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김기현·나경원 본격 몸풀기, 이준석 도전 여부 관심 속 유승민 적합도 1위…후보연대 등 변수 남아
이번 전당대회는 윤석열 대통령 임기 초반이라 ‘윤심’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대세다. 하지만 주호영 비대위 활동 성공 여부나 후보 간 연대 가능성 등 의외의 변수가 불거질 수도 있어 대세론은 언제든 흔들릴 수 있다.
#간보기는 사라졌다
입이 무겁고 신중하기로 소문나 ‘간철수’라는 별명까지 붙은 안철수 의원이 의외로 가장 먼저 당권주자로 몸을 푸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안 의원은 국민의힘이 비대위 체제로 전환한 8월 9일, 본인이 주최한 연금개혁 토론회 후 ‘당권 도전할 의사가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내 역할이 있다면 그 역할을 마다하지 않겠다”고 힘을 줬다. 그동안 공개적으로 전당대회 출마 의사를 밝히지 않았던 그가 사실상 당권 도전을 공식화한 것이다.
안 의원은 이날 연금개혁 토론회에서 “(연금개혁은) 정치권에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공론화를 거쳐서 구체적 제도화에 전 국민이 합의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안 의원이 제도 개혁 관련 토론회를 열면서 정책행보를 계속하는 것은 자신이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 출신임을 일깨우면서 ‘윤심’을 자신에게로 끌어당기는 것은 물론, 유능한 지도자 이미지를 강화시키는 포석으로 읽힌다.
김기현 의원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김 의원은 당권 도전을 공식화하진 않았지만 당내에서는 출마 확정으로 보는 분위기다. 앞서 김 의원은 지난 6월 공부모임 ‘혁신24, 새로운 미래’를 발족하는 등 당대표 선거운동으로 읽히는 활동을 해왔다.
다만 김 의원 측은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강연자로 참석할 예정이었던 8월 24일 ‘혁신24, 새로운 미래’ 공부모임 잠정 취소를 고려하는 등 속도조절을 하고 있다. 비대위 체제 전환으로 당권 경쟁이 개시된 상황에서 자칫 너무 앞서 세몰이를 하다 엉뚱한 유탄을 맞을 수 있다는 분석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김 의원은 대신 다른 의원이 주최하는 공부모임에 참석하거나 지역을 방문해 청년과의 만남을 진행하는 등 외부 활동을 계획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원외에서는 나경원 전 의원이 재도전에 나설 것으로 확실시된다. 나 전 의원은 지난해 6월 전당대회에서 당심에서는 이긴 것으로 나왔지만 일반 여론조사가 포함된 최종 결과에서 이준석 대표에 밀려 고배를 마신 바 있다.
나 전 의원은 지난 10일 YTN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와 인터뷰에서 차기 당권 도전과 관련해 “사실 지금까지는 적극적으로 고민하지 않았지만 지금부터는 고민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정치권에서는 이를 당권 도전 공식화로 해석한다. 나 전 의원은 이날 방송에서 최근 지지율이 급락하는 윤석열 대통령과 각을 세우는 모습도 보였다. 윤 대통령 지지율 하락세에 대해 “인사가 만사라고 하는데 상당히 ‘망사’였던 게 맞다. 대표적인 게 박순애 전 교육부 장관”이라고 지적한 것.
주호영 비대위가 초단기가 아닌 혁신형 비대위로 자리매김해 전당대회를 내년으로 가져갈 경우,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당대표 선거에 나설 가능성도 점쳐진다. 원 장관은 장관 역할을 하면서도 유튜브 ‘원희룡TV’까지 하는 등 대외 이미지 관리에 열심이다. 원 장관과 함께 내각에서는 권영세 통일부 장관도 주자로 거론되지만 정치권에서는 일단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권성동 원내대표와 정진석 국회부의장도 차기 당대표 후보군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권 원내대표는 ‘윤핵관’이라는 점이 부담이고, 정 부의장도 비슷한 위치여서 운신의 폭이 넓지는 않다.
#이준석 대표 명예회복 나설까
당 중앙윤리위원회로부터 중징계를 받은 이준석 대표가 명예회복을 노리며 차기 전당대회에 나서거나 대리 후보를 민다는 시나리오도 정치권에서 나온다. 대리 후보로는 이 대표와 가까운 유승민 전 의원이 거론된다.
실제 국민의힘 차기 당대표 적합도 조사에서 유승민 전 의원이 1위를 기록한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여론조사기관 한길리서치가 쿠키뉴스 의뢰로 지난 8월 6~8일 사흘간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유승민 전 의원이 ‘차기 당대표로 적합하다’는 응답이 23.0%를 나타냈다. 이어 이준석 대표가 16.5%, 안철수 의원 13.4%, 나경원 전 의원 10.4%, 주호영 비대위원장 5.9%, 김기현 의원 4.4%, 정진석 의원 2.6%, 권성동 원내대표 2.5%, 장제원 의원 2.2% 등의 순이었다(자세한 사항은 여론조사기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보수층에서는 이 대표가 19.1%로 유 전 의원(12.2%) 등을 오차범위 밖에서 앞섰지만 유 전 의원은 중도층에서 30.4%(이준석 16.5%) 진보층에서 33.7%(이준석 13.2%)로 이 대표를 앞섰다.
유 전 의원 역시 지난해 대선 경선 패배 이후 한때 정계 은퇴를 결심했지만 마음을 되돌린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6·1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 당내 경선에 참여한 것이나 최근 저서를 내고 여러 사안에 대해 활발히 의견을 내는 등의 행보를 볼 때 정치를 계속할 의사가 확고하다는 것이다.
유 전 의원보다 나이가 많은 홍준표 대구시장이 대선 경선 패배에도 불구하고 지난 지방선거를 통해 대구·경북(TK)의 대표주자로서 정치적 보폭을 넓혀가고 있는 것도 유 전 의원에게 큰 자극제가 됐다는 후문이다.
#목표는 박근혜 모델?
이명박 전 대통령 재임 막바지였던 2011년 하반기, 당시 여당이던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은 휘청거렸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주민투표 강행 여파로 인해 사퇴하고, 뒤이은 재보궐선거에서 시장직을 야권 단일주자로 나선 박원순 후보에게 내주자 여당 지지층이 충격에 빠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재보궐선거 당일 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접속을 막는 사이버테러, 이른바 ‘디도스 공격’이 일어났고, 그 사건에 한나라당이 연루돼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여당은 걷잡을 수 없는 위기에 직면했다.
최근 국민의힘의 모습처럼 그해 12월 8일 남경필·원희룡·유승민 최고위원이 사퇴했고, 다음날 홍준표 대표까지 물러나면서 지도부는 붕괴됐다.
이런 상황에 구원투수는 ‘선거의 여왕’으로 불리던 박근혜 당시 의원이었다. 그는 비대위원장을 맡으면서 당권을 장악했고 당명까지 새누리당으로 바꾸면서 친이계가 장악했던 당을 친박 색깔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2012년 총선을 앞두고 현역 컷오프 25% 원칙을 내세워 친이계를 대거 탈락시켰다.
이명박 청와대 관계자들까지 나서 “너무 심한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를 냈지만 박근혜 비대위원장에게는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총선을 준비하면서 친이에서 친박으로의 당내 세력 전이에 성공한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마침내 2012년 총선에서 과반(152석)을 달성하면서 선거 승리를 이끌어냈고, 차기 대선주자로서 입지를 확고히 했다. 이어 그해 연말 야당의 문재인 당시 후보를 누르고 청와대 입성에 성공했다.
그때를 기억하는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국회의원 공천권은 확실한 당 장악력을 갖는다”며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 여러 차례 전당대회에서 내내 친이계에게 밀렸던 박 전 대통령은 비대위원장직을 쥐면서 당의 헤게모니를 장악했고, 대선까지 쉽게 달렸는데 새로 선출될 이번 당 대표도 이런 코스를 노리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윤심’ 대세론 먹힐까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초반 치러지는 전당대회니만큼 ‘윤심’이 크게 작용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당내에서는 친윤그룹의 지지가 새 당대표를 결정지을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당내 친윤계 의원들이 주축이 돼 추진하는 ‘민들레(민심 들어볼래)’ 모임이 8월 하순 본격 출범할 예정인 것만 봐도 윤심이 당내에서 매우 강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민들레’는 재정비를 통해 민들레가 아닌 다른 이름으로 간판을 바꾸고 본격 활동에 나설 방침이다. 참신성을 높이려는 시도로 읽힌다. 8월 중순 기준 의원 57명이 가입서를 냈고, 추가로 가입 의사를 전하는 의원도 적지 않다고 모임에 참가 중인 의원들이 전했다.
하지만 당내 친윤그룹이 당권주자 중 누구를 지지할지는 아직 안갯속이다. 의리를 중요시하는 윤 대통령 입장에서 윤석열 정부 공동 창업자 안철수 의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겠지만, 쉽게 장담할 수 없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행정부가 잘 돌아가기 위해서는 입법부가 잘 받쳐줘야 하기 때문에 여당 대표는 대통령과 정책 결정을 두고 소통이 가능해야 한다”며 “특히 성과를 내야 하는 대통령 임기 초반에는 더욱 그러하기에 당내 주력인 친윤그룹이 키를 쥐고 주도적 역할을 하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심’이 세다고 하지만 다른 변수가 작용할 수도 있다. 우선 주호영 비대위가 혁신비대위 역할까지 해내면서 성공을 거두고, 덩달아 윤 대통령 지지율까지 큰 폭으로 반등시킨다면 국민의힘 최대 지지기반 TK 출신인 주 위원장에게도 새로운 기회가 열릴 수 있다.
후보 간 연대도 관심거리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전당대회에서 주호영-나경원 단일화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결국 실패, 신예 이준석 대표에게 승리를 내줬던 경험이 있다. 이에 압도적 강자가 없다면 연대에 성공하는 후보가 당대표 자리에 오를 가능성이 충분하다.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