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갈이 대신 정잭기획수석 신설 등 부분적 개편 그쳐…인적쇄신 필요성 느끼지 못한다는 비판도
한국갤럽이 8월 16일부터 18일까지 사흘간 실시한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 여론조사 결과 ‘잘못하고 있다’는 답변이 64%로, ‘잘한다’ 28%보다 2배 이상 높은 수치를 보였다. 긍정평가가 2주 연속 상승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20%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부정 평가자들은 답변 이유로 ‘인사’(26%)를 첫 번째로 꼽았다(자세한 사항은 여론조사기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정치권에서는 여야 할 것 없이 인적쇄신 목소리가 끊임없이 나왔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윤석열 정부 실정의 책임이 있는 인사들이 물러나야 한다는 것이고, 국민의힘에서는 참모진 교체를 통해 떨어지는 지지율의 반등 모멘텀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 시점으로 전문가들은 윤석열 대통령 첫 여름휴가 복귀 메시지를 거론했다.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3년 경남 저도로 첫 휴가를 다녀온 직후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 4명을 한꺼번에 교체하며 위기 돌파 시도를 한 바 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휴가에서 공식 복귀한 8월 8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청사 출근길 문답에서 “모든 국정동력이라는 게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 아니겠느냐”며 “국민 관점에서 모든 문제를 같이 점검하고 살피겠다. 집무실 올라가서 살펴보고 필요한 조치가 있으면 하겠다”고만 밝혔다.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인적쇄신 카드를 꺼낼 것이라는 예상도 나왔다. 그런데 8월 17일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도 윤 대통령은 인사 문제에 대한 개선 방안에 대해 “인사쇄신은 국민을 위해, 국민의 민생을 꼼꼼하게 받들기 위해서 아주 치밀하게 점검해야 하는 것”이라며 “정치적인 국면전환이나 지지율 반등이라고 하는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제가 벌써 시작했지만, 그동안에 대통령실부터 어디에 문제가 있었는지 지금 짚어보고 있다”고 즉답은 내놓지 않았다.
민주당 한 재선 의원은 “글로벌 경제위기 우려로 국민들의 삶이 어려워지고 있다. 최근 수해 피해도 서둘러 복구해야 한다. 정치권이 서둘러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며 “인적쇄신 요구가 나온 게 하루 이틀 전이냐. 국민의힘에서도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아직도 고심만 하고 있다. 휴가 때는 국정을 되돌아보고 대책을 내놨어야 한다. 민생 위기에 대한 다급함이 보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윤 대통령은 인적쇄신 대신 대통령실 조직 확대 방안을 내놨다. 김대기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8월 18일 용산 청사 브리핑에서 정책 조율 컨트롤타워 격인 정책기획수석 신설 등 개편안 일부를 공개했다. 김 비서실장은 정책기획수석 신설 배경에 대해 “민생이라든지 정책 어젠다 쪽에 소통 문제라든지 그런 것이 있기 때문에 국민과 내각, 대통령실 간 소통과 이해를 원활히 할 수 있는 역할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앞서 ‘만 5세 취학’ 등 정책 혼선이 온 것이 대통령실 정책실 폐지로 인한 정책 조율 미흡으로 판단한 직제 개편으로 해석된다.
이번 개편으로 대통령실은 기존 ‘2실(대통령비서실·국가안보실) 5수석(경제·정무·시민사회·사회·홍보)’에서 ‘2실 6수석’ 체제가 됐다. 윤 대통령은 추후 실장급이나 수석급 직책의 신설 가능성이 열려 있음을 전했다. 김 비서실장은 ‘총무수석비서관이나 정책기획실장 신설 얘기도 있다’는 질문에 “아직 구체적으로 안 됐다”고 답했다.
이번 개편안을 두고 민주당에선 ‘공약 뒤집기’ 아니냐는 비판을 내놨다. 윤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대통령실 슬림화’를 공약했고, 그 기조를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정책기획수석 신설 등 조직 개편이 윤석열 정부가 천명했던 ‘슬림화’ 기조에 어긋난다는 지적에 대해 김 비서실장은 “슬림화는 계속해야 한다. 현재도 지난 정부보다 정책실장이 줄었고, 수석 자리도 5개 정도 줄었다”면서도 “국정운영을 하다 보면 필요한 분야가 있고, 줄일 분야가 있다. 슬림화란 대전제를 갖고서 유기체처럼 운영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김건희 여사를 관리할 제2부속실 설치 요구에 대해서는 대선 공약이라 지켜야 한다고 거부하더니, ‘슬림화’ 공약은 지지율 위기에 직면하니 뒤집어도 되느냐”며 “정책 수립에 필요하면 대통령실 조직을 키우고 인원을 늘릴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현재 대통령실의 참모들이 민생을 살릴 정책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윤 대통령의 상황진단과 국민에 대한 사과가 우선이라고 본다”고 비판했다.
대통령실 인적쇄신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만 5세 취학’ 논란을 조율하지 못한 권성연 교육비서관을 사실상 경질한 데 이어, 홍보 라인 개편과 일부 비서관급 교체를 단행했다. 특히 신임 홍보수석에는 인수위 시절 당선인 대변인으로 활동한 김은혜 전 의원이 내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최영범 현 홍보수석은 신설되는 홍보특보로 이동할 전망이다.
윤석열 대통령 인사 스타일이 그대로 반영됐다는 평가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윤 대통령은 자신이 믿는 사람은 끝까지 같이 간다. 김은혜 전 의원 역시 조만간 대통령실에 합류할 거라는 전망이 많았는데 예상보다 일찍 복귀했다”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이 당분간 대대적인 인적쇄신은 단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고진동 정치평론가는 “윤 대통령 입장에서는 인적쇄신 요구를 받아들이면 밀린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정국을 이끌어갈 동력이 더 약해진다는 우려를 했을 것”이라며 “또한 현 상황에서는 인적쇄신을 한다고 지지율이 반등하지 않는다. 윤 대통령과 참모진에서는 지지율이 상승할 기회가 왔을 때 대대적 인사 개편을 해 정국 주도권을 가져가려 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여권 일각에선 인적쇄신의 현실적인 어려움이 거론된다. 후임으로 임명할 대안이 마땅치 않다는 고민이다.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특임교수는 “대통령실 참모진을 교체하면 다시 야권과 언론이 검증에 들어간다. 정치권에 인재풀이 넓지 않은 상황에서 문제가 있는 참모를 내정하면 윤 대통령 지지율을 더 깎을 위험이 있다”고 전했다. 야권에선 윤 대통령 측이 인적쇄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확산되고 있다. 야권 한 관계자는 이렇게 진단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 모두발언을 보면 ‘잘못된 경제정책을 폐기해 경제정책 기조를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게 바꾸었다’ ‘일방적이고 이념에 기반한 탈원전 정책을 폐기함으로써 세계 최고 수준인 원전 산업을 다시 살려냈다’ ‘폭등한 집값과 전셋값을 안정시켰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북한 어민 강제 북송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희생자들의 명예회복 등 조치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등 자화자찬 일색이다. ‘윤핵관’ 이철규 의원 역시 지지율 급락의 원인으로 이준석 전 대표와의 내홍 및 여론조사기관 성향 등을 꼽았다. 윤 대통령과 그 주변에서는 자신들은 일을 잘하고 있는데 국민들이 이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이번에 홍보수석만 교체한 것을 보면 그러한 속내를 읽을 수 있다. 이런 상황인식이라면 굳이 인적쇄신을 하겠느냐.”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