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하던 짓인데…목숨 걸고 한국 와도 안전한가 의구심”
“탈북을 해서 대한민국에 정착한 입장에서 가장 예민하게 느끼는 부분이 있다. 원래부터 한국에 살던 사람들은 공감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우리가 과민반응하는 것이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에게 생존의 문제다. 탈북어민 강제북송 같은 이슈가 터지면 우리도 북송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탈북민 사회에 팽배해진다.”
탈북어민 강제북송 논란을 바라보는 탈북민 A 씨의 말이다. 북한을 탈출한 뒤 제3국을 통해 한국 땅을 밟은 A 씨는 탈북 과정에서 받는 가장 큰 스트레스에 대해 “혹시라도 붙잡혀서 다시 북으로 송환될까 걱정하던 순간들이 가장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A 씨는 “이 사건 탈북어민들의 경우 NLL(북방한계선)을 넘어 귀순 의사를 밝힌 특이 케이스”라면서 “대부분 탈북민은 중국 쪽 국경을 넘는 방식으로 제3국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온다”고 덧붙였다.
다른 탈북민 B 씨는 “탈북 과정에서 탈북민의 모든 신경은 자신이 붙잡힐 수 있다는 가능성에 쏠린다”면서 “극한의 두려움을 극복해 한국 땅을 밟으면 비로소 안전해졌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 탈북어민 강제북송 사건을 보고 과연 한국이 정말 우리의 신변을 보장해줄 수 있을 정도로 안전한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는 것이 B 씨 설명이다.
B 씨는 “과거 한국 정부는 중국을 비롯한 제3국 정부 주체로 일어나는 탈북민 강제북송을 막기 위해 무던히 노력해 왔다”면서 “중국 등 제3국의 탈북민 강제북송에 유감을 표명하고 반발하는 역할을 해왔는데, 이번 사건을 보면 되레 한국이 강제북송의 중심지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중국이 하던 일을 한국이 하는 것을 보고 이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든다”고 했다.
탈북민들 사이에서 중국발 강제북송은 ‘저승사자’로 통했다. 한 탈북민은 “혹여나 중국에서 탈북민으로 단속돼 북송되면, 사실상 이번 생은 끝이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면서 “그 생각이 사실이 되는 사례를 여럿 봤다”고 했다. 중국을 떠나 한국 땅을 밟을 때까지 탈북민들이 안심하지 못하는 이유다.
국방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재중 북한이탈주민 현황과 중국의 대응(2016 이재훈)’ 탈북민 면접조사 결과에 따르면 탈북민 65명 중 52명이 중국 정부의 탈북민 관련 정책 중 가장 큰 문제점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강제북송’이라고 답했다. 나머지 13명은 중국이 탈북민을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 부분을 지적했다.
중국 정부에 바라는 점을 묻는 질문엔 65명 중 32명이 강제북송 금지라는 답을 내놨다. 27명은 난민 인정, 6명은 탈북민 의사 반영을 원했다.
이 조사와 관련해 탈북 브로커 출신 대북 소식통은 “탈북민이 중국 정부에 저런 것들을 바라는 이유는 간단하다”면서 “강제북송은 그들에게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소식통은 “난민 인정의 경우엔 한국 혹은 제3국으로 향하는 절차를 합법화할 수 있는 데다, 현재 중국에서 ‘불법 이민자’ 취급을 받고 있는 탈북민 인권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소식통은 “2019년 한국 정부는 탈북어민 2명을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고 범죄자로 봤다”면서 “이런 판단을 근거로 사상 초유의 강제북송 사건이 일어났다”고 했다. 그는 “사건 이후 ‘탈북민이 중국 정부에 바라는 점’이 ‘한국 정부에 바라는 점’으로 바뀌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지적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