 등 30명의 민주당 의원들은 이달 초 아예 특검을 비판하는 공개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김근태 의원은 “특검 수사가 이런 식으로 진행되면 어렵게 쌓아온 남북간의 신뢰와 협력관계를 훼손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고, 김영환 의원은 “우리 당의 지지층 중에는 대북 포용정책이 역사에 남는 업적이라고 보는 사람이 다수인데 특검법을 내세운 수사결과에 대해 그들이 가지는 심정은 참담함 그 자체”라고 지적했다.
신당에 대한 노 대통령의 태도도 ‘노심이 뭘까’라는 궁금증 차원을 넘어 ‘무책임하다’는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중도파의 한 의원은 “분당 가능성이 가시화되는 등 당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는데 최고지도자인 노 대통령이 신당을 둘러싼 당내 갈등을 남의 집 불 구경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당정 분리’ 운운하지만 노 대통령은 우리 당이 배출한 대통령임에 틀림없지 않느냐. 지금은 ‘당에서 슬기롭게 해결하라’고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라 맨 앞에 나서서 ‘나를 따르라’고 해야 할 때다.
지금이라도 노 대통령이 신·구주류 중진들을 청와대로 불러 서로 오해하고 있는 부분을 불식시키려 노력한다면 분당 위기는 피할 수 있을 텐데. 도대체 (노 대통령이) 정국 전반에 대한 계획과 전략을 갖고 있기는 한 것인지 의문스러울 정도다. 이러다간 ‘신당 놀음’에 당이 풍비박산날 지경”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신주류 내에서도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노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와 신당 지지도가 큰 폭으로 동반하락하고 있는 데 대해 불안해 하며 노 대통령의 어정쩡한 태도를 비판하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온건파 한 의원은 “솔직히 노 대통령의 국정운용에 대한 지지도가 50%를 겨우 넘고 신당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절반을 넘는 상황이 되면서 신당에 회의적인 견해를 밝히는 의원들의 수가 갈수록 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내년 총선에서 신당 다툼에 한나라당만 어부지리를 얻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높아가고 있다.
이제는 신당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결론을 내야 하며 이는 전적으로 노 대통령의 몫이다. 정대철 대표와 김원기 고문으로는 현 상황을 수습할 수 없음이 확인된 것 아니냐. 만약 노 대통령이 계속 ‘불개입’ 입장을 고수한다면 신주류의 위기, 민주당의 위기 차원을 넘어 노무현 정권 자체가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준원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