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 관람료가 OTT 한 달 구독료보다 비싸…관객들 ‘극장용 영화’와 ‘비극장용 영화’ 구분 시작
#‘한산’의 KO승
‘외계+인’이 가장 먼저 포문을 열었다. ‘타짜’, ‘도둑들’, 암살’ 등 단 한 차례도 실패가 없던 최동훈 감독의 신작이다. 게다가 제작비만 330억 원이 투입됐고, 동시 제작된 2부까지 합치면 700억 원을 쓴 대작이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한 수준이다. 8월 9일까지 모은 관객은 150만 명이다. 간신히 150만 고지에 턱걸이했다. 좋지 않은 입소문이 돌며 ‘외계+인’은 예매율부터 흔들렸다. “1위에 올랐다”고 하지만, 같은 날 개봉한 애니메이션 ‘미니언즈2’가 턱 밑까지 추격했다. 결국 ‘미니언즈2’에 1위 자리를 내줬고, 현재 관객수 역시 201만 명 모은 ‘미니언즈2’가 앞선다.
‘외계+인’이 주춤하는 사이, 한 주 차이로 개봉된 ‘한산:용의 출현’(감독 김한민)이 빠르게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9일까지 ‘한산’이 모은 관객수는 489만 명으로 주중에 500만 고지를 밟고 주말에는 600만을 향한 순항을 시작한다. 배우 박해일을 주연으로 내세운 ‘한산’은 김우빈·류준열·김태리의 ‘외계+인’, 송강호·이병헌·전도연의 ‘비상선언’, 이정재·정우성의 ‘헌트’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티켓파워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연출자인 김한민 감독은 영리했다. 캐릭터의 매력보다는 해전에 집중하며 볼거리를 선사했다. “‘한산’의 진짜 주인공은 거북선”이라는 평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배 한 척 띄우지 않고 VFX로 완성했다는 막판 50분의 해전 장면은 역대 한국 영화 최고 흥행 기록을 세운 전편 ‘명량’의 수준을 뛰어넘는다.
‘한산’의 기세 속에 ‘외계+인’은 퇴장 수순을 밟았고, 한 주 후 ‘비상선언’(감독 한재림)이 공개됐다. 개봉 첫날 ‘한산’을 밀어내며 박스오피스 1위 자리에 오른 ‘비상선언’은 호기롭게 첫발을 내디뎠으나 이후 작품에 대한 호불호가 엇갈리며 흥행세가 주춤했다. 개봉 1주일째인 9일까지 모은 관객은 157만 명. ‘외계+인’의 기록은 이미 뛰어넘었으나 현재 예매율 추세라면 ‘한산’을 따라잡긴 어렵다. 특히 극 후반부의 신파적 요소, 세월호 및 팬데믹 사태를 떠올리게 만드는 설정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또한 좋은 배우들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 연출 역시 아쉽다는 반응이 적잖다.
이런 상황이 10일 개봉한 ‘헌트’에 호재로 작용했다. 이정재의 감독 데뷔작이자 올해 5월 칸국제영화제에도 초청받았던 ‘헌트’는 이제 ‘한산’과의 경쟁에만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게다가 ‘한산’이 이미 500만 명에 육박하는 관객을 모았고 예매율도 하락하는 추세임을 감안하면 ‘헌트’가 여름 성수기 후반부를 장악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개봉 직후 입소문이 잘 나는 게 중요하다.
#‘극장용 영화’만 본다(?)
여름 대전 중간 성적표를 보면서 충무로 관계자들은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외계+인’이 150만에 그칠 영화는 아니지 않나”라며 고개를 갸웃하는 이들도 많다. 왜일까? 최동훈 감독과 김우빈, 류준열 등의 이름값만으로도 300만 명 정도는 충분히 모을 작품이라는 것이 중론이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팬데믹 이전’ 시장 규모 기준의 예상이었다.
앞서 5월 개봉된 ‘범죄도시2’의 성공은 착시 효과를 가져왔다. 1269만 명을 동원하며 단숨에 1000만 시장을 부활시켰다. “다시금 관객들이 극장을 찾을 것”이라는 희망을 안겼다. 하지만 이것이 ‘희망 고문’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팬데믹 이전은 관객들이 여러 영화를 동시에 선택하는 시장이었다. 하지만 극장에 가지 않던 2년의 시간 동안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통해 콘텐츠를 즐기는 분위기가 일상화됐다. 관객 입장에서는 OTT 플랫폼을 통해 볼 수 있는 콘텐츠보다 더 큰 재미를 주지 않는 영화를 보기 위해 더 이상 지갑을 열지 않는다. 여러 영화 가운데 “가장 재미있다”는 작품 한 편만 골라본다는 의미다.
7월 20일 ‘외계+인’이 개봉된 이후 3주 동안 ‘한산’, ‘비상선언’, ‘미니언즈2’ 등이 모은 관객은 도합 약 1000만 명이다. ‘범죄도시2’가 뚜렷한 경쟁작이 없던 시기, 한 달여에 걸쳐 1269만 관객을 모은 것을 고려할 때 비슷한 관객 수준이라 볼 수 있다. 쏠림현상이 발생해 1000만 영화가 탄생하긴 했지만 아직 시장 상황이 팬데믹 이전 같은 호황은 아닌 셈이다.
팬데믹 기간 영화관이 무려 3차례 관람 요금을 인상한 것 역시 반감으로 작용했다. 영화 한 편 관람은 OTT 플랫폼 한 달 구독료보다 비싸다. 관객 입장에서는 경중을 따질 수밖에 없다. 대규모 해전 장면을 거대한 스크린으로 보는 쾌감이 큰 ‘한산’은 극장에서 보지만, 다른 영화들은 상대적으로 덜 선택하는 이유다. 향후 관객들은 ‘극장용 영화’와 ‘비극장용 영화’를 더 철저하게 구분할 공산이 크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