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난리와 펠로시 방한 때 노출된 ‘전지적 공무원 시점’ 부작용…“참모진 경험 부족” 여야 한목소리 질타
윤석열 대통령은 제6공화국 출범 이후 사상 첫 ‘늘공’ 출신으로 대권을 잡았다. 검사로 커리어를 시작한 윤 대통령은 검찰 수장 자리에 오른 뒤 대망론의 주인공이 됐고, 대권 직행열차에 탑승했다. 역사상 처음으로 국회 경험이 없는 0선 대통령이 탄생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인수위원회 국면에서부터 대통령실의 전문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여소야대 상황을 돌파할 해법으로 국정운영 전문성을 꼽은 셈이다.
이런 기조는 대통령실 인사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정통 관료 출신들을 최전방에 배치했다. 법률·총무·인사 분야엔 검찰 출신들이 포진했다. 경제·안보·외교·노동·보건 분야엔 유관 부처에서 에이스라 불리던 공무원들을 투입했다. 대통령실 살림을 운영하는 데 ‘윤석열 사단’이라 불리던 검찰 출신들이 중심을 잡고, 분과별 사안에 대해선 부처별 실무 담당자 출신들이 전문성을 극대화해 국정 동력을 마련하겠다는 취지였다.
윤석열 대통령 인사에 대해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그동안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대통령 보좌진을 인선하는 과정은 논공행상 그 자체였다. 선거에 공을 세운 국회 보좌진 등 ‘어공(어쩌다 공무원)’들이 자리 쟁탈전을 펼치는 장면이 익숙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선거와 별개로 국정운영 전문성을 강조하며 관료 출신들을 적극적으로 기용했다. 대통령실 입성을 내심 기대하던 선거캠프에서 활동한 ‘어공’들은 닭 쫓던 개처럼 발길을 집으로 돌리는 상황이 연출됐다.
하지만 결과는 그리 좋지 않은 모양새이다. 윤 대통령은 여러 구설에 휩싸이며 리더십 논란에 휩싸였다. 여기엔 여야를 가리지 않고 지적이 나오는 부실 인사가 큰 영향을 미쳤다. 참모진이 대통령을 제대로 보좌하지 못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확산됐다. 최근 수도권을 강타한 물난리 과정에서도 윤 대통령 대응은 도마에 올랐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아비규환 중에 대통령이 보이지 않았다”며 “서울이 물바다 되는데 대통령은 뭐하냐는 비판이 쏟아졌고, 급기야 소셜미디어 상에선 무정부 상태라는 말이 급속도로 번졌다”고 일갈했다. 수도권에 물난리가 난 상황에 윤 대통령이 자택에서 지시를 내린 점도 야권의 질타 대상이 됐다. 물난리가 절정에 달했던 지난 8일 저녁 윤 대통령이 공무원 지연 출근을 독려한 조치 역시 국민 정서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시간을 더 되돌려 보면 윤 대통령 리더십은 여권에서조차 질타를 받았다. 지난 3~4일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방한했을 때 이야기다. 윤 대통령은 당시 휴가를 이유로 펠로시 의장을 직접 만나는 대신 40분 동안 통화로 소통하는 방식을 택했다. 대통령실은 펠로시 의장과 직접 면담하지 않은 조치와 관련해 “우리 국익을 총체적으로 고려한 결정”이라고 해명했다.
여권 내부에선 펠로시 의장을 직접 만났어야 했다는 쓴소리가 쏟아졌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중국 눈치를 보느라 미국 의회 대표를 패싱한 것이 어떻게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말인가. 펠로시 의장을 만난 외국 정상들은 자신들의 국익을 해치려고 만난 것이냐”고 반문하며 윤 대통령을 비판했다.
펠로시 의장과 만남이 불발된 것과 관련해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은 “아쉬운 점이 있다”고 했다. 나 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이었을 때 한미동맹을 강화한다고 하니 중국이 먼저 시진핑 주석과 통화를 요청했다”며 “문재인 정부가 계속됐으면 경제 안보·가치 외교의 시대에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만 하다 아무것도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의 줄타기식 행보에 대해 우회적으로 아쉬움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여권 내부에선 대통령실이 제 몫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힘 의원 보좌관 출신 인사는 “대통령의 모든 행보는 대통령실의 조정을 거쳐 이뤄지게 돼 있다”며 “윤 대통령이 오락가락 행보를 펼치며 집토끼와 산토끼 모두에게 질타를 받는 상황 이면엔 대통령실이 방향성을 제대로 설정하지 못한 부분이 내재돼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사실 임기 초반은 공격적이고 저돌적인 국정운영을 바탕으로 임기 중·후반을 고려해 확고한 지지기반을 형성하는 게 상당히 중요하다”며 “그런데 지금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실은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곳곳에 난 잔불을 진화하는 데 급급한 모양새”라고 지적했다. 그는 “대통령실이 공성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수성만 하고 있는 양상”이라며 “관료 출신 중심의 대통령실 1기의 한계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국민의힘 당직자 출신의 정치권 관계자는 “이번 물난리가 났을 때 윤석열 대통령이 공무원들의 지연 출근을 독려하는 상황을 복기해볼 필요가 있다”며 “공무원 지연 출근은 공무원 입장에선 쾌재일 수 있지만 일반 국민 입장에선 의구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공무원 지연 출근 카드의 이면 프로세스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늘공 출신들이 곳곳에 배치돼 있는 대통령실 구조상 관료주의가 팽배할 수밖에 없다. 민심을 달래는 부분보다 공무원 사회에서 인기관리를 하는 데 익숙한 이들이 고위 관료 출신들이다. 반대로 어공 출신들은 공무원들을 압박하고 닦달하는 데 일가견이 있다. 어공 출신들이 대통령실 주류 세력이었다면, 공무원 비상사태부터 선포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는 “대통령실이 각종 이슈와 관련해 ‘전지적 공무원 시점’으로 핵심을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며 “대통령의 정치는 상황마다 예측불허한 변수로 가득 찬 영역인데, 공무원식 제한된 관점으로 이슈에 대처하다보니 리더십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의원 보좌관 출신의 한 여권 관계자는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을 윤 대통령이 만나지 않은 상황과 관련해서 굉장히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다”며 “일단 정치적으로 그간 보수 진영이 고수해왔던 외교 노선을 이탈한 점이 있는데, 외교·안보 등을 중요하게 여기는 보수 지지자들 입장에선 혼란스러울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펠로시 의장을 만나지 않은 상황 이면에 대통령의 휴가가 거론되고 있다”며 “이 장면은 공무원이 ‘점심시간이라 민원을 처리할 수 없으니 다음에 다시 오시라’는 국민들의 일상과 오버랩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정무와 실무 두 가지 관점 모두에서 관료주의식 조언이 잇따르다 보니 이런 상황이 발생한 것”이라면서 “대통령실이 이렇게 갈팡질팡하다 내놓은 논평이 ‘국익을 위한다’는 것인데, 이 역시 국민 입장에선 납득하기 어려울 수 있는 대목”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대선 기간 윤석열 선대위에서 활동했던 한 관계자는 “국회에서 발생하는 시행착오가 현재 대통령실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일부 초선 의원들이 처음에 자신의 최측근을 중심으로 보좌진을 꾸린다. 그러나 네다섯 달 사이에 대대적인 인적개편이 이뤄진다. 최측근들이 국회 업무에 전문성이 없다고 판단되기까지 걸리는 기간이다.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통상 국회에서 산전수전 다 겪어본 보좌진 출신들이 초선 의원실에 수혈되는 과정을 거치는 경우가 많다. 대통령실도 전문성을 강조하며 출범했지만, 전문성에 대한 의구심이 짙어지고 있다. 인적쇄신 시그널이 나오기 시작한 셈이다.”
이 관계자는 “여권 내부에서도 윤핵관들에 대한 비판론과 더불어 대통령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전면적인 쇄신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며 “대통령 지지율은 떨어지고, 집권여당은 비대위 체제로 전환되는 혼란한 정국 속에서 상황을 수습할 골든타임이 많이 남은 것 같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정치평론가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현재 각종 논란은 윤석열 대통령 참모진 전반에 걸친 경험 및 연습 부족이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며 “경험이 많고 노련한 참모보다 신선한 참모를 대거 기용한 부분에 기인한 혼란인 것으로 풀이된다”고 했다. 채 교수는 “정치 경험과 내공 부재로 인한 참모진 내부 문제점이 노출된 상황으로 정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