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키자카 연기 위해 90kg까지 늘려…“납작한 ‘빌런’ 아닌 입체적 ‘안타고니스트’ 보여주려 노력”
“저도 저라는 사람을 왜 (와키자카로) 캐스팅해주셨을까 의문이었어요(웃음). 한편으로는 감독님의 캐스팅 자체가 전작인 ‘명량’과 가장 달랐던 지점이었다고 생각해요. 이순신 장군을 맡으신 박해일 선배님도 선배님의 올곧은 자세, 후배들에게 대하는 눈빛들을 보면 굉장히 지혜로우신 분이라는 게 느껴지거든요. 전작과는 다른 이런 캐스팅이 ‘한산: 용의 출현’에서 더 신선하고 파격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나 싶어요.”
김한민 감독의 ‘이순신 3부작’의 두 번째 작품인 ‘한산: 용의 출현’은 전작인 ‘명량’(2014)보다 시대적 배경에서 5년 앞서는 한산도대첩을 다룬다. 같은 인물의 같은 전쟁이라는 큰 틀은 동일하지만, 각각의 해전마다 그 인물이 갖는 속성을 달리하는 방법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명량’에서의 이순신과 와키자카가 용장·맹장(용맹한 장수)의 면모를 보여준다면 ‘한산: 용의 출현’에서의 두 명은 지장(지혜로운 장수)의 색채가 더 강한 인물로 그려져 각자의 진영에서 세밀하게 날을 세운 지략전을 펼친다.
“캐스팅이 된 뒤에 ‘명량’을 봤어요. 조진웅 선배님께 자문을 구할까 생각하다가 그만뒀죠. 뭔가 동물적으로 느껴지는 게 있었거든요. 제가 여쭤본다면 선배님께서 당연히 설명을 잘 해주시고 여러 가지 노하우를 알려주시겠지만 와키자카뿐 아니라 김한민 감독님이나 ‘명량’의 전 스태프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어요. 내가 체험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거든요. 오히려 그렇게 해서 도움이 더 많이 된 것 같아요.”
변요한은 자신만의 와키자카를 완성하기 위해 몇 차례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했다. 그중 하나는 와키자카의 외적 이미지를 구축하는 일이었다. 성웅 이순신에 맞선 적군의 장수로서 단순하고 납작한 ‘빌런’의 모습만으로 스크린에 서고 싶지 않았다. 신경질적이고 날카로운 지략가로서의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 살을 뺐다가 다시 찌우기도 하고, 호락호락하지 않은 장수의 아우라를 살리기 위해 더 거칠고 야성적인 면모가 돋보이게 수염을 덧붙였다. 이 과정에서 배우인 자신의 의견이 꽤 들어가게 됐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처음에 ‘명량’과는 이미지적으로 반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해서 다이어트를 쫙 해서 갔는데 갑옷이 안 맞는 거예요. 제가 생각했던 와키자카를 연기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그때 제가 굉장히 보편화된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역사적인 사실을 기반으로 한 빌런 캐릭터를 그냥 닮아가려고 하고 있다는. 그래서 의식은 갖되 다르게 연기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단편적인 빌런이 아니라 입체감과 풍부한 감정을 넣으려 했어요. 와키자카의 캐릭터성을 잡는 데 갑옷이 결정적인 계기가 된 셈이죠. 그때부터 살을 찌우고 마지막으로 쟀던 최대 몸무게가 89kg이었던 거 같아요. 한 끼 굶으면 다시 내려갔다가 또 먹으면 90kg까지 찌기도 하고(웃음).”
성격이 예민한 편이라 중요한 일이 있으면 잘 먹지 못한다는 변요한에게 아무리 연기를 위해서라지만 억지로 살을 찌우는 일이 고되진 않았을까. 증량에 대한 질문은 이미 많이 받았다는 듯 웃음을 터뜨린 그는 “다행히 태양인이라 원래 체질 자체가 살이 쉽게 잘 찐다”고 말했다.
“고기도 엄청 좋아하거든요. 이번에 와키자카 역을 위해 고기를 엄청나게 많이 먹었어요. 맥주도 그냥 맥주가 아니라 흑맥주를 벽 바라보면서 마시고, 그러면서 일본어 대사는 계속 읊조리고 있고…. 그러다 보니 몸이 금방 두꺼워지더라고요. 그때 갑옷이랑 투구 무게가 25kg 정도 됐는데 어느 순간 그 무게감에 너무 익숙해져서 제가 왜군이라는 것도 까먹을 정도였어요(웃음). 그렇게 캐릭터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왜군을 이끄는 장수 역할이었지만 투구와 갑옷을 벗고 나면 변요한은 막내 중의 막내였다. 가토 요시아키 역의 김성균, 구로다 간베에 역의 윤제문, 마나베 사마노조 역의 조재윤 등 짧고 굵게 등장하는 왜군 배우들이 모두 나이로나 연차로나 형들이었기 때문이라고. 그러다 보니 세트장 밖에서는 막내답게(?) 형들의 리드를 기다리는 역할이었다. 주로 횟집에서 이뤄졌던 식사 자리에서 특히 그랬다.
“제가 아마 왜군 진영에서 막내 중 두 번째였을 거예요(웃음). 사실 제가 리더로서 뭘 하는 걸 잘 못하거든요. 그래도 잘하진 못하지만 묻어 나오는 게 있진 않았을까요? 저도 선배님들을 보면서 많이 배운 게 있으니까요(웃음). 저희들끼리는 단결성이 있어서 굉장히 좋았어요. 저희가 서로 약속한 게 있었는데 ‘촬영이 끝나면 서로 작품 얘기하지 않기’였어요. 서로의 텐션을 지키고 싶었거든요. 촬영 끝나고 밥을 먹어도 맛있게 먹고 작품 얘긴 하지 말자, 작품 고민은 돌아가서 하자고. 그런 부분이 새롭게 느껴지는 작업이었던 거 같아요.”
그렇게 촬영장에서 무엇이든 새로운 것을 느끼고 배운다는 변요한은 종종 “이 직업을 오래하지 못할 것이란 걸 안다”는 말을 해오곤 했다. 작품이 하나 끝날 때마다 그 여운을 정리하기 위함인 것 같으면서도 자신의 한계를 명확하게 지적하는 것처럼 들린다는 점에서도 그 생각의 근원을 궁금케 하는 말이었다. 이번 ‘한산: 용의 출현’에서 첫 안타고니스트(주인공과 적대하거나 대립하는 인물) 캐릭터를 성공적으로 완성한 뒤에도 자기 만족감보다는 다음 스텝을 걱정하게 된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이전보다 좀 더 안정되고 발전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저는 매순간 노력하고 저를 갈아 넣으려고 최선을 다 해요.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숙명을 알거든요. 그래서 무조건 숙제를 풀듯이 하려고 했고요. (연기를) 오래 할 수 없을 수 있다는 건 제가 독립영화 일을 처음 할 때부터 버릇처럼 하는 말인데, 제가 너무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저는 저라는 깜냥이 체크가 되니까요. 촬영할 때도 매 신이 끝날 때마다 멍 때리면서 ‘다음 신은 어떻게 풀지?’ 하고 있고(웃음). 물론 성취감을 느끼지만 이런 말이 습관처럼 나오는 이유는 아마도 제 자신이 인격체로서 확장되고 싶다는 마음 때문인가 봐요. 그래도 제가 그런 말을 계속 하긴 하지만, 예전엔 그게 그냥 막연하게만 느껴졌다면 지금은 뚜렷한 형체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게 다른 점인 것 같아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