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 유병호 진두지휘, 문 정부 넘어 지자체 감사로 이재명 겨냥 관측…민주당 “표적 감사” 반격 준비
“감사원은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지원하는 기관인가.”
지난 7월 2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이 최재해 감사원장에게 던진 질문이다. 이 질문에 최 원장은 “(대통령 국정운영을) 지원하는 기관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 답변의 정치적 여파는 컸다.
더불어민주당은 곧바로 최 원장 사퇴 촉구 결의안을 발표했다. 결의안에 따르면 민주당은 “최 원장이 감사원을 대통령 국정운영을 지원하는 기관으로 격하시켜 감사원 직무상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며 헌법과 감사원법 정신을 정면으로 부정했다”고 비판했다. 이어지는 결의안 내용은 다음과 같다.
“최재해 감사원장은 직권을 오·남용해 전 정부에서 임명한 한국개발연구원장, 국민권익위원장, 방송통신위원장 등의 자진사퇴 압박에 감사원을 동원했다. 최 원장은 대통령 공약 이행을 위한 고위공직범죄수사처 감사 착수 검토, 국가안보실의 개입 및 기획 의혹이 제기된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 번복 건에 대한 감사 진행 등 전 정부 국정운영 전반에 대한 흠집내기에 감사원을 내몰고 있다.”
결의안엔 “최 원장은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의 각종 전횡을 방관·방조하고 있어 감사원의 정상적이고 안정적인 운영 또한 기대하기 어렵다”는 내용도 담겼다.
감사원 칼날은 전방위적으로 전 정부를 겨누고 있다. 윤석열 정부 초기 최전방 공격수 역할을 전격 수행하고 있다.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과 관련해 감사원은 국방부와 해경을 비롯해 국가안보실·국가정보원·해양수산부·통일부 등 9개 정부 부처·기관에 대한 실지감사(현장감사)에 착수했다.
감사원은 지난 3월 9일 대선 당시 코로나19 확진자 투표 시간에 투표용지를 소쿠리에 걷어 기표함을 대신한 이른바 ‘소쿠리 투표 논란’과 관련해 6월부터 자료수집 등 본격적인 감사 절차에 돌입했다. 감사원은 7월 4일 보도자료를 통해 “회계 집행뿐 아니라 선거관리 사무 전반에 대해서도 신속하게 강도 높은 감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치권과 관료 사회에선 헌법상 독립기관인 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감사는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 밖에도 방송통신위원회, 국민권익위원회, 행정안전부, 병무청 등에 대한 전방위 감사가 이뤄지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 감사 과정에선 문재인 정부 당시 임명된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의 반발이 거세다. 전 위원장은 지난 10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권익위 직원들에 대한 괴롭히기식 불법감사를 당장 중단하라”고 밝혔다.
전 위원장은 “‘상습지각 등 제보’라는 억지 이유로 시작된 감사가 부위원장들과 수행원들 근태, 권익위 직원과 권익위 업무 전반에 대한 자료 제출 요구로 이어지고 있다”며 “감사원 감사는 처음부터 고래 잡기를 작정하고 망신주기나 겁박으로 사표를 내도록 압박하거나 임기 포기를 종용하는 사퇴 겁박용 표적감사”라고 주장했다.
심지어 감사원 내부 일각에선 지자체에 대한 고강도 감사가 준비 중이라고 전해진다. 정치권에선 거대 야당 당권을 노리고 있는 이재명 의원을 비롯한 지자체 출신 정치인을 향한 감사원의 공습이 이뤄질지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민주당은 감사원법 개정을 위한 움직임 착수하는 등 반격을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이형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7월 27일 헌법기관인 중앙선관위와 독립기관인 국가인권위가 감사원 직무감찰 제외 대상임을 명문화하는 감사원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의원은 “감사원이 헌법에 따라 설치된 중앙선관위에 대한 전례없는 직무감찰을 강행하고 있다”며 “감사원 직무감찰 계획 발표는 지방선거를 3개월 앞둔 3월 선관위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업무보고 요구를 거부한 후 이뤄져 보복감사 의혹마저 일고 있다”고 했다. 이 의원은 “헌법기관인 선관위와 독립기관인 국가인권위원회를 감사원 직무감찰 대상에서 제외하는 게 삼권분립 취지에 부합한다”며 “감사원법 개정을 통해 이런 부분을 명문화해서라도 감사원 정치감사를 막겠다”고 했다.
여야 갈등의 한복판에 선 감사원은 내부 잡음으로도 어수선하다는 후문이다. 지난 2일 감사원은 연공 서열과 기수 문화를 과감하게 파괴하는 인사를 단행했다. 국장급 5명, 3급 승진 8명 등에 대한 인사를 발표했다. 감사원 국장 중 최선임이 줄곧 둥지를 틀어왔던 핵심보직 산업금융감시국장엔 40대 최재혁 인사혁신과장을 발탁해 ‘파격’의 의미를 더했다. 다른 인사에서도 연차나 기수를 뛰어넘는 양상이 나타났다.
감사원은 “지금껏 국장 및 과장 직위는 직제순이 반영된 보이지 않는 서열이 존재해왔다”며 “직급과 연차가 높아질수록 앞순위 직위로 자연스럽게 이동하는 상향식 보직 부여가 관례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인사에선 모든 연공서열 요소를 배제했다. 제로 베이스에서 오로지 간부 개개인의 강점과 약점, 과거 감사 경험과 성과, 국가 및 조직 기여도 등을 종합 고려했다. 답습적 인사 관행을 타파했다”고 자평했다.
감사원 내부에선 살생부에 따라 전 정부에서 임명된 고위직들이 숙청당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번 승진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인물 중 전 정부 감사원 핵심에서 밀려났던 이들이 눈에 띈다는 말도 나온다. 감사원 내부 사정에 정통한 인사는 “흔히 ‘족보가 꼬였다’는 상황이 현재 감사원과 잘 어울린다”며 “파격 인사에는 항상 잡음이 따르는 만큼 감사원 내부에서도 이번 인사를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감사원의 감사 드라이브 중심엔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있다. 유 사무총장은 2020년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조작 논란 당시 감사를 진두지휘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감사원 내부에서는 ‘실세’로 통하기도 한다.
1994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1997년 감사원에 둥지를 튼 유 사무총장은 감사원에서만 25년을 복무한 ‘감사통’이다. 감사원 출신 관료인 최재해 감사원장이 취임한 뒤 사무총장으로 부임했다. 유 사무총장은 최근 감사원 내부 회의에서 ‘고래사냥’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래사냥은 상급 사건 혹은 유력 고위 공직자 관련 사건을 성공적으로 처리한다는 의미의 감사원 용어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 정부를 향해 학익진을 펼친 감사원 행보 이면엔 ‘강성감사’ 대표주자인 유 사무총장의 입김이 적잖이 반영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직 감사원 출신 관계자는 “대내외적으로 흔들릴 수 있는 상황에서 유 사무총장이 각종 감사 드라이브를 진행하는 데 있어 확실하게 중심을 잡는 지휘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내부적으로 ‘고래사냥’이라는 키워드가 나올 정도면 얼마나 강력하게 감사를 추진하고 있는지 분위기를 유추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다만 이런 강성감사들이 이어지면 국민들의 피로도가 높아질 수 있고,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성 위반 관련 이슈가 지속될 수 있는 만큼 주의가 필요한 부분도 많아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